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당국이 2일 ‘책무구조도’ 시행을 골자로 한 개정 지배구조법(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 해설서를 발표했다. 책무구조도는 횡령, 불완전 판매 등의 금융 사고를 막기 위해 금융회사 대표이사와 임원에게 내부 통제 관련 구체적 책무(責務)를 지정해 문서화한 것이다. 금융 사고가 발생해도 금융지주 회장이나 은행장 같은 최고경영자(CEO)는 책임져야 할 범위가 모호하기 때문에 처벌이 어렵다는 지적에 따라 법령을 촘촘히 한 것이다. 하지만 계열사에서 금융 사고가 발생할 경우 모회사인 지주회사 회장에게 책임을 묻기 어려운 구조여서 ‘반쪽짜리 대책’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그래픽=백형선

◇금융 사고 시 CEO까지 처벌

금융위원회가 개정 지배구조법 시행을 하루 앞두고 2일 공개한 해설서에는 책무의 개념과 범위부터 책무를 어떻게 나누고 지켜야 하는지 등 책무구조도를 만들어 운영해야 하는 금융회사가 알아야 할 내용들이 구체적으로 설명돼 있다.

해설서에 따르면 CEO를 비롯해 최고위험관리책임자(CRO), 최고고객책임자(CCO) 등 이른바 ‘C레벨’ 임원들이 모두 책무 지정 대상에 포함된다. 기존에는 구체적 책무가 임원 별로 정해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은행에서 직원 횡령 같은 사고가 터질 경우 담당 임원이나 CEO는 “하급자의 위법 행위를 알 수 없었다”고 하면 빠져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해당 직원과 부서장뿐 아니라 은행 내에서 이상 자금 흐름을 감시해야 하는 임원이나 직원들의 일탈이나 비윤리적 행위를 감독해야 하는 은행장도 처벌 대상이 된다.

은행장을 비롯한 금융회사 CEO는 내부 통제를 위한 정책·기본방침·전략을 세워 운영해야 하고, 금융 사고의 잠재적 위험 요인과 취약 요인을 계속 점검해야 하는 등 13개에 달하는 세부 지침을 지켜야 한다. 금융위 관계자는 “예전처럼 금융 사고가 터졌을 때 은행장이 임원이나 부서장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빠져나가기 어려워진 것”이라고 말했다.

◇지주 회장에겐 계열사 사고 책임 묻기 어려워

하지만 책무구조도 도입에도 금융지주 회장은 여전히 처벌받기 어려운 점은 허점으로 꼽힌다. 책무구조도는 지주사, 은행, 증권, 보험 등 개별 법인이 각사 CEO 책임하에 따로 만들어 운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은행에서 횡령이나 불완전 판매 같은 사고가 터졌을 때 당국이 책무구조도를 근거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대상은 은행장까지로 한정된다. 지주 회장은 은행을 비롯해 증권·보험·카드 등 계열사에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지주사의 CEO일 뿐이다. 지주사에서 금융 사고가 벌어지지 않는 한 지주 회장을 처벌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지주사들은 직접 영업을 하지 않고 계열사 관리만 하기 때문에 돈과 관련된 금융 사고가 터질 가능성이 낮다. 한 금융 분야 연구원은 “은행 등 계열사를 사실상 지배하는 지주 회장에 대한 처벌이 어렵다면, 금융지주가 전사적 노력을 기울여 금융 사고 발생을 원천 봉쇄하도록 하는 것은 쉽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 당국은 이 같은 문제를 막기 위해 금융회사가 책무를 배분해야 하는 대상에 ‘책무에 사실상 영향력을 미치는 다른 회사 임원(대표이사 포함)’도 넣기로 했다. 다른 회사인 지주사 소속이어도 처벌할 수 있다는 점을 밝힌 것이다. 하지만 지주 회장이나 지주사 임원이 계열사에 어떤 영향을 끼쳐 금융 사고가 발생한 것인지를 규명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데다 계열사가 책무구조도를 만들 때 지주사의 책임을 구체적으로 쓰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실효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위 관계자는 “지주 회장은 지주사에 대해서만 책임을 지는 것이 원칙이긴 하지만 지주에 ‘계열사 관리 업무’도 있어서 금융 사고 시 지주 회장과의 연관성을 완전히 차단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며 “책무구조도 등이 (금융 사고 예방을 위한) 실효적 제도로 정착될 수 있도록 보완 작업을 해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책무구조도

금융회사 임원 등이 담당하는 내부 통제와 관련된 구체적 책무(責務)를 지정해 문서화한 것이다. 영국·싱가포르 등 금융 선진국에서 활용되고 있다. 금융지주 회장, 은행장 같은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해 최고위험관리책임자(CRO), 최고고객책임자(CCO) 등 이른바 ‘C레벨’ 임원들과 준법감시인·위험관리책임자 등 일부 직원이 책무 지정 대상에 포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