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는 오르는데 주가가 하락하면서 돈을 빌려 상장사에 투자한 사모펀드들이 진퇴양난에 빠졌다. 상장사에 투자해 수익을 내기는커녕 해당 주식의 주가가 하락하면서 돈을 빌릴 때 담보로 잡힌 주식을 지키지 못하게 되는 처지까지 몰린 것이다.

경영 상황이 낱낱이 공시되는 상장사의 특성상 이런 사실이 많은 투자자에게 알려지면서 해당 사모펀드에 대한 불안이 커지기도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모펀드 사이에서는 상장사에는 투자하지 않겠다는 선언이 나오는가 하면 상장사에 투자를 결정한 이후 공개매수를 진행해 자진 상장폐지에 나서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 상장사 인수할 때 주식담보대출… 주가 빠져 ‘진퇴양난’

가구 업체 한샘(009240)의 최대주주인 사모펀드 IMM프라이빗에쿼티(PE)는 지난 2일 한샘 주식 181만8182주(7.7%)를 공개 매수한다고 발표했다. 공개매수 가격은 주당 5만5000원으로, IMM PE는 이번 공개매수를 위해 1000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이미 한샘 투자에서 상당한 손실을 보고 있는 IMM PE가 상당한 자금을 들여 지분 확대에 나선 이유는 기한이익상실(EOD) 가능성이 거론되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다. 기한이익상실이란 돈을 빌려준 금융사가 채무 위험도가 커지는 경우 대출금을 만기 전에 회수하는 것으로, 주식담보대출을 받은 경우 기한이익 상실이 발생하면 채권자가 해당 주식의 처분권을 갖게 된다.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있는 한샘 본사 전경./조선일보 DB

IMM PE는 2021년, 롯데쇼핑과 함께 조창걸 한샘 명예회장(특수관계자 포함)이 가진 지분 30.2%를 1조5000억원에 인수했다. 경영권 프리미엄을 합친 주당 인수가는 22만1000원으로, IMM PE는 이 과정에서 약 8000억원 정도는 신한은행 등 대주단으로부터 주식담보대출을 받아 마련했다. 당시 주식담보비율(LTV)을 75~85%로 설정했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한샘 주가가 폭락하면서 대출이 담보 지분 가치를 초과하는 상태가 됐다. 2021년 7월 매각 소식이 알려진 직후 한샘 주가는 12만원을 넘었지만, 매각 이후 주가가 계속 하락하면서 지난해 10월에는 3만원대까지 떨어졌다. 최근 4만~5만원 수준을 회복했지만, 주가는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IMM PE는 한샘 주가가 올라야 대출금 이자도 갚고 수익을 낼 수 있는데, 주가가 하락해 수익은 내지 못하고 대출 이자 부담만 커지는 상황이다.

IMM PE가 화장품 로드숍 원조 브랜드 ‘미샤’를 운영하는 에이블씨엔씨(078520) 매각을 추진하는 이유도 비슷하다. IMM PE는 에이블씨엔씨가 2만원대에서 거래되던 지난 2017년, 에이블씨엔씨 지분 59%를 인수했다. 당시 인수 금액은 주당 4만3000원대로, 인수 자금의 30%를 대출로 조달했다. 그런데 에이블씨엔씨가 코로나 사태 직격탄을 맞아 막대한 적자를 내기 시작했고 주가도 추락했다. 현재 에이블씨엔씨 주가는 7000원 수준이다. IMM PE는 자금을 빌려준 대주단이 자금 회수에 나서자 에이블씨엔씨 매각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카카오뱅크(323410)에 투자한 홍콩계 사모펀드 앵커에쿼티파트너스(PE)도 부진한 투자 수익률과 이자 비용 부담 증가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2020년 총 2500억원을 투자해 카카오뱅크 주식을 주당 2만3000원에 취득한 앵커PE는 2021년 8월 상장 직후 카카오뱅크 주가가 9만원을 넘자 한국투자증권을 통해 1000억원의 주식담보대출을 받았다. 그런데 상장 직후 최고가를 기록한 이후 카카오뱅크 주가는 내림세를 탔다. 지난해 2만원 아래까지 떨어졌던 카카오뱅크 주가는 현재 2만6000원 수준이다.

1조3000억원 규모의 지분 인수 계약을 파기한 사례도 있다. 홍콩계 사모펀드 베어링프라이빗에쿼티아시아(PEA)는 지난해 6월, PI첨단소재(178920) 지분 54%를 인수하기 위해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했지만, PI첨단소재 주가가 계속 하락하자 계약 파기에 따른 비용 부담을 감수하고 인수 계획을 철회했다. 당초 베어링PEA는 PI첨단소재 인수가를 주당 8만원대로 책정했는데, 지난해 말 PI첨단소재 주가는 3만원대로 하락했다. 업계에서는 금리 인상으로 자금 차입 비용이 커지는 가운데 주가가 하락하자 베어링PEA가 인수 계획 철회라는 강수를 둔 것으로 보고 있다.

◇ 상장사 인수한 사모펀드, 자진 상장폐지 사례 잇따라

서울 강서구 오스템임플란트 본사 모습./연합뉴스

물론 사모펀드의 투자 성과가 언제나 좋은 것은 아니다. 그런데 상장사에 투자한 경우 투자 성과가 부진할 때 추정 수익률이 고스란히 노출되고, 실시간으로 움직이는 주가 때문에 EOD 가능성까지 제기되면서 사모펀드 업계에서는 상장사 투자는 피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나아가 상장사를 인수하는 경우 자진 상장 폐지하는 ‘비상장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사모펀드 케이엘앤파트너스는 한국에프앤비홀딩스를 통해 프랜차이즈 맘스터치를 인수한 뒤 지난해 자진 상장 폐지했다. 소액주주의 간섭 없이 과감한 구조조정을 진행해 기업 가치를 높이기 위한 조치였다. 기업이 상장된 상태에서는 경영 상황을 투자자에게 모두 공개해야 할 뿐 아니라 이 과정에서 주가가 급등락하는 경우 투자 성과를 평가받아야 하는 것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오스템임플란트를 인수한 사모펀드 유니슨캐피탈코리아(UCK)와 MBK파트너스 역시 기업 인수 이후 상장 폐지를 위해 최근 공개매수를 진행했다. 공개매수에 성공하면서 UCK와 MBK파트너스 컨소시엄은 오스템임플란트 지분 88.7%(공개매수 지분 65.1%, 전환사채 3.5%, 공개매수자 선확보 지분 9.9%, 최규옥 회장 지분의 10.3%)를 확보했다. 발행주식 총수의 90%대 지분을 확보하면 자진 상장폐지를 추진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