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성과 기술력이 있지만 지금 당장 이익을 내지 못하는 혁신 기업을 발굴하고자 2005년 도입한 기술특례상장 제도는 제 역할을 하고 있을까. 도입 20년이 다 되어 가지만, 기술 특례로 상장한 기업 중 성공 사례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96%의 기업이 상장 당시 제시한 실적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고, 4곳 중 3곳은 현재 주가가 공모가를 밑돌고 있다. 기술특례기업의 81%가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그런데도 퇴출을 유예해 줘 ‘좀비기업’만 양산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기술특례상장 제도의 문제를 짚어봤다.
[편집자 주]

기술특례상장 제도가 취지에 맞게 혁신 기업의 성장 마중물을 마련하면서도 시장 건전성을 해치지 않으려면 제도 개선이 뒷받침돼야 한다. 전문가들은 상장 단계에서 기업가치를 적정하게 평가받을 수 있도록 기관 투자자의 책임을 확대하고, 기업공개(IPO) 이후 사업 정보를 더 적극 공개하는 방안을 공통으로 꼽았다.

1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이후 올해까지 기술특례상장 제도로 코스닥시장에 입성한 37개사(스팩 합병 제외)는 기관 투자자 대상 수요예측에서 평균 856.99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하지만 일정 기간 의무 보유하겠다고 약속한 비율은 7.4%에 그쳤다. 같은 기간 코스닥시장 상장 기업 평균 의무 보유 확약률(11.85%)에도 못 미쳤다. ‘공모주 상장 첫날 주가가 오른다’는 공식이 굳어지면서 물량은 확보하길 원하면서도 단기 투자에 그치는 기관 투자자가 그만큼 많았다는 의미다.

일러스트=챗GPT 달리3

기술특례상장 기업의 기업가치를 미래 실적을 추정해 책정하는 상황에서 높은 경쟁률과 낮은 의무확약률이 공모가만 더 부풀릴 수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기술특례상장 기업이야말로 성장성을 기대해 긴 호흡의 투자가 이뤄져야 하는데, 지금은 투기 수준”이라며 “기관 투자자의 수요예측이 적정 가격을 평가하는 기능을 다 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상장 관련 제도 개선을 고민 중이다.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말부터 ‘IPO 주관 업무 혁신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하며 제도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중으로 대책이 나올 예정이지만, 기술특례상장 제도 맞춤형은 아니다.

기술특례상장 과정의 수요예측 참여 기관만큼은 조건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2015년 투자일임사와 부동산신탁사 등으로 수요예측 대상 기관 범주를 늘린 이래 청약 경쟁률만 급증했기 때문이다. 2022년부터 투자일임업자가 수요예측에 참여하려면 ‘등록 후 2년이 지나고 투자일임재산 규모 50억원 이상’이거나 ‘투자일임재산 규모 300억원 이상’이어야 한다는 조건을 추가했지만, 여전히 문턱이 낮다는 게 중론이다.

코너스톤 투자자 제도도 보완 대책으로 거론된다. 이 제도는 기관투자자가 IPO 예정 기업의 증권신고서 제출 이전에 미리 특정 공모가로 공모주식을 인수하고 또 일정 기간 보유하겠다고 약정하는 방식이다. 연기금 등 주요 기관 투자자가 대상이다. 이들이 약정한 가격보다 공모가가 높게 책정되면 인수 물량이 급감하기 때문에 ‘묻지 마 청약’ 방식의 수요예측을 제한하는 효과가 기대된다.

코너스톤 투자자 제도 도입을 위해선 증권신고서 제출 전 공모주 모집을 금지하는 현행 자본시장법을 개정해야 한다. 하지만 2017년 금융투자업계에서 의견이 나온 이래 별다른 진척이 없었다. 제21대 국회에 제출된 개정안 역시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고, 다음 달이면 자동 폐기될 예정이다.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뉴스1

상장 후 관리를 강화하자는 주장도 다수였다. 특히 기술특례상장 기업이 사업 정보를 적극 공시하고, IR(기업 설명) 활동을 강화할 수 있도록 강제 규정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예를 들어 제약·바이오 상장사가 임상 상황이나 기술 이전에 따른 마일스톤(단계별 기술료) 수취 등을 공시하는 것처럼 기술특례상장 기업의 주요 계약 변동 상황도 공시를 의무화하자는 것이다. 기술특례상장 기업은 미래 매출을 추정할 때 따냈거나,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계약 내용을 근거로 삼기 때문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지금은 IPO 전 제시한 미래 추정 실적을 달성했는지 여부 등만 정기 보고서에 담아 밝히고 있다”며 “투자 판단을 위해 사전 정보를 더 많이 공시하도록 규정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기술특례상장 기업은 투자자 대상 IR 활동을 더 자주 진행하도록 의무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현재 코스닥시장 상장 기업들은 연간 2회 이상 IR을 진행하겠다고 한국IR협의회 등과 서약한다. 자율적이어서 지키지 않아도 제재를 받지 않는다. 이에 악재를 숨기다가 정기보고서 공시 이후에야 문제가 불거지는 일이 빈번하다.

다른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특히 기술특례상장 기업은 IR을 의무화하는 게 필요하다”며 “상장, 자금조달 할 때만 IR을 하다가 이후엔 아무런 정보도 내놓지 않는 기업을 시장에서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