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준 이화그룹 회장이 횡령·배임 혐의로 구속된 가운데 이화전기(024810), 이트론(096040), 이아이디(093230) 등 이화그룹 내 상장 계열사가 거래정지되기 직전 메리츠증권이 기막힌 타이밍에 매도해 이익을 남긴 것으로 나타났다.

메리츠증권은 신용등급이 낮은 코스닥 상장사에서 발행하는 메자닌(주식과 채권 중간 성격을 띠는 상품)에 투자해 쏠쏠한 재미를 보고 있는데, 이번에도 기막힌 시점에 매도해 거액의 투자금을 회수하게 됐다. 회사 측은 매도 시점을 두고 우연의 일치라고 설명했다.

메리츠증권

18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메리츠증권은 이화전기 주식 5848만2142주(32.22%)를 보유하고 있었는데, 이달 4일부터 보유 지분을 전량 장내 매도했다고 10일 공시했다.

10일은 이화전기 주식거래가 정지된 날이다. 한국거래소가 전·현직 임원의 횡령·배임 혐의로 조회공시를 요구하면서 주식거래가 정지됐는데, 바로 직전에 신주인수권을 행사하고 보유 지분을 전부 정리해 투자금을 회수한 셈이다. 상장폐지실질심사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어 만약 이번에 주식을 매도하지 못했다면 상당 기간 자금이 묶일 상황이었다.

메리츠증권은 지난 2021년 10월 이화전기가 발행한 400억원 규모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에 투자했다. 발행 당시 BW 행사가액은 2029원이었는데, 이화전기 주가가 흘러내리면서 마지막 매도 직전에는 604원까지 조정됐다. 행사가액이 낮아지자 주식 수는 급증했고, 최대주주인 이트론(19.9%)보다 메리츠증권 지분이 많아지게 됐다.

메리츠증권은 이화전기 BW에 400억원을 투자해 1년 8개월 만에 90억원 넘게 수익을 남긴 것으로 추산된다. 400억원 중 240억원은 회사 측이 콜옵션을 행사해 연 4.5%의 이자율을 책정해 약 15억원의 이자를 받았고, 나머지(160억원)는 신주인수권을 행사 후 장내 매도해 237억원을 현금화했다. 여기서 87억원을 남겼다.

기막힌 매도 시점을 두고 메리츠증권 측은 “이달 4일부터 4영업일 간 매도한 것으로, 김영준 회장 구속영장 시기에 맞춰 매도한 건 아니다”라며 “이차전지 테마로 엮이면서 주가가 오르기 시작했고,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일정 수익 확보 후 정리했다”고 설명했다.

메리츠증권은 다른 계열사인 이아이디(32.59%), 이트론(30.77%) 지분도 이화전기와 비슷한 구조로 보유하고 있다. 두 상장사의 주식거래도 정지됐지만, 계열사인 케이아이티 소유의 부동산을 담보로 잡고 있어 풋옵션을 행사하거나 만기까지 보유하면 돼 손실 가능성은 낮다.

한편 메리츠증권은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의 메자닌에 투자하면서도 담보를 잘 잡아 매번 잘 빠져나가는 것이 특징이다. 앞서 메리츠증권은 상장폐지 위기에 몰린 KH그룹의 전환사채에 3200억원을 투자하면서 1조원 상당의 부동산을 담보로 설정했다. 코스닥 상장사 노블엠앤비도 비슷한 구조로 투자해 원금과 이익을 회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