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 여러 곳이 연결 내부회계관리제도 도입을 미뤄달라고 금융당국에 신청했다. 앞서 금융위원회는 대우조선해양의 회계 조작으로 기업 회계 제도를 강화했다가, 기업의 부담이 과도하다며 제도를 대폭 후퇴시켰다. 이 과정에서 올해 도입 예정이었던 연결 내부회계관리제도의 유예를 원하는 기업은 당국에 신청하라고 했는데, 일부 기업이 서둘러 지원한 것이다. 금융위는 유예 신청 사유가 합리적인 기업에 한해서만 제도의 적용을 미룰 방침이다.
21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이달 1~8일 진행된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 대상 연결 내부회계관리제도 도입 유예 접수'에 복수 기업이 신청했다. 연결 내부회계관리제도란 기업이 지주사와 종속회사의 내부에 설치하는 회계통제시스템이다. 기업이 자체적으로 분식회계를 감시하는 체계인 것이다. 올해 반기보고서 기준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는 218개사다.
이번 접수는 신(新)외부감사법 시행에 대한 기업의 반발로 시작됐다. 2017년 대우조선해양이 허위로 사업보고서를 공시한 회계 조작 사건 이후, 금융위는 제2의 분식회계를 막기 위해 신외감법을 발표했다. ▲연결 내부회계관리제도 ▲주기적 지정제(기업이 외부감사인을 자율적으로 6년 선임할 경우 그다음 3년은 당국이 지정한 회계법인을 외감인으로 선임) ▲표준 감사 시간제(기업 규모 또는 업종별 표준 감사 시간 설정) 도입이 그 골자였다.
그다음 해 금융위는 이를 보다 구체화한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외감법) 시행령 개정안을 발표했다. 이 안엔 연결 내부회계관리제도는 자산 2조원 이상인 회사를 시작으로 2022년부터 단계적으로 도입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지난해부터 금융위는 신외감법 시행에 따른 효과를 측정했고, 그 결과 기업의 회계 부담이 과도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상장회사의 평균 감사 보수가 2017년 1억2132만원에서 지난해 2억7561만원으로 올랐다는 게 판단의 근거였다.
결국 올해 6월 금융위는 신외감법으로 도입된 3개 규제를 풀어주는 방향의 '회계 제도 보완 방안'을 발표했다.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 대상 연결 내부회계관리제도 도입 유예 접수'도 이에 따른 것이다.
6월 발표 당시 금융위는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 중 연결 내부회계관리제도의 유예를 신청하는 회사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2018년부터 예고된 내용인 데다 코로나19로 2022년에서 2023년으로 도입 시기가 1년 연기돼, 기업이 시스템을 준비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신청을 받아보니 금융위의 예상과 달랐다. 규제 완화의 틈이 보이자 일부 기업이 이를 파고들었다. 기업들은 연결 내부회계의 구축 대상이 되는 종속 기업의 범위가 불명확하고 구축하는 데 드는 비용이 든다는 이유로 제도 도입을 꺼렸다. 금융위가 추산한 연결 내부회계 외부감사 수감을 위한 시스템 고도화 비용은 회사당 6억2000만원 수준이다.
다만 금융당국은 접수된 회사 중 심사 기준을 충족한 기업에 대해서만 2년간의 유예 기간을 허용할 방침이다. ▲올해 중 중요한 자회사를 취득해 연결 내부회계 구축에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한 경우 ▲자산 2조원을 약간 상회해 다음 해에 자산 2조원 미만으로 분류될 가능성이 높은 경우 ▲최근 급격한 성장으로 연결 준비가 부족해 유예 기간의 필요성이 인정되는 경우 등만 유예 기간을 부여받을 것으로 보인다. 심사를 통해 제도 유예를 허가받은 기업은 올해 사업보고서에 유예 사실과 사유를 공시해야 한다.
자산 2조원 미만의 상장사의 연결 내부회계관리제도 도입 시기는 기존 2024년에서 2029년으로 미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