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옷 속에 숨겨둔 부동산’ ‘황제 경영, 이제 그만!’

국내 행동주의 펀드인 트러스톤자산운용(이하 트러스톤)이 BYC, 태광산업 대상으로 주주제안을 내며 소수 주주의 의결권을 모으기 위해 내건 홍보 문구다.

국내 자산운용사 중 주주행동주의 기반으로 공모펀드를 출시한 곳은 트러스톤이 대표적이다. 개인 투자자들도 공모펀드를 통해 주주행동주의에 동참할 수 있는 셈이다. 트러스톤은 지난 2013년 만도가 계열사 한라건설 증자에 참여하는 걸 반대해 적극적인 주주활동이 기업가치 상승으로 이어진다는 걸 증명한 곳이기도 하다.

10일 서울 성수동에 있는 트러스톤 본사에서 주식운용부문 최고투자책임자(CIO)인 이원선 전무를 만나 국내 행동주의 펀드의 투자 방향성에 대해 물었다. 이원선 전무는 국내 퀀트 애널리스트 1세대로 과거 토러스증권 재직 당시 국내 첫 여성 리서치센터장을 맡아 이름을 알리기도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이원선 트러스톤자산운용 주식운용부문 최고투자책임자(CIO)가 9일 조선비즈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주주행동주의를 투자 아이디어로 잡은 이유가 궁금하다.

“‘코리아디스카운트’에 주목했다. 한국 시장은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 굉장히 저평가받고 있다. 가장 큰 원인은 변하지 않는 지배구조에 있다고 본다. 저평가 요인을 해소하면, 기업가치가 재평가받는다는 게 투자 전략이다. 실제 저평가 요인을 해소했더니, 더 큰 수익률로 돌아왔다.

주식시장에서 기업가치를 분석하는 지표 중 자기자본이익률(ROE)을 가장 중요하게 보고 있다. 만약 투자를 통해 ROE를 높이는 성장 기업이라면 주주환원율이 낮아도 된다. 그러나 ROE를 높이지 못하는 기업이라면, 주주환원율을 높여야 한다. 투자도, 환원도 하지 않고 유휴현금을 계속 쌓아둔다면 ROE는 지속적으로 낮아지게 된다.

기업의 자본은 자기자본, 타인자본으로 이뤄진다. 비상장사면 대주주 자본과 차입으로 경영하면 된다. 그러나 상장사는 다르다. 상장사의 자기자본은 대주주뿐만 아니라 수많은 소수 주주의 투자금으로 구성됐다. 상장사는 소수 주주에 대한 책임이 있는데, 대주주의 이익만 챙기려는 건 분명히 잘못된 관행이다.

트러스톤이 투자 기업에 요구하는 건 ‘자본효율성을 높이자’는 거다. 기업의 마진율이 높아지려면 상장사 내부거래, 사익 편취 등이 줄어야 한다. 주주환원을 높이면 ROE도 높아지게 된다.”

투자 대상을 고르는 기준은 무엇인가?

“일반적인 시각으로 보면 매력적인 투자 대상이 아닐 수 있다. 트러스톤은 ESG 평가를 내재화해 기업탐방을 다니면서 점수를 매긴다. 투자 대상을 리더(Leader), 모멘텀(Momentum), 레가드(Laggard)로 나눈다. 리더는 ESG 점수가 좋은 기업, 모멘텀은 개선되고 있는 기업, 레가드는 개선이 필요한 기업이다. ESG 점수가 좋은 기업보다 개선되고 있는 기업, 개선이 필요한 기업에 주목하고 있다. ESG 등급이 개선되는 기업의 주가가 상승여력이 더 높아서다.

또 밸류에이션이 저평가되어 있고, 유휴현금이 많고, 자본효율성이 낮은 기업도 투자 대상이다. 저평가된 기업들을 골라 정상화 수준까지 올리는 게 목표다. 투자한 기업이 주식시장에서 정당하게 평가받는 걸 기대한다. 예를 들어 태광산업은 3분기 말 기준 주가순자산(PBR)이 0.17배 수준인데, 동종 업종 평균인 0.6배로 높아지는 걸 목표로 두고 있다. 투자 기한은 최소 3년인데, 정해진 건 아니다.

