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이 공시 의무를 위반했는데 이 사실을 위반한 기업과 한국거래소는 중국 정부가 알려주기 전까지 알지 못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SK이노베이션(096770) 얘기다.

공시 위반 사실이 드러나자 거래소는 SK이노베이션에 불성실공시법인 지정 여부를 심사했다. 다만 거래소는 SK이노베이션에 대해 불성실공시법인 지정을 유예했다.

관리자인 거래소와 국내 3대 배터리 회사이자 글로벌 기업인 SK이노베이션은 중국이 알려주기 전까지 공시 위반 여부를 전혀 알지 못했음에도 단순 실수였을 뿐이라는 입장이다.

SK이노베이션

8일 금융투자업계와 거래소에 따르면 거래소 유가증권시장본부는 지난달 26일 SK이노베이션의 불성실공시법인 지정을 유예했다. 불성실공시법인은 투자 판단에 필요한 정보를 뒤늦게 공시하거나 이미 공시한 내용을 번복해 투자자에게 혼란을 준 기업 등을 말한다.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되면 당일 매매가 정지되고, 향후 추가로 비슷한 경우가 누적되면 상장폐지 대상이 될 수 있다. 보통은 코스닥 시장의 시가총액이 작은 기업들이 불성실공시법인으로 많이 지정된다.

거래소가 SK이노베이션을 불성실공시법인 대상으로 심사한 이유는 이 회사가 2019년 이후 설립한 자회사의 편입 공시 4건과 종속회사의 유상증자 결정 공시 1건을 지연 공시한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SK이노베이션은 중국 장쑤성 옌청시에 배터리 공장 신설을 위해 손자회사 SK온 옌청법인을 설립(자본금 10억6000만달러)했는데, 이 과정에서 출자 사실을 공시하지 않았다. 또 공시하지 않고도 공시 의무가 있는지를 알지 못했다. 거래소도 공시 위반을 인지하지 못했다.

거래소와 SK이노베이션이 공시 의무를 위반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중국 옌청시가 SK그룹의 투자를 받았다는 사실을 현지 언론에게 알렸고, 이러한 사실이 국내에 전해지면서다.

중국을 통해 공시 위반을 알게 된 거래소는 SK이노베이션이 비슷한 공시 누락 사실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과거 2년간 SK이노베이션이 공시한 내용을 모두 조사해 추가로 4건의 공시 위반을 적발했다. 다만 이를 심사한 후 불성실공시 법인 지정은 유예하며 면죄부를 줬다.

유예 조치 사유에 대해 거래소 관계자는 “공시 누락에 대한 책임은 회사(SK이노베이션)에 있다”며 “과거에 공시를 성실하게 했던 우수공시법인으로 지정된 전력이 있어 이를 참작해 불성실공시법인 지정을 유예해줬다”라고 말했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담당자의 개인적 실수로 공시 의무를 몰랐던 일”이라고 밝혔다.

회사 측은 단순 실수임을 강조하고 있고, 관리주체인 거래소는 모든 기업 공시를 다 확인할 수는 없다며 공시 의무 위반 책임이 회사에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양측 모두 투자자들에게 적절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했다는 책임은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한 업계 관계자는 “거래소가 모든 기업의 공시사항을 알 수는 없지만 이렇게 공시를 위반한 사항이 발견됐고 과거 공시누락 사안이 추가로 발견됐는데도 불성실공시법인 지정을 유예해준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기업들이 투자자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도록 거래소가 공시 위반 사항에 대해 엄격한 기준으로 제재를 가하려고 노력해야 할 것 같다”며 “SK그룹도 글로벌 기업인 만큼 이런 식의 실수를 한 것은 큰 허점을 보인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2018년부터 현재까지 최근 4년간 유가증권 상장법인 중 불성실공시법인에 선정된 곳은 55곳이다. 이 중 대형사는 네이버(NAVER(035420)·2018년 8월 14일 지정)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