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머스 플랫폼 11번가를 큐텐(Qoo10)에 매각하려던 SK스퀘어의 시도가 좌절되면서, 재무적투자자(FI)들 주도 하에 11번가의 강제 매각이 진행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SK스퀘어가 콜옵션(주식을 살 수 있는 권리)을 행사해 5000억원과 이자를 갚지 않으면 강제 매각이 가능한데, 현재 SK그룹이 임원 인사를 앞두고 있어 총대를 메고 콜옵션을 행사할 사람이 없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FI들은 원칙적으로 SK스퀘어가 보유한 11번가 지분을 묶어 강제로 매각하도록 동반 매도를 요구할 권리(드래그얼롱)를 갖고 있다. 그러나 이 권리 행사가 성공적으로 이뤄지긴 현실적으로 어려울 전망이다. 대주주가 강제 매각에 협조하지 않더라도 '민법상 방해 행위'로 볼 수 없다는 대법원 판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20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11번가 지분을 보유한 '나인홀딩스 컨소시엄'은 드래그얼롱을 포함해 11번가에 투입한 자금을 회수할 방법을 고심하고 있다. 국민연금과 새마을금고,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에이치앤큐(H&Q) 코리아 등으로 구성된 나인홀딩스 컨소시엄은 지난 2018년 11번가에 5000억원을 투자한 바 있다.
당시 SK스퀘어는 5000억원 규모의 상환전환우선주(RCPS)를 발행하면서 FI들과 드래그 앤 콜(Drag&call) 조항을 담은 계약을 체결했다. SK스퀘어가 FI들로부터 해당 지분을 다시 사들일 수 있는 콜옵션 조항, 그리고 5년 내 기업공개(IPO)에 실패할 경우 FI들이 SK스퀘어가 보유한 지분을 묶어 11번가를 강제로 매각할 수 있도록 하는 드래그얼롱 조항이 담겼다.
IB 업계의 한 관계자는 "SK스퀘어 입장에선 5000억원과 이자를 갚아야만 강제 매각을 피할 수 있는데, SK그룹 인사가 조만간 진행될 예정이라 총대를 메고 콜옵션을 행사할 만한 사람이 없다"며 "결국 FI 주도 하의 강제 매각이 현실로 다가온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만 FI들의 강제 매각이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실제로 과거 두산인프라코어차이나(DICC)의 드래그얼롱을 둘러싸고 두산그룹과 FI 간 법정 공방이 벌어지기도 했다.
지난 2011년 IMM PE·미래에셋자산운용·하나금융투자프라이빗에쿼티(PE) 등 FI들은 DICC의 지분 20%를 3800억원에 인수하면서 '3년 내 IPO'를 조건으로 내걸었다. 결국 3년 뒤 DICC는 IPO에 실패했고, FI들은 드래그얼롱 조항을 발동했다.
FI들은 2015년 PEF 운용사 두 곳과 매각 협상을 벌이기도 했지만 두산 측의 비협조로 실사 자료가 부족해 거래가 무산됐다. 이에 FI들은 두산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대법원은 2021년 두산 측의 손을 들어줬다. 두산의 자료 제공 거부를 '민법 상 방해 행위'로 보긴 어렵다는 것이다.
대형 로펌의 한 변호사는 "단순히 협력을 거부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신의성실에 반해 협력을 거부함으로써 계약에서 정한 사항을 이행할 수 없는 상태가 돼야 민법 상 방해 행위로 인정할 수 있다는 뜻"이라고 해당 판결을 해석했다.
SK스퀘어가 콜옵션을 행사할 수 있는 기한은 12월 초까지인 것으로 전해진다. 만약 SK스퀘어가 콜옵션 행사를 포기한다면, FI가 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방안은 드래그얼롱 뿐이다. 그러나 FI가 강제 매각을 진행할 때 SK스퀘어가 비협조적으로 나온다면, 매각 절차 자체가 하염 없이 지연될 수밖에 없다.
IB 업계 관계자는 "소수주주가 지분을 팔기 위해선 회사의 각종 정보를 검토하는 정밀 실사가 필요한데, 이런 것은 지배주주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