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심리적 마지노선인 1400원에 접근한 가운데 만기 1년 미만 미국 단기 채권에 대한 투자 심리가 살아나는 분위기다. 달러 가치가 오르면 채권 투자자는 환차익을 누릴 수 있다. 게다가 단기채는 금리 영향을 덜 받는다. 금리 인하 기대감이 후퇴한 요즘 같은 상황엔 장기채보다 매력적일 수 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달러를 정리하고 있다. /뉴스1

16일 증권정보포털 세이브로에 따르면 올해 들어 이달 12일까지 국내 투자자는 미국 채권을 23억1106만달러(3조1950억원) 사들였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9억9871만달러)보다 231% 많은 수준이다.

올해 미 채권 인기의 주된 배경은 금리 인하 기대감이었다. 채권 가격은 금리와 반대로 움직이는데, 최근까지만 해도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오는 6월 금리 인하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곧 금리가 내리고 채권 가격이 오를 것으로 내다본 투자자들이 작년보다 채권을 2배 이상 사들인 것이다.

다만 이달 들어서는 자본시장을 둘러싼 분위기가 달라졌다. 여전히 끈적한 고물가 상황을 암시하는 지표가 연거푸 발표되면서 금리 6월 인하론은 후퇴했고, 달러 강세가 심화하면서 원·달러 환율은 치솟았다. 이란의 이스라엘 공습으로 안전자산 선호 현상까지 강해지면서 15일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8.6원 오른 1384.0원에 마감했다. 2022년 11월 8일(1384.9원)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미 채권 투자자에게 원·달러 환율 상승은 호재다. 채권에서 나오는 이자가 달러이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달러 가치가 계속 오르면 환차익을 누릴 수 있다. 채권 투자에 악재인 금리 인하 기대감 후퇴에도 채권 수요 자체는 여전한 이유다.

발 빠른 투자자는 미 장·단기 채권 중에서도 금리 영향이 적은 단기채를 주목하고 있다. 통상 단기채는 발행될 때 당시 금리 수준에 맞춘 이자를 약속한다. 즉 단기채 투자자는 몇 달만 기다리면 약정 금리를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투자업계 한 고위 관계자는 "단기채는 채권 가격 하락에 주목할 필요가 없다. 쿠폰(채권 이자)이 얼마나 나오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국내 상장지수펀드(ETF) 수급을 봐도 최근 단기채에 대한 시장 관심이 보인다. 투자자들은 대표적인 미 단기채 ETF인 'ACE 미국달러단기채권액티브'를 이달 9거래일 동안 하루만 빼놓고 계속 매수했다. 'TIGER 미국달러단기채권액티브'에 대해서도 개인 투자자는 이달 12일에만 1억2463만원어치를 사들였다. 이는 올해 들어 가장 큰 순매수 규모다.

전문가들은 상대적으로 금리 영향을 많이 받는 장기채도 당장은 분위기가 좋지 않지만, 중장기적으로 살아날 가능성이 높은 만큼 기다리는 전략이 유효하다고 조언했다. 연준의 금리 인하 시점이 늦춰졌을 뿐 인하 자체가 없던 일이 된 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시카고상업거래소(CME)그룹 페드워치에 따르면 연준이 9월에 금리를 낮출 가능성은 45.7%다. 이는 1개월 전보다 32.8%포인트(p) 상승한 수치다. 그만큼 6월 금리 인하 가능성은 낮아졌지만, 아직까지는 하반기 중 금리를 낮출 것이라는 기대가 살아 있다.

국채 발행 물량을 고려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국채를 찍을 때 물량이 시장 내에서 전부 소화될 것 같지 않을 때 금리를 높여 발행하는데, 지난해 10월엔 미국채 10년물의 금리가 4.92%까지 치솟을 정도로 물량이 많았다. 채권의 '금리'가 높다는 건 반대로 말하면 채권의 '가격'이 낮다는 의미다. 올해는 전년보다 7000억달러가량 적게 발행될 예정인 만큼 채권 가격은 오를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남용수 한국투자신탁운용 ETF운용본부장은 "국채 발행이 많으면 공급이 많아지니 채권 가격 자체가 저렴해지는데 공급이 줄어든다는 건 채권 가격이 오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라며 "현재 미국채 장기금리는 4.6% 이상으로 새로 진입하기 매력적인 상황"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