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들어 기관 투자자들이 선별적으로 회사채를 골라 담으면서 양극화가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까지는 건설업 리스크가 크지 않은 이상 대체로 잘 팔리는 분위기였다.
이달 들어서는 부동산 관련 업종 외에도 신용등급 BBB+급 이하 비우량 회사채, 실적 부진 기업에 대해선 투자심리가 확연하게 꺾였다. 시장 안팎에서는 기관투자가들이 적극적으로 회사채를 대거 사들였던 '연초효과'는 사실상 끝난 것으로 보고 있다.
8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해 들어 전날까지 발행된 회사채는 총 33조6536억원으로 집계됐다. 순발행액(발행액-상환액)은 14조6372억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발행된 회사채가 26조3040억원, 회사채 순발행액이 11조6711억원이었던 점과 비교하면 1년 만에 각각 28%, 25%씩 늘어났다.
올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를 인하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면서 시장금리가 하락해 기업들은 회사채를 대거 찍었다. 지난해 말 태영건설 워크아웃 신청으로 회사채 발행 수요가 연초로 밀린 데다 기관의 풍부한 유동성까지 몰리면서 회사채 시장 강세가 이어졌다.
실제 크레딧 스프레드도 크게 줄었다. 크레딧 스프레드는 무위험자산인 국고채 대비 회사채에 요구되는 가산금리를 의미한다. 크레딧 스프레드가 축소되면 회사채가 원활하게 발행되고, 수급도 안정적이어서 기업 자금 조달 환경이 개선됐다는 의미로 쓰인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6일 기준 신용등급 AA- 회사채 3년물의 국고채 대비 스프레드는 63.7bp(1bp=0.01%포인트)로 나타났다. 지난해 말 74bp대에서 움직인 것과 비교하면 10bp 넘게 줄었다. 연말 대비 국고채 금리는 소폭 올랐지만, 회사채 금리가 떨어진 영향이다.
유동성 효과로 크레딧 스프레드가 줄었지만, 그만큼 회사채 가격이 고평가됐다는 의미도 된다. 이에 회사채 수요예측에서 투자수요를 확보하지 못한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지난 6일 CJ CGV(A-)는 1200억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 발행을 위한 수요예측에서 240억원의 매수 주문을 받는 데 그쳤다. 앞서 4일에는 여천NCC(A)가 2년물로 1500억원어치 회사채 수요예측을 진행했는데, 250억원의 주문만 들어왔다. 주관사들은 추가 청약에 공을 들이고 있다.
발행사들이 민평금리 대비 낮은 수준에서 모집액을 채우는 '언더발행'도 크게 줄었다. 오히려 높아지면서 오버발행이 늘어나는 추세다. 전날 대신에프앤아이(A)는 1년 6개월물(560억원), 2년물(880)억원로 나눠 회사채를 발행하는데 각각 민평금리 대비 47bp, 40bp 높은 수준에서 발행하기로 확정했다. 이어 넷마블(A+)도 2년물(2500억원), 3년물(1500억원) 모두 등급 민평금리 대비 50bp 높은 수준에서 4000억원의 회사채를 발행하기로 했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우려에서 자유롭지 못한 증권사들도 회사채 발행을 앞두고 있다. 이달 키움증권(AA-), 메리츠금융(AA) 등이 회사채를 찍어 자금을 조달할 예정이다. 우량채로 분류되지만, 증권업종에 대한 투자심리가 회복된 건 아니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평가한다. 부동산 PF 우려로 인해 지난달 중견 건설사인 HL D&I(BBB+), 한국토지신탁(A)은 회사채 수요예측에서 미매각이 발생했다.
채권 전문가들은 기업별 옥석 가리기가 중요해진 시점이라고 내다봤다. 정혜진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3월 말로 갈수록 분기 말 자금 유출에 따른 수급 강도가 약해지는 데다 그간 강하게 붙었던 스프레드 레벨도 조정이 예상된다"며 "2월 말까지 이어진 회사채 발행 강세 영향으로 크레딧 스프레드가 축소될 수 있지만, 건설·증권사 등 우려 업종이 분포하면서 전방위적인 강세는 제한될 전망이다"고 분석했다.
박경민 DB금융투자 연구원은 "연초 이후 풍부한 유동성에 힘입어 지속된 크레딧 스프레드 축소로 섹터 전반에서 가격 부담이 높아진 상황"이라며 "보통 3월은 자금 유출 변동성이 확대되면서 크레딧 채권 매수가 약화하는 계절성을 보이기에 섹터별, 만기별 선별적 강세가 예상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