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국내 증시 저평가 요인 중 하나인 일명 '좀비기업'의 퇴출을 위해 상장폐지 요건을 대폭 강화한다. 당국은 상장폐지 개혁 방안을 통해 부실기업을 신속하게 퇴출하는 '다산다사(多産多死)' 시장구조 전환에 속도를 내고, 혁신기업의 원활한 상장을 지원할 방침이다.
12일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는 '부실기업 신속·엄정 퇴출을 위한 상장폐지 개혁 방안'을 발표하고 ▲집중 관리 기간 운영 ▲4대 상장폐지 요건 강화 ▲절차 효율화 등을 제시했다.
개혁 방안을 반영하면 현시점에서 올해 중 코스닥 상장폐지 대상 기업 수는 당초 예상됐던 50개사보다 100여 개 늘어난 약 150개사 내외(100~220개사)가 될 것으로 추산된다.
◇상장폐지 집중관리단 구성해 내년 6월까지 밀착 관리
먼저 한국거래소는 상장폐지 집중관리단을 구성하고, 이날부터 내년 6월까지 집중 관리 기간을 운영한다. 코스닥 본부 담당 부이사장이 단장을 맡는다. 집중관리단은 기존 코스닥 본부 상장폐지 심사 3개 팀에 이달 추가 신설된 1개 팀을 더해 총 4개 팀(20명)으로 이뤄진다. 필요시 추가 인력도 신속하게 보강할 계획이다.
단장은 이 기간 정기적으로 상장폐지 진행 상황을 밀착 관리한다. 올해 한국거래소 경영 평가에 코스닥 본부의 경우, 집중 관리 기간 실적에 높은 가중치(잠정 20%)를 부여해 업무 추진을 독려한다. 금융당국은 올해부터 코스닥 본부의 독립성·자율성 강화를 위해 별도 경영 평가 제도를 도입하기로 한 만큼 이번 가중치 방안과 시너지 효과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시가총액 기준 대폭 상향… 1000원 미만 동전주는 상장폐지
금융당국은 4대 상장폐지 요건을 시가총액과 주가 수준, 두 개의 틀을 중심으로 강화했다.
지난해 7월 한국거래소 상장규정 개정을 통해 올해 1월부터 시가총액 상장폐지 기준이 40억원에서 150억원으로 한 차례 높아졌고, 2027년 1월 200억원, 2028년 300억원으로 추가 상향 조정이 예정돼 있다. 이번 방안에서는 해당 상향 조정 주기를 매 반기로 단축했다. 즉, 시가총액 200억원 기준이 올해 7월, 300억원 기준은 2027년 1월로 당겨진다.
아울러 일시적 주가 띄우기를 통한 상장폐지를 회피할 수 없도록 세부 적용 기준과 시장 감시를 강화한다.
현재는 30거래일 연속 시가총액 기준을 밑돌면 관리종목에 지정되고, 이후 90거래일 동안 연속 10거래일·누적 30거래일 기준 시가총액 요건을 상회하면 상장폐지를 피할 수 있다. 하지만 앞으로는 관리종목 지정 후 90거래일 동안 45거래일 연속 시가총액 기준을 웃돌지 못하면 즉시 상장폐지 된다.
주가 1000원 미만인 이른바 '동전주'에 대한 상장폐지 요건도 새롭게 만들어졌다. 금융당국은 동전주의 경우 높은 주가 변동성 및 낮은 시가총액 등의 특성이 있고, 주가 조작의 대상으로 악용되기 쉽다고 설명했다. 미국 나스닥도 주가가 1달러 미만인 '페니 스톡(penny stock)' 관련 상장폐지 요건을 운영하고 있다.
오는 7월 1일부터는 주가 1000원 미만 동전주를 상장폐지 대상으로 하고, 액면 병합을 통한 회피를 방지하기 위해 '병합 후 액면가 미만'인 경우도 상장폐지 요건에 포함한다. 예를 들어 액면가 500원, 주가 300원인 기업이 동전주 상폐 요건 회피를 위해 액면가 2000원으로 병합(주가 1200원)하더라도 상장폐지 대상에 포함되는 것이다.
세부 적용 기준은 강화된 시가총액 요건과 동일하다. 30거래일 연속 1000원 미만인 경우 관리종목 지정, 이후 90거래일 동안 45거래일 연속 1000원을 넘기지 못하면 최종 상장폐지된다.
이밖에 사업연도 말 기준 완전 자본 잠식 상태인 상장사가 상장폐지 요건에 해당하는 점을 반기 기준으로도 포함해 확대한다. 사업연도 말 기준은 해당 시 즉시 상장폐지되지만, 반기 기준은 기업의 계속성 등에 대한 실질 심사를 거쳐 상장폐지를 결정한다.
또 공시 위반에 따른 상장폐지 기준도 최근 1년간 공시 벌점 누적 15점에서 누적 10점으로 조정된다. 중대하고 고의적인 공시 위반은 한 번이라도 발생하면 상장폐지 대상 범위에 포함된다. 강화된 4대 상장폐지 요건은 유가증권시장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상장폐지 개선기간 1.5년→1년으로 추가 단축
상장폐지 심사 과정에서의 절차도 효율적으로 개선한다. 앞서 지난해 제도개선을 통해 코스닥 실질 심사 시 기업에 부여 가능한 최대 개선기간을 2년에서 1년 6개월로 축소했는데, 올해는 그 기간을 1년으로 추가 단축하기로 했다.
또한 상장폐지 가처분 소송이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법원 등과 협의해 나갈 계획이다. 가처분 소송 시 인용(거래소 패소)되는 경우는 적지만, 사건이 늘면 소송 기간이 길어지고 최종 퇴출이 지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소송이 결정되는 데까지 2022년에는 평균 103일이 걸렸지만 2024년엔 202일로 늘었다. 최근 5년(2021년~2025년)간 거래소의 상장폐지 가처분 소송 85건 중 인용된 건은 단 2건이다.
금융위와 거래소는 개혁 방안 시행 과정에서 분식회계, 주가조작 등 불공정 행위에 대한 관리도 강화할 방침이다. 부실기업이 퇴출당하면, 그 빈자리에 유망한 혁신기업들이 원활히 상장되도록 상장제도 개선도 병행한다.
권대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지난해 인공지능(AI), 우주, 에너지 산업에 대한 맞춤형 기술특례상장 제도가 도입·시행됐으며 올해도 맞춤형 기술특례상장 대상인 혁신 기술의 범위를 지속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권 부위원장은 "거래소를 전면 재설계하는 수준의 근본적인 혁신 방안을 빠르게 마련해 투자자들은 믿고 투자하고, 좋은 기업들은 상장하고 싶은 매력적인 거래소를 만들어 나갈 계획"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