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가능성이 커지면서 금융투자업계는 자동차, 반도체, 정유·화학, 건설 등 주요 국내 산업들에 미칠 영향을 분석하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국내 최대 산업인 반도체의 핵심 원료인 특수가스의 대표적 공급처다. 네온 등 반도체 공정용 특수가스의 50% 정도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 수입해 쓰고 있다. 플라스틱의 원료가 되는 나프타도 전체 수입물량의 24%가 러시아산이다.

또 정유회사들은 러시아산 원유를 공급받고 있고 현대차(005380)기아(000270)는 현지법인을 통해 러시아에서 영업 중이다. DL이앤씨(375500), 삼성엔지니어링 등 건설사들도 러시아에서 대규모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미군 제82공수사단 장병들이 21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6㎞ 떨어진 폴란드 프레미시우 인근 작전 기지 내를 오가고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 정유사, 배럴당 1~2달러 추가 비용 발생

2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 금융투자업계가 가장 주목하는 분야는 정유‧화학 분야다. 금융투자업계와 정유업계의 추산을 보면 국내 정유사들의 러시아산 원유 수입 비중은 전체의 5.5% 수준이다. 전쟁으로 러시아산 원유 비중을 중동 등 다른 곳으로 바꿔야 할 상황이 되면 추가적인 거래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 배럴 당 1~2달러 이상의 비용이 더 투입돼야 할 것으로 금투업계는 추산한다.

또 미국 등 서방 선진국에서 러시아산 원유에 대한 수출 금지 제재를 할 경우 이보다 더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유진투자증권에 따르면 러시아 리스크로 발생할 수 있는 원유 수급 차질 규모는 전세계적으로 보면 550만 B/D(Barrel/Day‧하루 당 배럴)에 달한다.

황성현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원유 재고에 1억5000만 배럴 이상의 영향을 줄 수 있고 극단적인 상황까지 간다면 국제유가는 배럴당 150달러까지 상승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S-Oil(010950), SK이노베이션(096770), 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주요 정유사들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석유화학 기업들이 주요 원료로 사용하고 있는 나프타 가격도 우크라이나 사태의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나프타는 원유를 증류할 때 나오는 탄화수소 혼합물로 플라스틱의 기초원료다.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 대부분은 나프타 필요물량의 80% 정도를 외국에서 수입해 쓰고 있다. 그런데 전체 수입 물량의 24%는 러시아산이다. 전쟁으로 인해 러시아산 나프타를 수입하기 어려우면 석유화학 기업들은 충격에 빠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황규원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LG화학(051910), 롯데케미칼(011170), 한화토탈 등 대부분의 석유화학 기업이 러시아산 나프타 수입을 못 할 경우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래픽=이은현

◇반도체 공정용 특수가스 절반은 러시아·우크라이나서 수입

반도체 분야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면 부정적 영향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분석된다. 반도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네온, 아르곤, 제논 등 특수가스가 필요한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수입 의존도가 약 50%에 달한다. 이재윤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메모리반도체 생산 차질에 따른 가격상승이 이뤄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 경우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전자(005930)SK하이닉스(000660)가 우크라이나 사태의 영향권에 들어온다.

한태희 성균관대 반도체시스템공학과 교수는 "반도체 웨이퍼를 가공하는 과정에서 특수가스를 많이 사용하는 추세"라며 "다만 반도체 공급 부족이 전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는 상황이어서 미국 등 서방이 러시아산 특수가스를 규제해 반도체 공급망 문제를 더 악화하지는 않을 것 같다"라고 전망했다.

자동차 산업은 루블화 가치 하락에 따른 환차손이 문제가 될 수 있다. 지난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속해 있던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했던 크림반도 사태가 발생하자 서방 선진국들은 러시아에 대한 금융제재를 가했다. 이 영향으로 루블화 가치가 급락했고 현대‧기아차는 환 손실을 입어 영업이익이 감소한 바 있다.

2014년 12월 모스크바 외환시장에서 미국 달러화에 대한 루블화 환율은 64달러를 넘어 1998년 이후 처음으로 60달러선을 돌파했다. 2014년 현대차의 영업이익은 7조5500억원으로 4년만에 최저수준까지 하락했다. 루블화 가치가 폭락하면서 원화로 환산한 이익률이 떨어진 게 영향을 줬다.

임은영 삼성증권 연구원은 "현대‧기아차의 경우 현재 연간 19만대 가량이 러시아에서 판매되고 있다"며 "(전쟁으로) 루블화 가치가 급락하면 환차손이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임 연구원은 "그러나 2014년 크림반도 사태 당시보다는 전체 판매량에서 러시아가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들어 환차손의 영향이 당시보다는 적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덧붙였다.

건설 부문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의 영향을 비껴가긴 힘들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에서 수주한 현장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부각될 가능성이 있다. DL이앤씨는 지난해 12월 러시아에서 약 1조6000억원(11억7000만 유로) 규모의 초대형 가스화학 플랜트 프로젝트(발틱 콤플렉스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삼성엔지니어링도 지난 2월 9일 에탄을 분해해 에틸렌을 얻는 설비인 에탄크래커의 설계‧조달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프로젝트 규모는 10억 유로(약 1조3000억원)에 달한다. 전쟁이 발생하면 수주 현장의 작업이 지연될 수 있고 향후 러시아에서의 추가 수주도 기대하기 어려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