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조원짜리 ‘공룡’ HMM(011200)을 놓고 세 원매자가 한판 승부를 벌이고 있는 가운데, 업계에서는 끊임없이 유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최종 후보에 오른 세 곳 모두 현금 동원 능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온 데다, 최근에는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이 “적격 인수자가 없으면 매각을 강행하지 않겠다”고 공언했기 때문이다.

현재 숏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세 곳은 업계의 우려대로 ‘부적격자’일 뿐일까. 본입찰까지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만큼, 이들이 HMM 인수 후보로서 가진 강점과 적격성 등을 다뤄봤다.

LX판토스 홈페이지 캡처

① 국내 1위 LX판토스, 국내 1위 HMM 간 연계 사업 기대

LX그룹은 LX인터내셔널(001120)을 앞세워 HMM 인수에 도전하고 있다. 시장에선 자회사 LX판토스의 포워딩(Forwarding·국제 물류 주선) 사업과 HMM의 해운 사업을 연계하면 종합 물류 사업을 확장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LX판토스는 연간 해상 물동량 기준 국내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미국 리서치기관 암스트롱 앤 어소시에이트(Armstrong & Associates)가 집계한 결과, LX판토스는 지난해 152만7000TEU(1TEU=20피트 길이 컨테이너)의 해상 물동량을 처리했다. 전 세계 포워더 가운데 6위다.

HMM은 국내 1위 컨테이너선사다. 해운조사업체 알파라이너(alphaliner)에 따르면 HMM의 선복량(적재 능력)은 78만3577TEU로 전 세계 8위다. HMM이 직접 보유한 사선의 선복량이 55만1256TEU(37척)이고, 빌려 쓰는 선박(용선)의 선복량이 23만2321TEU(33척)이다. 사선 비중이 70.4%로 전 세계 10대 선사 가운데 가장 높다.

LX판토스와 HMM이 한 식구가 되면 서로 안정적으로 물동량을 확보할 수 있다. LX판토스가 목표로 하는 ‘육·해·공 복합물류 서비스 고도화’도 탄력을 받는다. HMM이 유조선과 드라이벌크선(건화물선)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상황에서 메탄올, 유연탄이나 LX하우시스(108670)의 건축자재 물량과도 시너지를 낼 수 있다.

업계 고위 관계자는 “LX그룹이 HMM을 품으면 기존의 ‘포트 투 포트(Port to Port·항만에서 항만까지)’ 서비스에서 ‘도어 투 도어(Door to Door·문에서 문까지)’ 서비스로 확장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덴마크 머스크(Maersk)나 프랑스 CMA CGM 등 세계적인 선사들도 종합 물류 사업을 강화하는 추세”라며 “화주(수출입 기업) 입장에서도 서비스 질이 올라가는 효과가 있다”고 했다. 즉, LX그룹은 다른 인수 경쟁자보다 HMM의 경쟁력을 한층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점이 강점이다.

그래픽=정서희

② LX인터내셔널 유상증자 등으로 자금 조달 전망

문제는 자금 조달 능력이다. IB업계에서 추정하는 HMM 매각가는 5조~7조원 수준이다. 매각 대상은 KDB산업은행과 한국해양진흥공사가 보유한 주식 3억9900만주(영구채 주식 전환분 포함)로 지난 2일 종가(주당 1만4850원) 기준 시장 가치만 6조원에 육박한다. 인수 금융을 고려해도 3조원 이상의 자금을 마련해야 할 전망이다. 사모펀드와 손잡은 하림, 증권사가 ‘사실상’ 계열사로 있는 동원그룹에 비해 자금 조달 능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하지만 그룹 자체의 자금 조달 능력은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 올해 6월 말 기준 LX그룹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2조5000억원 규모로 인수 후보 중에 가장 많다. 문제는 공정거래법 시행령에 따라 지주회사 내 여러 자회사가 한 손자회사에 공동 출자할 수 없다는 점이다. LX인터내셔널의 별도기준 현금 및 현금성 자산 보면 4100여억원에 그친다. 같은 기간 LX인터내셔널의 순차입금 비율이 36.5%로 낮은 편이긴 하지만, 고금리 상황을 고려할 때 한계가 있다.

시장에선 LX인터내셔널이 조(兆) 단위 유상증자를 통해 자금을 마련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LX인터내셔널은 지난 3월 정기 주주총회를 통해 발행할 수 있는 주식 수는 기존 8000만주에 1억6000만주로 늘려 놓은 상태다. 다만 LX홀딩스(383800)가 보유한 LX인터내셔널 지분이 24.69%로 많지 않다는 점이 걸림돌이다.

LX판토스를 상장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LX인터내셔널은 LX판토스 지분 51%를 보유 중이다. 올해 6월 말 기준 지분 장부가는 6783억원으로 LX판토스의 기업가치를 1조4000억원 이상으로 보고 있다는 의미다. 역시나 모·자회사 동시 상장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고, 상장 작업 등에 시간이 상당히 필요하다는 과제가 있다.

LX인터내셔널이 지주회사 행위 제한 요건에서 벗어나 있는 해외 자회사 자산을 활용하는 것도 하나의 카드다. 대표적으로 인도네시아와 호주, 중국 등의 유연탄 사업회사들이 꼽힌다. 유연탄 사업회사들의 총자본 규모는 올해 6월 말 기준 8800여억원이다. LX인터내셔널은 HMM 인수전 전부터 탄소 배출 규제가 갈수록 강화하는 상황을 고려해 유연탄 사업을 줄여나갈 계획이었다.

구본준 LX홀딩스 회장. /LX홀딩스 제공

③ 하림·동원 회장님들 나섰는데… ‘약한 인수 의지’ 꼬리표

LX그룹은 HMM 인수와 관련해 입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하림·JKL파트너스 컨소시엄이나 동원그룹 등 경쟁자보다 ‘인수 의지’가 약하다는 꼬리표가 달렸다. 실사만 하고 빠질 것이라는 회의적인 시선이 팽배하다. 무엇보다 김홍국 하림 회장과 김재철 동원그룹 명예회장은 직접 나서 HMM 인수 의지를 밝혔지만, 구본준 LX그룹 회장은 조용하다. 구 회장이 본입찰 전까지 공개 행사에 나설 계획은 전혀 없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LX그룹이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실사를 진행해 온 만큼 인수 의지가 분명하다는 반론도 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단순히 기업을 살펴보겠다고 TF를 만들 리가 있느냐”며 “결국 인수 의지는 말이 아니라 돈으로 보여주는 것이어서 본입찰 때 판가름이 날 것”이라고 했다. IB업계 한 관계자도 “조용히 있다가 다크호스로 떠올라 한순간에 매물을 움켜쥐는 사례는 M&A 역사에서 차고 넘친다”고 말했다.

HMM 1·2대 주주인 KDB산업은행과 한국해양진흥공사는 오는 23일 HMM 매각 본입찰을 진행한다. 입찰가액과 함께 인수 후보 기업의 재무·경영 능력, HMM 육성 계획 등을 종합 평가해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