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홍콩H지수가 급락하면서 관련 금융 상품을 판매한 은행과 증권사가 투자자들에게 투자 위험을 제대로 고지하지 않았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판매사(은행·증권사)는 해당 상품을 한 번 상환 받은 후 재투자한 투자자들이 대부분이라 고객들이 상품 구조를 모를 리 없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금융감독원의 판단은 다르다.

금감원은 최초 가입 시점뿐만 아니라 재투자 시점에도 판매사가 투자 위험을 성실하게 고지했어야 한다고 봤다. 이같은 금감원의 시선은 투자자들이 불완전판매를 인정받는 데에 유리하게 작용할 전망이다. 과거 사모펀드 불완전판매로 은행·증권사가 투자자의 손해를 물어줬던 만큼 이번 사태 역시 비슷하게 흘러갈 가능성이 있다.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깃발이 휘날리는 모습./뉴스1

29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감원은 투자자가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을 최초로 투자했을 시기와 조기 상환을 받아 롤오버(재투자)한 시기의 투자 위험은 다르다고 보고 있다. 투자자가 ELS의 구조를 알더라도 그가 롤오버한 시점에, 판매사가 당시 홍콩의 정세에 따른 손실 가능성을 설명하지 않았다면 불완전판매로 인정될 것이란 뜻이다.

앞서 금감원은 불완전판매로 인정된 라임 무역금융·옵티머스·독일 헤리티지 펀드에 대해 판매사가 투자자에게 투자 전액을 배상하라고 결정한 바 있다. 은행·증권사는 그간 롤오버한 투자자들은 상품 구조를 알아서 재투자를 한 것이며 이에 따라 불완전판매와는 무관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ELS는 구조 특성상 롤오버 투자자가 많다. ELS는 주가 지수 등에 연동돼 수익률이 결정되는 상품이다. ELS의 만기는 대개 3년으로 6개월마다 기초 자산의 가격 평가한 후 조기 상환을 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홍콩H지수를 기초 자산으로 하는 ELS라면 6개월마다 H지수를 관측해 최초 기준가의 95%(6개월), 90%(12·18개월), 85%(24개월), 75%(30개월), 60%(36개월) 이상일 경우 약정한 수익률을 지급받고 상환되는 식이다. 조기 상환의 기준이 되는 기준 가격은 ELS 계약에 따라 달라지는데 지수가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면 투자 원금을 모두 잃을 수 있다.

본래 3년 만기 상품인데 6개월 만에 조기 상환을 받을 수 있는 구조라, 롤오버하는 게 통상적이다. 판매사도 투자자에게 롤오버를 적극 권유한다. ELS 판매에 따른 수수료를 챙길 수 있는 이유에서다.

이런 구조 탓에 은행과 증권사가 수십조원의 홍콩H지수 ELS를 팔아치웠다. 업계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에서 내년 상반기 만기가 도래하는 홍콩H지수 ELS 상품 규모는 8조4100억원이다. 미래에셋증권과 KB증권 등에서 판매된 규모는 3조5000억원 수준이다.

2021년 초만 하더라도 H지수는 1만~1만2000포인트 수준이었는데, 28일엔 5957.08에 거래를 마쳤다. 중국의 빅테크 규제와 대형 부동산 업체의 파산 우려 등으로 2년 만에 지수가 반토막 났다. 현재 중국 경기가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투자자 중 상당수가 손실을 볼 것으로 보인다. 시장에선 3조~4조원의 원금 손실이 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미래에셋증권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 내 주가연계증권(ELS) 청약 화면/문수빈 기자

다만 증권사는 은행보단 불완전판매 이슈에서 자유로울 전망이다. 창구가 주요 판매처였던 은행과 달리 증권사는 주로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과 홈트레이딩시스템(HTS)에서 ELS가 판매됐기 때문이다.

대면 판매인 창구와 달리 스마트폰을 이용한 MTS는 원금 전액 손실 가능성을 투자자가 한눈에 알 수 있도록 고지돼 있다. 실제 홍콩H지수 ELS를 가장 많이 판매한 미래에셋증권은 MTS에서 ELS 조건 미충족 시 최대 손실률은 100%라고 수 차례 강조하고 있다.

현재 금감원은 홍콩H지수 ELS를 판매한 증권사로부터 판매 현황 등을 제출받아 서면 조사 중이다. 불완전판매의 전제는 손실인 점, 최근 논란이 된 ELS는 만기가 도래하지 않아 아직 손실이 확정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해 서면 조사에 그친 것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증권사도 (은행처럼) 현장 조사가 필요하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손실이 확정될 경우 금감원은 해당 ELS 판매 시기 증권사들이 앱 내에서 투자 위험 고지 화면을 알맞게 구현했는지, 창구 판매는 적절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따질 전망이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의견은 금융회사들의 ELS 판매 과정이 적합하지 않았다는 데에 기울어진 상태다. 29일 이 원장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투자자가 (가입 상품의 위험 등급과 원금 손실 가능성에 대한 이해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판매사 직원에게) ‘네’라고 답변한 녹취가 있더라도 이것만으로 판매사가 (불완전판매) 책임이 면제될 수 있는지는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