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정다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우려 등 기업금융(IB) 부문의 불황이 길어지면서 증권업계가 관련 조직을 개편하고 인적 감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29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올해 주요 증권사 IB 사업 부문은 부진을 겪고 있다. 금융투자협회 전자공시시스템 등에 따르면, 54개 증권사의 별도 기준 1~3분기 누적 IB 부문 수익은 전년 동기 대비 약 38% 감소한 2조5158억원으로 집계됐다. 부동산 시장 부실 우려가 여전한 등 경기 둔화 여파로 그동안 호실적을 이끌었던 IB 부문이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업계는 관련 조직·직원을 축소하거나 임원을 교체하는 등 IB 부문 발(發) 위기 대응에 나섰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당시 대폭 강화했던 부동산 PF 관련 부서가 주요 타깃이 됐다. 업계 1위 미래에셋증권은 지난달 부동산사업부를 기존 7개 본부에서 4개로 통폐합했다. 부동산사업부의 직위도 대표에서 본부장으로 한 단계 낮췄다.

서울 여의도 63스퀘어에서 바라본 흐린 날씨 속 여의도 증권가. /뉴스1

하이투자증권은 지난 14일 부동산 영업조직을 대폭 축소하는 인사를 실시했다. 이번 인사로 7명의 임원이 교체됐는데, 부동산 PF 사업을 지휘하며 지난해 연봉 65억원을 받아 '연봉킹'으로 주목받았던 김진영 투자금융총괄(사장)이 포함됐다. 또 기존 총괄급 조직이었던 부동산금융 부문도 대표이사 직속 4개로 조정됐다.

현대차증권과 BNK투자증권에서도 인력 감축이 발생했다. 현대차증권의 경우 부동산 PF 담당 조직을 본부에서 팀 단위로 축소했다. 이 과정에서 부동산 시장이 좋던 시절 다른 증권사에서 이직해 왔던 4명이 모두 회사를 떠났다. 앞서 지난 6월엔 BNK투자증권도 부동산 PF 관련 부서를 줄이기로 하면서 IB 부문 인력이 축소됐다.

증권사 IB 부문에 근무하는 한 직원은 "부동산 PF 사업은 작년이 제일 추운 줄 알았는데, 작년보다 올해가 훨씬 더 춥다"면서 "상황이 안 좋긴 대부분 증권사가 마찬가지인데 이 많은 사람이 다 어디로 갈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통상적으로 부동산 PF 등 증권사 IB 인력은 정규직보다 팀 단위로 움직이는 전문계약직 형태인 경우가 많다. 이들은 실적에 따라 계약 연장 여부가 결정된다. 그런데 이번처럼 증권사가 관련 조직을 축소할 시기엔 재계약보다 계약 종료·이직이 많을 전망이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장원재 신임 메리츠증권 대표(왼쪽)와 정영균 하나증권 신임 IB 그룹장. /각 사 제공

임원을 새로 영입해 분위기 변화를 꾀하는 곳도 있다. 메리츠증권은 지난 20일 최고리스크책임자(CRO) 경험이 있는 장원재 사장을 대표로 선임했다. 이와 더불어 메리츠증권은 IB 부서 3곳을 통폐합하고, 이세훈 부사장을 총괄로 두고 리스크를 관리하는 통합본부 체제로 조직을 개편했다. 성과가 부진한 임원도 다수 교체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나증권은 지난 1일 신임 IB 그룹장으로 정영균 전(前) 삼성증권 투자금융본부장을 임명했다. 정 그룹장은 2017년 삼성증권이 초대형 IB 인가를 받는 과정에 참여한 바 있다. 하나증권이 내년 초대형 IB 지정과 발행어음 업무 신청 등을 앞둔 만큼 정 그룹장의 역할이 막중한 상황이다. 그러나 그런 하나증권조차 부동산 부문 인력은 줄이겠다는 방침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IB 부문이 그동안 잘 나갔고, 그만큼 돈도 많이 썼는데 올해는 고금리 속 투자심리 악화에 따른 거래 위축, '파두 사태'에 따른 불안 요인 등으로 인해 전반적으로 상황이 좋지 않다"면서 "IB 부문에서 부진한 실적을 메꾸고자 자산관리(WM) 쪽에 눈을 돌리는 증권사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