기업이 자체적으로 개선하려는 노력이 부족하다면, 주주로서 적극적인 주주가치를 제고하겠다는 거다. 변화가 일어날 때까지 보유해야 한다고 본다.”

현재 투자하고 있는 기업은?

“태광산업, BYC 등에 투자하고 있다. 두 기업이 담긴 공모펀드로는 ESG 레벨업 펀드가 있다. 수익률은 설정일인 2021년 1월 29일 이후 1월 말까지 8.6%를 기록하고 있다. 같은 기간 코스피 지수와 비교하면 28.7%포인트 웃도는 성과다. 지난해 말 기준 LF, 오스템임플란트 등도 공모펀드에 담았다.

현재 주주제안을 진행 중인 BYC, 태광산업도 자체 ESG 기준을 적용하면 ‘레가드’에 해당한다. 지배구조상 개선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곳들이다. 두 회사와는 2년 정도 대화를 진행하고 있다. 지분을 매입하고, 회사에 ‘이런 방식으로 변화하면, 기업가치가 더 나아질 거다’ 이런 제언을 하고 있다. 가장 최선의 방법은 회사와 대화로 풀고, 협상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도 안 되면 주주제안을 하는 거고, 다음 단계로 진행되는 방식이다.

대주주와 소수 주주 간 상반된 요구를 하기에 당연히 대주주 입장에서는 우호적이지 않다. 오너일가를 만난 적은 없고, 보통 실무진과 만나 회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더 나은 구조로 변화하는 과정을 설명하다 보니 지지하는 분도 있었다.”

소수 주주 목소리를 대변한다는 게 어떤 의미일까.

“트러스톤은 투자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 소수 주주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 대주주가 사익 편취를 하는 건 대주주만을 위해서 하는 일이다. 상대적으로 소수 주주는 피해를 입게 된다. 배당을 주는 것 역시 주식 수에 비례해서 주는 거니까 소수 주주도 수혜를 누리게 된다. 개인 투자자가 기업에 목소리를 내는 건 한계가 있다고 본다. 트러스톤은 기관 투자자로서 스튜어드십 코드를 수행하고 있다.”

트러스톤자산운용이 태광산업 대상으로 진행 중인 캠페인 내용.

실제 어떤 변화를 끌어냈는지 궁금하다.

“시작은 2013년 만도의 계열사 편법 지원을 반대한 사례다. 당시 만도가 한라건설에 유상증자 참여결의를 했던 시점부터 주가가 급락했었다. 건설경기 침체기였는데, 한라건설 리스크가 만도의 기업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됐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한라건설 지원을 중지하라는 내용으로 증자반대 주금납입중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다시 주가가 반등했다. 유상증자를 막진 못했지만, 계열사 편법 지원 재발 방지를 약속받았고 새로운 사외이사도 선임했다. 주주활동이 수익률 제고로 이어진다는 걸 증명한 셈이다.

현재 주주가치를 제고하기 위해 주주제안을 진행 중인 태광산업, BYC도 비슷하다. 지난해 12월 태광산업이 흥국생명 유상증자에 4000억원 가량 지원하려고 했는데, 이를 저지했다. 태광산업과 흥국생명은 지분 관계가 무관한 회사다. 이호진 회장이 흥국생명 대주주이고, 태광산업 대주주일 뿐이다. 만약 유상증자에 참여했다면, 대주주만 성과를 누리고 위기만 소액주주들과 나누는 꼴이었다.

또 BYC에는 회계장부 열람을 요청해 사익편취, 내부거래로 추정되는 부분을 알아냈다. 이사회 의사록에 필요한 내용이 없는 것도 알아냈고, 경영진도 인정했다. 원칙적으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에서 빠진 게 없는지 트러스톤에서 알아낸 거다. 당장 기업가치가 개선되고 수익률로 이어지지 않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수익률 제고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태광산업, BYC 두 기업에 대해서만 소수 주주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는데.

