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보호, 기업의 사회적 책임 등을 강조하는 ESG(환경, 사회적 책무, 기업 지배구조 개선) 펀드들이 과거엔 ‘죄악주’라고 부르며 투자를 피하던 방위산업이나 석유, 석탄 등 전통 에너지 산업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일 “그동안 방위산업 투자를 꺼리던 ESG 펀드들이 방산 업체 주식을 사들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무기는 사회를 파괴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며 ‘불매’하던 대상에서, 적으로부터 나와 가족을 보호하고 사회를 유지하는 수단이라며 해석을 바꿔 ‘투자’하는 대상으로 바꾼 것이다. 일각에선 수익을 좇는 펀드가 최근 주가가 급등하는 방산을 외면하기 어렵기 때문에 말을 바꾼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기도 한다.

또 ESG 펀드는 전쟁 등으로 에너지 가격이 치솟자 환경 오염을 유발할 수 있다며 기존에 투자를 꺼리던 석유, 가스 기업 등에도 돈을 넣고 있다. 엄격한 의미의 ESG 투자를 추구할 경우, 자금이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HSBC는 “전쟁이나 경기 침체 우려 등으로 ESG 투자 심리는 정체된 상태”라고 분석했다.

그래픽=김하경

◇ESG 펀드 “방산 투자 늘려”

세계적인 투자 분석 플랫폼 모닝스타 다이렉트에 따르면, 유럽연합(EU)과 영국의 ESG펀드는 올해 2분기 방산 업체 주식 77억 유로(약 11조4000억원)어치를 보유하고 있다. 2022년 1분기의 32억 유로에 비해 배 이상 늘었다. 항공우주와 방산 주식을 5% 이상 보유한 유럽 ESG 펀드도 지난 2년 동안 22개에서 66개로 세 배 증가했다.

미국의 ESG 펀드도 항공우주와 방산 분야 보유액이 2022년 2분기 7억7900만 유로에서 올해 2분기 12억 유로로 증가했다.

FT는 “이는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방산 업체들 주가가 급등했을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불매운동이나 학생 시위의 대상이 되어온 무기 제조 업체의 주식을 사는 것을 투자자들이 긍정적으로 보기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자산운용사 리걸 앤드 제너럴의 소냐 라우드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우크라이나 전쟁은 ‘우리가 실제로 나라를 방어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최우선으로 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아직 지뢰 등 논란이 많은 무기 생산 업체에 대한 투자는 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고, 방산 업체들의 무기가 어느 국가에 판매되었는지도 개별적으로 따져 봐야 하지만, 원칙적으로 방산 업체를 투자에서 배제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유럽 항공우주 및 방산 지수는 주요 업체 주가가 급등하면서 2022년 초 이후 1.8배 올랐다. 금융정보업체 LSEG 리퍼에 따르면, 방산 테마 뮤추얼 펀드와 상장지수펀드(ETF)는 2022년 1월 58억 달러에서 올해 7월 176억달러로 세 배 이상 늘었다.

◇”석유, 가스 등에도 투자”

방산뿐 아니라 석유, 가스 등 환경 오염 우려로 기존에 ESG 펀드가 꺼리던 분야에도 투자가 늘어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더 많은 석유, 가스, 광업 주식이 ESG 펀드 포트폴리오에 포함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ESG 펀드는 ESG에 얼마나 엄격한가에 따라 광범위한 ESG 펀드, 엄격한 ESG 펀드 등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골드만삭스의 분석 결과 현재 광범위한 ESG 펀드 중 51%가 석유와 가스 기업에 투자를 하고 있었다. 이는 지난해 47%보다 높아진 것이다. 금속 및 광업의 경우, 광범위한 ESG 펀드 중 46%가 해당 산업 자산을 갖고 있으며, 엄격한 ESG 펀드도 32%가 보유하고 있었다. 지난해보다 약 5~6%포인트씩 늘어난 것이다.

이는 전쟁과 경기 침체 등으로 엄격한 ESG 투자의 수익률이 떨어지고 ESG에 거부감을 느끼는 투자자도 늘었기 때문이다. ESG 투자를 주도했던 블랙록의 래리 핑크 회장은 “ESG가 지나치게 무기화돼 이 말을 사용하기가 불편해 졌다”고 말하기도 했다. 블룸버그통신은 “미국에서 ESG는 ‘깨어있는 척하는’이라는 뜻의 ‘워우크(woke) 자본주의’로 불리며 정치적인 공격의 대상이 됐다”며 “ESG는 월가에서 사용하기 어려운 단어가 됐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