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이진영

수원에 사는 박모(51)씨는 2년 전 암 진단을 받고 항암 치료를 받아왔다. 그러다 최근 암이 전이됐다는 진단을 받고 가까운 요양 병원에 입원했다. 요양 병원의 깔끔한 시설과 직원들의 친절한 서비스는 마음에 들었지만 첫 달 치료비 청구서를 받아보고는 마음이 복잡해졌다. 요양 병원에서 시행하는 보조 치료 대부분이 건강보험에서 지급받는 게 아니라 본인이 부담해야 하는 비급여 항목이었기 때문이다. 몇 달 만 더 입원해도 병원비가 수백만 원이 넘을 상황이다. 이럴 때 박씨가 실손 의료보험(실손 보험)에 가입했다면 도움받을 수 있다. 특정 질환이나 사고만 보장하는 다른 보험들과 달리 실손 보험은 자기 부담금을 제외한 치료비 전부를 한도 내에서 보상받을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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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별로 구분되는 실손 보험

작년 말 기준 국내 실손 보험 가입자는 3997만명에 달한다. 단일 종류 보험으로는 가장 많은 사람이 가입했다. 실손 보험은 가입 시점에 따라 세대별로 구분한다. 현재 4세대까지 출시됐다.

1세대 실손 보험은 2009년 9월까지 판매됐다. 자기 부담금이 거의 없이 대부분의 치료 비용을 보험 처리 할 수 있는 게 특징이다. 2세대 실손 보험은 2017년 3월까지 판매됐다. 이때부터 급여, 비급여 항목에 따라 10% 또는 20%의 자기 부담금이 적용됐다. 3세대부터는 도수 치료, 주사제, 자기공명영상(MRI) 등 세 가지 항목을 ‘3대 특약’으로 별도 보장했다. 4세대 실손 보험은 2021년 7월 이후 판매된 것으로 다른 세대보다 보험료가 저렴한 것이 특징이다.

올해 5월 기준 가장 많은 사람이 가입한 건 2세대 실손 보험(45.3%)이다. 판매 기간이 가장 길었다. 이어 3세대(23.1%), 1세대(19.1%), 4세대(10.4%) 순으로, 최근에는 4세대 비율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내가 가입한 실손 보험 세대가 궁금하다면 보험에 가입한 계약 일자를 확인해 보면 된다.

◇이달부터 4세대 실손 할인·할증

이달 1일부터 4세대 실손 보험 가입자는 매년 보험료를 조정한다. 항목을 급여, 비급여로 구분해 각각 보험사의 손해율에 따라 보험료를 다시 산정한다. 다른 세대 보험의 경우 보험 갱신 주기에 따라 보험료를 재산정하는데, 4세대의 경우 이용 정도에 따라 1년마다 보험료가 바뀌는 것이다.

급여 항목의 경우 전체 보험 계약자가 내야 하는 비용이 일률적으로 조정돼 적용된다. 반면 비급여 항목은 본인이 얼마나 이용했느냐에 따라 보험료가 차등 적용된다. 적용 내용은 할인(1단계), 유지(2단계) 할증(3·4·5단계)으로 나뉜다.

‘할인’ 단계의 경우 직전 1년간 비급여 보험금을 한 차례도 수령하지 않은 경우로, 보험금이 5% 내외로 감면된다. 4세대 실손보험 가입자의 약 62.1%가 여기에 해당할 것으로 추정된다. ‘유지’는 직전 1년간 비급여 보험금 수령액이 100만원 미만인 경우다. ‘할증’ 단계는 직전 1년간 비급여 보험금을 100만원 이상 받은 경우 적용된다. 수령액에 따라 할증율이 100~300%로 다르다. 4세대 실손보험 가입자라면 가입한 회사 홈페이지 등을 통해 비급여 보험금 누적 수령액과 예상 할인·할증 단계를 조회할 수 있다.

할인·유지·할증 단계는 매년 갱신된다. 보험료 갱신 직후 1년간 적용됐다가, 1년 후에 다시 직전 12개월간 비급여 보험금을 기준으로 산정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급여 부분의 보험료 5000원, 비급여 부분의 보험료 7500원으로 매달 1만2500원을 내는 보험을 가입했다고 가정해 보자. 작년 비급여 보험금을 130만원 수령했다면, 할증 3단계(할증률 100%)가 적용돼 비급여 부분 보험료가 100% 오른 1만5000원이 된다. 이에 따라 매달 내야 하는 보험료는 총 2만원(5000원+1만5000원)으로 오르는 것이다. 그다음 1년간 비급여 진료를 한 차례도 안 받았다면 다시 최초 비급여 보험료인 7500원에서 5% 할인된 7150원으로 변경돼 매달 1만2150원(5000원+7150원)씩 내면 된다.

◇가입과 계약 전환은 신중하게

그렇다면 실손 보험은 어떻게 활용하는 게 좋을까? 실손 보험은 표준화 상품이라 보장 내용이 동일하지만, 회사별 위험 관리 능력에 따라 보험료가 달라지니 저렴한 상품을 선택하는 게 좋다. 다만 손해율도 함께 살펴봐야 한다. 손해율이 높다면 향후 보험료 인상 폭이 커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손해보험협회는 각 상품의 직전 3년간 보험료 인상률과 손해율을 공시하고 있다.

가입자가 원하면 기존 실손 보험(1~3세대)에서 4세대 상품으로 계약을 전환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4세대 상품이 기존 상품 대비 보험료가 저렴하다. 다만 4세대 실손 보험은 자기 부담률이 높고 재가입 기간이 짧은 만큼 본인의 건강 상태와 의료 이용 성향 등을 잘 고려해야 한다. 큰 질병이 없고, 연간 병원 진료 횟수가 적다면 4세대 전환이 유리한 경우가 많다.

계약을 전환한 뒤에도 무사고로 6개월 이내인 경우에는 이를 되돌릴 수 있다. 보험금 지급 사유가 생겼어도 3개월 이내라면 철회 가능하다. 실손 보험 보험금 청구권 소멸 시효는 3년이다. 암 진단을 확정받은 날, 후유 장애 판정을 받은 날과 같이 지급 사유가 발생한 시점부터 3년 안에만 보험금을 청구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해당 기간이 지나면 보상받기 어렵기 때문에, 그때그때 진단서와 영수증을 잘 챙겨 소멸 시효 전에 꼼꼼히 보험금을 청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