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투자자들이 미국 반도체 관련주와 관련 지수를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를 대량 순매수하고 있는 가운데, 인플레이션·금리 인상 등으로 인해 주가가 큰 폭으로 하락해 투자자들의 손실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국내 투자자는 최근 1개월 동안 1조2000억원 넘게 미국 반도체 주식에 베팅했다. 그러나 일부 종목은 이달 들어서만 40%가 급락하는 등 손실액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다만 증권가는 항후 미국 반도체 관련주가 상승세로 돌아설 수 있다고 전망한다. 인플레이션이나 금리 인상을 비롯한 위험 요소가 점차 해소되며 긍정적인 실적 흐름이 주가에 반영될 것이라는 의견이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

28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 27일까지 최근 1개월간 국내 투자자들은 디렉시온 데일리 세미컨덕터 불 3X ETF(티커: SOXL)를 5억5613만달러(약 7018억원) 순매수했다. 국내 투자자가 이 기간 가장 많이 순매수한 해외 주식이다. SOXL은 미국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의 3배를 추종하는 레버리지 ETF로, 주가가 하락할 경우 3배의 손실이 발생하는 고위험 상품이다. 그런데 26일(현지시각) SOXL이 전날 대비 12.6% 급락하며 국내 투자자들의 손실 위험이 커졌다. 지난 1일 종가 기준으로 봤을때는 40%나 급락했다.

국내 투자자들은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를 1배 추종하는 ETF인 iShares Semiconductor ETF(티커: SOXX)도 3142만달러 어치(약 397억원) 순매수했으나 이번달에만 10% 하락했다. 투자자들은 반도체 제조 기업인 엔비디아, AMD의 주식도 각각 3억465만달러(3848억원), 5975만달러치(755억원) 사들여 순매수 상위 종목에 올렸다. 그러나 이번달 들어 엔비디아(NVIDIA)는 30% 가까이 폭락했으며, AMD는 20% 이상 하락했다.

국내 투자자가 순매수 상위 15종목 안에 오른 미 반도체 ETF와 주식 4종을 사들인 규모는 한화로 1조2018억원에 달한다.

그래픽=이은현

미국 반도체주가 이렇게 힘없이 내려가는 이유는 올해 들어 지속되는 거시경제의 불확실성 때문으로 분석된다. 중국의 주요 도시 봉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장기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지속적인 금리 인상 가능성 시사가 맞물리며 미국의 대표적 성장산업인 반도체 분야의 주가를 누르고 있는 것이다.

김환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중국의 락다운(봉쇄) 조치와 미 연준의 금리인상, 인플레이션 우려가 복합적으로 반영돼 성장주인 반도체 관련 종목의 주가도 하락했다”라며 “구글 모회사 알파벳을 비롯한 빅테크 업체의 실적 부진도 반도체 종목 하락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노근창 현대차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미 연준의 금리 인상 가능성을 비롯한 불확실성 때문에 위험 자산을 줄이려는 투자자들이 늘고 있다”라며 “이 때문에 반도체 관련 종목을 비롯한 성장주에 대한 투자도 감소하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증권가는 미국 반도체 관련주의 향후 주가 흐름을 긍정적으로 전망한다. 미국 30개 증권사가 추정한 엔비디아의 컨센서스(목표주가 평균치)는 331.39달러(약 41만9208원)다. 26일 종가(187.88달러)보다 76.3%(143.51달러) 높은 수준이다.

증권가에서는 마이크론테크놀로지와 TSMC, 인텔의 목표주가 역시 현재 가격보다 20~70% 가량 우상향할 것으로 내다봤다. 비벡 아리아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소속 연구원은 “클라우드 컴퓨팅, AI 자동차 생산 등과 관련된 기업에서의 견고한 반도체 수요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김환 연구원은 “현재 미국 반도체 기업의 실적이 좋은 흐름을 보이고 있는 만큼 금리 인상이 둔화되면 미국 반도체 종목도 상승세를 띨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특히 반도체는 수요가 꾸준히 있어 원자재 가격 인상분을 제품에 전가하기가 쉽기 때문에 지속해서 좋은 실적을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