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한테 와인바 하겠다는 사람들이 오면 말립니다. 준비가 안 돼 있거든요. 와인을 좋아한다고 와인을 잘 팔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저도 창업 전에 2년 동안 와인 정보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2억을 날렸어요. 좋아하는 걸 사업으로 만드는 데도 검증이 필요합니다."

24일 조선일보 경제부가 만드는 유튜브 '조선일보 머니'의 '머니가 만난 사람'에는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와인바로 꼽히는 서울 청담동의 까사델비노 은광표 대표가 출연했다. 은 대표는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버는 건 운이 좋아야 한다"며 "준비도 안 하면서 운까지 바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은광표 까사델비노 대표

◇명예퇴직 후 첫 창업과 실패

은 대표는 1983년 IBM에 입사했다. 당시 삼성전자 신입사원 월급이 20만원이던 시절, IBM 첫 월급은 40만원이었고 6개월 후 80만원으로 올랐다. 그는 "그 당시 대기업 부장급 급여였다"고 했다. 본사가 있는 미국으로 출장도 종종 다녔다.

그러나 1993년 IBM에서 전세계적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명예퇴직'이 명예로운 퇴직인 줄 알고 발 빠르게 신청했다. 하고 싶은 것도 있었다. 그렇게 35세 나이에 IBM에서 익힌 기술과 인맥을 바탕으로 데이터베이스 시스템을 컨설팅해 주는 벤처기업 싸이테크를 설립했다.

초기 회사는 잘나갔다. IMF 외환 위기(1997~1998년)도 마침 대형 프로젝트 덕에 비켜갔다. 그러다 2001년 정부의 대형 IT 프로젝트 수주에 도전했다가 떨어지면서 무너지기 시작했다.

"직원 20명 월급은 계속 나가는데 일이 없는 거예요. 하늘이 노래지더라고요. 6개월 만에 쌓아둔 돈이 바닥났어요. 그때 아이들이 초등학생이었어요. 교육비가 막 들어가기 시작하는데 아버지는 실직자가 된 거죠."

결국 회사를 정리하고 직원들을 하나씩 다른 프로젝트에 연결해 내보냈다. 홀로 남았을 때 그의 눈에 들어온 건 2년 전 취미 삼아 만들어둔 와인 정보 사이트 '베스트와인'이었다.

◇와인 정보 사이트 실패, 와인바로 재도전

IBM에서 일하던 당시, 미국 출장에서 만나는 엔지니어들은 모두 '와인' 이야기만 했다. 그때 나파밸리도 가봤다. 그때의 경험으로 만들어 둔 '베스트와인', 당시만 해도 이런 와인 정보 사이트가 없었으니 잘될 거라고 믿었다. 사무실에 직원 3명을 뽑아 놓고 다시 시작했다. 그러나 돌아온 건 2억원의 적자였다.

"사이트는 업데이트도 해야 되고, 유지 관리 보수도 해야 되잖아요. 딱 1년에 1억원씩, 2억원을 날렸어요. '아, 이것도 안 되는구나' 싶더라고요. 인생이 낙동강 오리알이 된 것 같고. 무엇보다 '앞으로 20~30년을 어떻게 살지?' 막막했습니다."

와인으로 돈을 날린 은 대표는 오기가 생겼다고 했다. '와인으로 돈을 벌 방법을 찾아보자'고 결심했다.

그렇게 2002년 10월, 그는 청담동에 와인바 까사델비노를 열었다. 당시 서울에 와인바는 단 세 곳뿐이었고, 그는 세 곳 모두의 단골이었다. 창업을 결심한 이유가 인상적이다. "가만 보니 그 가게 주인들이 와인을 저보다 몰라요. 나보다 덜 마시고, 공부도 덜 한 것 같더라고요. 나는 얘네보다 잘할 수 있겠다 싶었죠."

단순히 와인을 좋아한다고 해서 결심한 게 아니었다. 와인 수입·유통, 와인숍, 레스토랑까지 세 가지 사업 모델을 따져보고 와인바를 택했다. 수입은 무역 경험이 없어서, 와인숍은 손님 절반이 빈손으로 나가는 구조라 수익성이 불안해서, 레스토랑은 경쟁이 너무 치열해서 각각 제외했다. 결과는 첫 달부터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지금까지 24년째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처음 단골로 다니던 세 곳의 와인바는 모두 문을 닫았다.

◇좋아하는 것과 잘 파는 것은 다르다

그가 명예퇴직 후 창업하려는 사람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원칙은 단순하다. "돈을 버는 방법은 두 가지뿐이에요. 물건을 팔거나, 내 재능과 서비스를 팔거나. 경제학 교과서에 나오는 재화와 용역이죠. 둘 중 하나는 반드시 잘해야 합니다."

IT 창업 실패 후 와인바를 결심할 때 읽던 책이 최인호 작가의 소설 '상도'였다고 했다. 조선 거상 임상옥이 자신의 재산을 모두 나눠주고 홀연히 떠나는 장면에서 "10년 잘했으니 나도 여기서 접자"고 결심했다.

"미련 없이 끝내는 것도 용기예요. 잘될 거라 믿고 버티다가 완전히 다 태우는 것보다는요." 더 자세한 이야기는 유튜브 채널 '조선일보 머니' 영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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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TfHRHXrssB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