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합병에 성공한 기업인수목적회사(SPAC·스팩) 15곳 중 6곳이 IT 관련 기업을 흡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스팩은 비상장사를 인수·합병할 목적으로 설립된 서류상 회사다. 증권사에서 스팩을 설립하고 투자금을 공모해 시장에 상장하는 방식이다. 상장된 스팩이 3년 이내에 우량 기업을 흡수, 합병하면 기존 주주들이 합병 법인의 주식을 얻게 된다.

스팩들이 IT 기업을 인수·합병 대상으로 선호하는 것은 메타버스와 NFT를 비롯한 신기술과 글로벌 반도체 수요 증가 등으로 IT 업계의 성장 가능성이 부각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1 대한민국 산업기술 R&D대전에서 관람객이 반도체 웨이퍼를 살펴보고 있다. /뉴스1

9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코스닥 시장에서 총 15곳의 스팩 회사가 합병을 진행했다. 이 중 대신밸런스제11호스팩, 미래에셋대우스팩제3호를 비롯한 총 6곳의 스팩이 소프트웨어나 반도체 관련 제품, 스마트기기 장비 제작 등을 주요 사업으로 두는 업체와 합병을 결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직·간접적으로 IT 업종과 연관된 곳들이다.

스팩별로 합병 기업을 보면 지난해 12월에 상장한 대신밸런스제11호스팩은 지난 4일 전자직접회로를 만드는 라온텍과 합병을 결정했다. 대신밸런스제11호스팩은 상장 당시 IT 및 반도체를 비롯해 성장 가능성을 지닌 회사를 합병 대상으로 지정한 바 있다. 2019년 8월에 상장한 미래에셋대우스팩3호도 지난 3일 클라우드(개인용 서버에 각종 정보를 저장하는 시스템) 사업에 주력하고 있는 솔트웨어와 합병을 결정했다.

지난해 10월 상장된 엔에이치스팩21호도 IT업종을 택했다. 지난달 27일 반도체·디스플레이를 제어하는 소프트웨어 제작업체 코닉오토메이션을 흡수했다. 2019년 10월에 상장한 신한제6호스팩도 지난달 8일 응용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모코엠시스를 흡수 합병했다.

게임사를 인수한 스팩도 있다. 2019년 10월에 상장된 교보9호스팩은 지난달 12일 온라인게임 개발을 주력으로 하는 업체인 밸로프와 합병했다. 밸로프는 대전 액션 온라인 게임 ‘로스트사가’를 개발한 게임회사다.

스마트기기용 터치 솔루션을 개발하는 하이팁은 2020년 12월 상장한 엔에이치스팩18호와 합병됐다. 하이팁은 스마트기기에 사용할 수 있는 스타일러스 펜 등을 생산한다.

그래픽=손민균

증권가는 올해 스팩이 합병대상 기업으로 IT 관련 업체를 선호한 이유를 성장에 대한 기대감에서 찾았다. 나승두 SK증권 연구원은 “올해 IT 분야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이 늘어나면서 관련 업체들의 상장 수요도 증가했다”라며 “유망한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업체를 흡수하길 희망하는 스팩과 상장을 원하는 IT 업체의 수요가 맞아떨어져 올해 합병 사례도 많았던 것으로 풀이된다”라고 말했다.

나 연구원은 “메타버스나 NFT(대체불가능토큰)를 비롯한 새로운 투자처에 대한 관심과 반도체에 대한 글로벌 수요가 이어지고 있는만큼 스팩의 관련 업체 합병 시도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과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리는 긴축 정책을 하면서 IT분야 기업들의 기업 가치가 하락한 것도 스팩이 합병 파트너를 정하는데 영향을 준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기업 가치가 하락한 틈을 타 저렴한 가격에 인수를 추진한다는 의미다.

이웅찬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금리 인상을 비롯한 악재로 반도체·게임 업체들의 기업 가치가 다소 하락한 상태인 만큼 인수 비용을 덜기 위한 스팩의 합병 수요가 몰린 측면도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