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린랲 제품. /크린랲 홈페이지

비닐 랩과 위생 장갑 등으로 유명한 식품 포장용품 회사 크린랲이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창업주인 고(故) 전병수 회장과 차남이 장남 전기영씨를 상대로 제기한 경영권 분쟁 소송이 장남의 승리로 끝난 지 일주일 만에 차남 전기수씨가 대표이사로 있는 크린랲 법인이 기업회생 절차를 신청한 것이다.

17일 투자은행(IB) 업계 및 법조계에 따르면 크린랲은 지난 4일 서울회생법원에 기업회생 절차를 신청했다. 크린랲의 기업회생 절차 개시 여부는 대표자 심문 등 절차를 거쳐 조만간 결정될 예정이다. 지난 9일 포괄적 금지 명령과 보전 처분 결정을 내린 재판부는 오는 22일 대표자 심문을 진행한다.

지난해에만 1700억원대의 매출액을 달성한 것은 물론, 자산이 부채를 초과하는 상황에서 기업회생 절차를 신청한 것은 이례적이다. 지난해 기준 크린랲의 자산 총계는 1400억원, 부채 총계는 940억원이다. 단기간에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 자산인 유동자산만 650억원 수준이다. 크린랲도 재무제표에 “부채 상환을 포함해 예상 운영 비용을 충당할 수 있는 충분한 요구불예금 및 채권을 보유하고 있다”고 기재했다.

업계에서는 크린랲이 법정관리를 신청한 데에는 경영권 분쟁이 원인이 된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법인이 기업회생 절차에 돌입하게 되면 주주의 권한은 제한되고 법원에서 선임한 관리인이 재산의 관리 및 처분 권한을 갖게 된다. 관리인이 작성하는 회생계획안에 따라 주주들의 주식을 감자 또는 소각하고 특수관계인을 대상으로 증자해 경영권을 확보할 수도 있는 것이다. 통상 관리인은 기업의 대표이사가 맡는다. 현재 크린랲의 대표이사는 차남(17.33%)이고, 최대주주는 지분 76.36%를 보유한 장남이다.

크린랲의 경영권 분쟁은 전 회장이 보유한 크린랲 주식 21만주를 장남에게 증여한다는 내용의 주식증여계약서부터 시작됐다. 전 회장은 장남이 협박과 폭행을 행사하며 경영권 승계를 이유로 주식 양도를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장남은 정당하게 증여를 통해 주식을 넘겨받은 것이라고 반박했다.

1심은 “장남인 전씨가 전 회장 소유의 크린랲 주식을 증여받기로 한 계약을 인정할 수 없고, 이에 따라 해당 주식은 차남에게 반환해야 한다”며 전 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전 회장이 1심에서 승소하며 차남 전씨는 2022년 크린랲의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그러나 2심에서 1심 판결이 뒤집혔고, 지난달 28일 대법원도 2심 판결이 정당하다고 봤다. 전병수 회장은 소송이 진행 중이던 2020년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