“펀드에 여러 기업을 담고 있는데, 모든 기업에 주주제안을 하는 건 아니다. 기업가치를 개선하기 위해 단계적으로 밟는 과정이다. 현재 태광산업, BYC 주주들로부터 의결권을 위임받기 위해 소수 주주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두 회사에 공개 주주서한, 주주제안을 보냈고 관련 자료도 모두 홈페이지, 행동주의 플랫폼인 비사이드코리아에 올린 상태다. 두 회사 코너에 가면 캠페인 내용을 확인하고 주가가 저평가된 요인과 해소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의결권 위임기간에 주주 인증을 통해 트러스톤에 의결권을 위임할 수 있다. 오는 3월 열리는 주주총회에서 독립적이고 중립적인 감사위원회 위원이 되는 이사 선임, 내부거래위원회 위원장 취임 등 트러스톤이 제시한 주주제안에 힘을 보탤 수 있다.”

최근 행동주의 펀드가 활발해진 이유가 무엇일까.

“한국 시장은 밸류에이션 자체가 낮다. 미국의 ROE는 16%, 일본은 9%, 대만은 13%인데 한국은 7% 수준이다. 자산이 효율적으로 사용되고 있지 않다는 의미다.

특히 대만 시장은 한국보다 실질 국내총생산(GDP)도 낮고, 한국처럼 다양한 섹터가 있는 것도 아닌데 한국보다 높은 밸류에이션을 받고 있다. GDP로 따지면 한국의 절반 수준인데, 시가총액은 거의 비슷하다. 다른 점은 배당 성향이다. 대만은 기업의 초과 보유금에 대해 과세하는 제도가 있다. 기업 배당정책 공시도 의무화하고 있다.

재밌는 예시가 있다. 미국도 1980년대 중반부터 주주환원 정책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해 이익 증가 속도가 배당 증가 속도보다 빨라졌다. 이런 과정이 이어지면서 신기하게도 1990년대 이후부터 배당이 늘어도 배당수익률이 낮아졌다. 배당이 늘어나는 속도보다 주가 상승 속도가 더 빨랐기 때문이다. 즉 PER이 상승하는 밸류에이션 재평가가 나타났다. 한국 시장도 이런 과정을 거쳐 재평가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행동주의 펀드가 엮인 기업들의 주가가 급등락하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 개인 투자자들이 유의해야 할 점은?

“트러스톤은 2013년부터 주주행동주의를 진행했다. 행동주의 펀드가 개입한 사례가 많이 나오고 있는데 운용사마다 성격이 조금씩 다르다. 체리피커(Cherry Picker)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크고, 그렇게 하기 좋은 상황인 것도 맞다.

기업가치를 높이고, 소수주주 이익을 대변하는 쪽으로 움직여야 하는데 지금은 회사마다 경영권 분쟁처럼 개입돼 본질이 퇴색된 감이 있다. 과거 일부 외국계 행동주의 펀드가 잠시 이벤트를 일으켜 주가가 급등한 사이 팔아치우는 사례도 분명히 있었다. 당시 지켜보고, 저렇게 하면 안 된다는 걸 인식했고, 그런 투자자가 되지 않으려고 정말 노력하고 있다. 경영권 획득이나 외국계 자본처럼 이벤트성으로 단기 차익을 노리고 접근하는 게 절대 아니다.

개인투자자들도 행동주의 펀드와 엮인 기업에 잠깐 수익을 낼 순 있지만, 꾸준히 좋은 수익을 얻기는 어렵다고 본다. 장기투자하면서 회사의 할인 요소가 해소돼 밸류에이션 차이가 메워질 때까지 보유하는 게 가장 좋은 투자수익으로 돌아온다고 믿고 있다. 자본 효율성을 높이고, 기업가치가 제자리를 찾아가도록 돕고자 하는 게 트러스톤의 방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