오랜 기간 침체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일본 증시가 AI 열풍을 타고 다시 주목받고 있다. 닛케이 평균주가는 지난 25일 사상 처음으로 6만5000선을 돌파하며 최고치를 새로 썼다. 다만 상승세가 반도체와 AI 관련 대형주에 집중되면서 일본 증시 내 기술주 편중 현상도 심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닛케이 6만5000 돌파 "가치 함정 오명 벗는다"

25일 일본 증시에서 닛케이 평균은 전 거래일 대비 2.87% 오른 6만5158.19에 거래를 마치며 사상 최고치를 다시 썼다. 장중과 종가 기준 모두 최고 기록이다. 26일에는 0.25% 하락했지만, 연초 이후 이날까지 상승률이 29.1%에 달한다.

특히 최근 일본 증시 상승세의 중심에는 반도체주가 있다. 26일 기준 일본 대표 낸드플래시 업체 키옥시아 홀딩스의 연초 이후 상승률은 500%에 달한다. AI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에 따른 메모리 수요 증가 기대가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반도체 장비업체인 어드반테스트와 도쿄 일렉트론, AI 인프라 투자 수혜주로 꼽히는 소프트뱅크그룹 등에도 매수세가 집중되며 지수 상승을 견인하고 있다. 소프트뱅크그룹은 최근 회사가 지분을 보유한 오픈AI 등의 상장 소식에 최근 3거래일간 30% 이상 상승한데 이어 이날도 10.9% 상승 마감했다.

미 경제 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는 최근 "일본 증시가 마침내 '가치 함정(value trap)'이라는 오랜 오명을 벗어날 수 있을지 모른다"며 "AI 열풍이 반도체와 산업주를 끌어올리면서 닛케이 평균이 사상 최고치 부근에서 거래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해외 자금 유입도 이어지고 있다. 워런 버핏의 투자 회사 버크셔 해서웨이는 일본 종합상사 지분을 지속적으로 늘리고 있으며, 최근에는 도쿄 마린홀딩스 투자 비중도 확대했다. 비즈니스인사이더는 "글로벌 투자자들이 오랫동안 저평가됐다고 여겨진 일본 시장에 수십억 달러를 쏟아붓고 있다"고 분석했다.

◇'반도체 쏠림'에 NT 지수는 역대 최대

다만 일부 기술주에 대한 쏠림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일본 증시 전체를 반영하는 토픽스(TOPIX) 지수와 비교하면 닛케이 평균의 상승 폭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닛케이는 주가가 높은 종목의 영향력이 큰 가격가중 방식으로 산출된다. 반면 토픽스는 시가총액 가중 방식으로 일본 증시 전반의 흐름을 반영한다. 이에 따라 반도체와 AI 관련 대형주가 급등할 경우 닛케이가 토픽스보다 더 크게 오르는 구조다.

닛케이 평균을 토픽스로 나눈 NT 비율은 이날 기준 16.5배까지 상승했다. 최근의 NT 비율은 일본 증권업계가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1970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NT 비율은 닛케이와 토픽스의 상대 강도를 보여주는 지표로, 수치가 높을수록 소수 대형 기술주가 시장 상승을 주도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실제 연초 이후 토픽스 상승률은 15.5%에 그쳤지만, 닛케이 평균 상승률은 29.1%로 두 배 가까운 수준을 기록했다. 시장 전체보다 반도체·AI 관련 종목에 자금이 집중되고 있다는 의미다.

◇"연말 7만도 가능"… 월가도 목표치 상향

시장에서는 엔화 약세와 해외 자금 유입이 당분간 일본 증시 상승세를 뒷받침할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엔화 가치는 달러당 159엔 선까지 하락하며 수출 기업들의 가격 경쟁력을 높이고 있으며, 여기에 글로벌 패시브 자금과 AI 관련 투자 자금이 일본 반도체 공급망으로 유입되면서 실적 개선 기대도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글로벌 투자은행들도 잇따라 목표치를 높이고 있다. JP모건은 연말 닛케이 평균이 7만 선에 도달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 또한 최근 닛케이 평균 목표치를 기존 6만1000에서 6만7000으로 상향 조정했다. AI 붐에 따른 반도체 공급망 수혜와 일본의 금리 정상화 과정에서 전자·기계·은행·건설·부동산 업종의 이익 증가세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