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벨리온 AI 반도체 칩 '아톰(ATOM)' 이미지. (리벨리온 제공)

SK텔레콤이 12일 자회사인 인공지능(AI) 반도체 스타트업 사피온과 경쟁사 리벨리온의 합병을 전격 발표한 가운데, 기존 리벨리온 주주들은 사전에 이와 같은 내용을 전혀 전달받지 못했다며 당혹감을 드러내고 있다. 리벨리온은 이날 오후 주주 간담회를 열고 합병안에 대해 투자자들과 ‘사후 논의’를 하기로 했다.

이날 SKT는 지분 62.5%를 보유한 자회사 사피온이 리벨리온과 합병한다고 밝혔다. SKT가 지분을 팔고 엑시트(투자금 회수)하는 구조는 아니다. 통합 법인을 만들고 SKT는 전략적 투자자(SI)로 남겠다는 계획이다. 올해 3분기 중 합병을 위한 본계약을 체결하고, 연내 통합 법인을 출범한다는 방침이다. 이외 구체적인 합병 형태 등은 아직 공개할 수 없다는 게 SKT의 공식 입장이다.

문제는 리벨리온이 이 같은 내용에 대해 주주들의 사전 동의를 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통상 법인이 합병을 하거나 신규 투자를 유치하는 등 중대한 결정을 내릴 때는 기관 투자자 등 주주들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IB 업계의 한 관계자는 “주주들에게 한마디 말도 없이 이런 일을 결정하고 발표했다는 건, 계약 위반에 따른 페널티를 감수하겠다는 메시지로 해석된다”며 “이날 간담회에서 위약금을 지급할지 아니면 적정한 가치에 회사 측이 지분을 되사줄지 결정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업계에 따르면 보통 이런 경우 회사는 투자 원금에 일정 내부수익률(IRR)을 붙여 투자자들에게 돌려줄 의무를 지닌다. IRR은 12~15% 선에서 정해지는 게 일반적이다.

한 벤처캐피털(VC) 관계자는 “많은 기관이 리벨리온 몸값이 지금보다 현저히 낮을 때 투자했는데, 지금에 와서 ‘합병에 불만 있으면 10%대 IRR만 받고 나가라’는 식으로 이야기한다면 굉장히 실망스러울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재 리벨리온은 상장을 추진 중인데, 대다수 주주들이 2조원대 기업가치를 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리벨리온은 올해 초 8000억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고 1650억원 규모의 시리즈B 투자를 유치했다. SI인 KT와 KT클라우드, 싱가포르 국부펀드 테마섹의 파빌리온캐피탈, KDB산업은행, 노앤파트너스, KB증권, KB인베스트먼트, SV인베스트먼트, 미래에셋벤처투자, 미래에셋캐피탈, IMM인베스트먼트, KT인베스트먼트, 서울대기술지주 등이 참여했다. 지난해 6월 몸값 3500억원에 시리즈A 투자를 유치한 지 약 1년 반 만에 기업가치가 4000억원 이상 오른 것이다.

반면 업계 일각에서는 이해할 만한 결정이라는 반응도 나온다. IB 업계의 한 관계자는 “AI 반도체 스타트업이 각자도생하기 힘든 상황에 이 방법이 최선일 수도 있다”면서 “두 회사 모두 매출도 제대로 못 내고 있는 만큼, 이렇게 힘을 합치면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