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학적 위기 때마다 대표적인 안전 자산으로 평가받던 금과 은이 제 역할을 못 하면서 자금이 금·은 관련 상장지수펀드(ETF)에서 달러 ETF로 이동하고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금·은의 중장기적 수요는 견조하다고 진단한다.

6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한 달(2월 27일~3월 31일) 사이 금·은 관련 ETF 11종의 순자산 총액은 9492억원 감소한 8조6882억원을 기록했다. 한 달 만에 1조원 가까운 순자산이 증발했다.

그래픽=정서희

지정학적 리스크 부각에도 금과 은이 안전 자산의 역할을 못 하면서 투자 심리가 악화된 영향으로 풀이된다. 금 선물 가격은 같은 기간 5247.90달러에서 4678.60달러까지 10.85%, 은 선물 가격은 19.69% 급락했다.

옥지회 삼성선물 연구원은 "전쟁으로 인해 유가가 오르고 인플레이션 우려가 고조되는 가운데 달러인덱스 및 미국채 금리 상승이 동반되면서 금 가격이 하락했다"며 "금 가격이 전쟁이 격화될 때 하락하고, 완화될 때 상승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안전자산=금'이라는 공식이 약해지고 있다"고 했다.

반면 달러의 매력도가 높아지면서 달러 관련 ETF로 자금이 소폭 유입됐다. 같은 기간 달러 ETF 11종 중 인버스 상품을 제외한 5개 ETF의 순자산 총액은 1560억원에서 1726억원으로 10.6% 늘었다.

박우열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실질 금리가 올라갔다는 점도 최근 금 가격의 부담 요인이었지만, 최근 금 하락은 달러 스마일(미국 경제가 호황일 때와 불황일 때 모두 달러 선호가 높아지는 현상)에서도 있다"며 "중동 정세 불안으로 페트로달러 체제 약화 가능성이 거론됐지만, 달러는 여전히 위기 상황에서 가장 먼저 찾는 자산이다"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중장기적으로는 금에 대한 수요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금 가격의 구조적인 반등 시점은 전쟁 리스크가 완전히 해소된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옥 연구원은 "호르무즈 해협이 열리게 되거나, 설령 열리지 않은 채로 종전을 하더라도 우선 전쟁이 더 이상 확산되지 않는다는 확신을 시장에 줄 수 있을 때 반등이 나타날 것"이라고 했다.

다만 전쟁이 끝나더라도 전고점까지의 가격 회복은 어렵다는 의견도 나온다. 최진영 대신증권 연구원은 "미국과 이란의 최종 합의가 이뤄질 경우 금의 본격적인 반등을 기대할 수 있다"면서도 "케빈 워시 연방준비제도 의장의 정책 기조와 시카고상품거래소(CME)의 증거금 산정 방식 변경 등을 감안할 때 전고점 상회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