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 배아 연구원 A씨는 최상의 정자, 난자를 선별하고 임신에 적합한 배아를 만들고 키우는 전문가다. 여러 배아 중 임신 가능성이 높은 배아를 선별하는 건 A씨가 직접 눈으로 보고 판별하는 중요한 과정이다. 배아 패턴을 보고 고민하던 A씨는 인공지능(AI)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현미경으로 본 배아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 이를 컴퓨터에 올리자 1초 만에 배아 등급, 임신 가능성이 점수로 매겨졌다. (아직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판매 허가가 나오지 않아 실제 병원에서 사용하고 있진 않다. 사용 시 예상되는 모습을 가상의 인물 A씨에 빗대어 묘사했다.)

보통 시험관 시술 과정은 이렇다. 시술 시 한 번에 10개의 난자를 채취하고, 정자를 수정시켜 5~10개 배아를 키워낸다. 이중 좋은 배아를 선별해 자궁에 이식해야 임신 가능성이 높아진다. 배아는 의료진, 임상 배아 연구원이 육안으로 보고 판단한다. 이 과정에서 배아 패턴이 다양해 의료진마다 편차가 발생하곤 한다.

만약 임신 확률이 높았던 배아의 모습을 AI가 배우고, 의료진에게 알려주면 어떨까. 스타트업 카이헬스의 배아 분석 AI 솔루션 개발은 바로 이 질문에서 시작됐다. 카이헬스가 만든 AI 솔루션 ‘비타 엠브리오(Vita Embryo)’는 좋은 배아, 즉 임신 가능성이 높은 배아를 고르도록 도와주는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만 설치하면 배아를 잘 고를 수 있도록 의료진의 결정에 도움을 주는 ‘동반자’가 생기는 셈이다.

카이헬스에서 개발한 배아 분석 AI 솔루션 비타 엠브리오(Vita Embryo). 배아의 현미경 사진을 올리면, 1초 만에 배아 상태와 등급이 판별된다. /카이헬스 제공

이혜준 카이헬스 대표는 최근 조선비즈와 가진 인터뷰에서 “어떻게 하면 난임 부부들이 덜 힘들게 아이를 가질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창업을 결심하게 됐다”며 “배아 선별은 의료진에 따라 일관성이 떨어지는 부분이어서 객관적이고 정확도를 높이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개발 동기를 설명했다.

이 대표는 서울대병원 산부인과 전공의·전임의, 마리아병원 진료과장·국제클리닉 과장을 역임한 후 노스웨스턴대학교에서 MBA를 취득한 의사 출신 기업인이다.

카이헬스는 국내외 10여 개 의료기관으로부터 난임 시술 과정에서 모이는 배아의 데이터를 확보한다. 그 과정에서 AI는 현미경으로 본 배아 모습 중 임신 가능성이 높았던 것, 낮았던 것 등을 학습한다. 데이터가 쌓일수록 선별 정확도도 높아진다. 육안이 아니라 AI 알고리즘을 활용해 배아 선별 적중률을 높이는 게 핵심이다.

2021년 10월 창업한 카이헬스는 배아 분석 AI 솔루션의 기술력을 인정받아 2022년 스마일게이트인베스트먼트로, 트랜스링크인베스트먼트부터 시드 투자를 받으며 누적투자 금액 10억원을 유치하기도 했다.

카이헬스를 발굴해 투자한 주은지 스마일게이트인베스트먼트 수석팀장은 “아직 초기 단계이다 보니 대표의 이력, 회사의 주요 인력 등을 보게 된다”며 “비슷한 기술을 가진 스타트업이 호주, 이스라엘 등지에 있지만, 배아 선별 기술 자체가 초기 단계여서 시장을 선도하는 업체는 없으며, 아시아 시장에서 배아 분석 AI 솔루션을 개발하는 곳은 카이헬스가 유일하다”고 투자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지난해 투자 후 카이헬스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에서 추진한 인공지능 학습용 데이터 구축 사업에 선정됐다”며 “개별적으로 테이터를 수집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데이터를 확보해 AI를 학습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잡기도 했다”고 부연했다.

왼쪽부터 주은지 스마일게이트인베스트먼트 수석팀장과 이혜준 카이헬스 대표. 그래픽=정서희

배아를 임상 배아 연구원과 의료진이 키우고 선별할 때는 정확도가 40~50%에 그치지만, 배아 분석 AI 솔루션 비타 엠브리오를 이용하면 60~70%까지 높아진다고 이 대표는 설명했다. 여기서 정확도란 선별한 배아 중 임신 가능성이 높은 우수한 배아의 비율을 뜻한다. 실제 임신 성공률과는 다르다.

이 대표는 “지난해 출생한 아이 10명 중 1명이 난임 시술로 태어났는데, 앞으로 이 비율은 더 높아질 전망”이라며 “아직 우리나라에선 난임 시술 비용이 회당 300만원 이상이고 성공률은 30%에 불과해 여러 차례 반복해야 하는 부부에겐 심적, 금전적으로 큰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비타 엠브리오를 이용하면 배아 선별 정확도는 높이고 시험관 시술 횟수를 줄일 수 있다는 게 이 대표의 설명이다. 보통 한 부부가 3~6회 시험관 시술을 진행하는데, 좋은 배아를 골라 임신율이 높아지면 시술 횟수도 줄고, 비용도 낮아진다.

현재 카이헬스는 배아 분석 AI 기술로 유럽 안전 관련 통합인증(CE) 인증을 획득한 상태다. 우선 아시아 시장 진출을 목표로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임상 허가를 진행하고 있다. 이르면 올해(2024년) 말에는 허가를 획득하고 국내에서 판매를 시작할 수 있을 전망이다.

주은지 수석팀장은 “미국, 유럽 등에서는 난임 시술 비용이 많이 들어 싱가포르, 태국 등 아시아 국가로 와서 난임 시술을 하는 사례도 많다”며 “카이헬스가 아시아 시장 진출을 목표로 임상 허가를 진행하고 있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난임 부부에게 도움을 주고자 시작한 일이지만, 창업은 하루하루가 어려운 과정이라고 이 대표는 토로했다. 이 대표는 “많은 사람이 써줘야 의미 있는 사업이 되는 건데, 정말 그럴 수 있을지 답을 구하기가 어렵다”며 “상품이 나온 후엔 병원에 B2B(기업 간 거래)로 영업해야 하는데, 특히 병원은 보수적인 측면이 많아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는 게 어렵지 않을까 예상한다”고 우려했다.

임상 배아 연구원들을 설득하는 과정도 만만찮을 전망이다. 현재 임상 배아 연구원들이 직접 현미경으로 배아를 보고 선별하는데, 왜 AI 도움을 받아야 하는지를 두고 심리적 거부감이 클 수 있어서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임상 배아 연구원이 부족하고, 풍부한 경력을 지닌 시니어 연구원 숫자가 더 적은 상황이어서 분명히 도움이 될 것이라고 이 대표는 강조했다.

이 대표는 “임상 배아 연구원, 의사가 함께 배아를 선별할 때 더 좋은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AI가 옆에서 도움을 주는 프로그램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향후 난임 치료를 넘어 피임, 임신 솔루션까지 확장해 건강한 가족을 만들기 위한 패밀리테크 기업으로 성장하고자 한다”고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