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은현

한국 주식시장이 박스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국내 증시가 부진한 이유 중 하나로 너무 많은 신규 상장(IPO)을 꼽고 있다. 자금이 한정적인데, 시장 규모에 비해 많은 상장이 몰리면서 투자자가 분산되고 이로 인해 시장에 부담을 준다는 것이다. IPO는 지수 왜곡에도 영향을 미친다. 신규 상장 기업은 상장 이틀째부터 코스피지수와 코스닥지수에 편입되는데, 새내기주는 상장 첫날 과열 양상을 보였다가 이튿날부터 하락하는 때가 많다. 아무래도 지수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26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유가증권(코스피)시장과 코스닥시장을 합친 시가총액은 17년 만에 두 배 넘게 늘었다. 코스피지수 2000선 시대를 열었던 2007년 1055조원에서 올해 2400조원으로 증가했다. 그러나 이 사이 지수는 소폭 오르는 데 그쳤다. 물론 시기적으로 코스피지수가 3000을 넘은 때도 있었지만, 어쨌든 17년간 2000선 초반대를 맴돌고 있다.

한국 증시가 부진한 이유는 많다. 지정학적 리스크에다 과도한 상속세 등으로 인한 대주주 일가의 사익 편취, 불투명한 지배구조, 주주환원에 인색한 분위기 등이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수급 측면에서 봤을 때 과다 상장이 일으키는 문제도 많다는 것이 일부 전문가의 지적이다.

그래픽=정서희

EY한영이 발간한 ‘2023년 EY 글로벌 IPO 트렌드 리포트’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기업공개 건수는 1298건으로 전년대비 8% 감소했다. 하지만 한국은 나 홀로 12% 증가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공모주 투자가 자산가들의 주요 투자 수단이고, 그러다 보니 상장 활성화를 위해 정부 차원에서 다양한 정책이 시행된다”면서 “자격이 안 되는 기업이 상장하는 문제와, 이로 인해 전체 시장의 질이 떨어지는 문제는 심각하게 생각해 볼 만한 문제”라고 꼬집었다.

증시가 좋을 때 신규 상장 추진이 잇따른다는 점도 문제다. 너무 많은 상장으로 지수가 억눌리는 결과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조선비즈가 2000년부터 현재까지 국내 주식시장 연간 신규 상장 추이를 분석한 결과, 증시 호황이 절정에 다다랐을 때 공모 금액이 크게 늘었고, 상장한 기업 수 역시 많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최근 사례인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한창이었던 2021년과 2022년이 대표적이다.

2000~2024년 한국 주식시장 신규 상장 시가총액, 공모 규모 추이. /그래픽=정서희

코스피가 처음으로 종가 기준 3000선을 넘어섰던 2021년의 경우 신규 상장 종목의 시가총액 합계액은 124조원 규모, 공모 금액은 20조원에 달했다. 한 해에만 129개 기업이 신규 상장했다. 강세가 이어졌던 2022년에도 각각 88조원, 16조원이었다. 직전년도인 2020년 총 시가총액과 공모 금액 규모가 26조원, 4조원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IPO 시장에 자금이 1년 만에 5배가량 더 몰린 셈이다.

역시 ‘불마켓’(bull market·황소장)이었던 2017년과 2010년, 2007년도 비슷한 모습이었다. 코스피 2500시대를 열었던 2017년 신규 상장 종목의 시가총액 합계액은 60조원, 공모금액은 7조원이었다. 2010년의 경우 총 시가총액 규모가 44조원, 2007년은 34조원에 달했다.

이렇게 IPO 시장이 과열된 직후엔 주식시장이 크게 흔들리는 양상을 보여왔다. 통상적으로 새내기 상장주는 최대한 공모가를 높게 받으려 하는데, 장이 좋으면 실제 체력보다 과하게 부풀리는 경우가 자주 생긴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신규 상장 종목이 대부분 상장 후 거품이 빠지면서 주가가 폭락하게 되고, 이는 주가지수를 억누르는 원인이 된다”면서 “이른바 개미(개인 투자자)의 유동성은 한정적이라 대규모 상장이 이어지면 수요·공급의 차원에서 시장은 결국 무너지게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