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코스닥 시장에 입성한 새내기주 리파인(377450)이 상장 첫날 급락하면서 청약에 나섰던 개인 투자자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손실이 커지자 일부 투자자들 화살은 주관사나 금융감독원을 향하기도 했다. 하지만 금융투자업계에선 리파인의 밸류에이션(기업가치) 평가가 다른 공모주에 비해 적절했고, 공모가가 아니더라도 주가 하락을 예상할 만한 단서가 충분했다는 반응이다.

그래픽=손민균

1일 리파인은 350원(2.45%) 오른 1만4650원에 거래를 마쳤다. 코스닥 시장에 입성한 첫 날인 지난달 29일 리파인은 시초가보다 4600원(24.34%) 하락한 1만43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시초가를 공모가(2만1000원)보다 10% 낮은 1만8900원에 형성한 뒤, 장중에도 주가는 꾸준히 낙폭을 키웠다. 공모가를 기준으로 한 투자자들 수익률은 현재 -30.2%인 셈이다.

리파인은 부동산·금융 시장에 정보기술(IT)을 접목해 비대면 서비스를 제공하는 프롭테크(prop-tech·부동산과 기술의 합성어) 기업이다. 금융기관에서 부동산 거래, 담보 대출 등을 진행하기 전에 등기, 미등기 권리를 조사하고, 하자 여부를 밝혀내는 사업을 한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 한국주택금융공사(HF) 등 보증보험기관을 비롯해 국내 주요 시중은행, 손해보험사, 네이버파이낸셜 등을 고객사로 두고 있다.

리파인 주가가 급락하자 청약에 나섰던 투자자들은 당황스럽다는 반응을 쏟아냈다. 리파인 온라인 종목 토론방에서 한 주주는 “시작부터 공모가를 하회하고, 마냥 떨어지기만 해서 매도 기회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다 던지는데 이러다가 내가 대주주가 될 것 같다’ ‘공모주 중 최악의 경험이다. 장투(장기 투자)하면 괜찮은 기업은 맞는 거냐’ ‘이 정도면 거의 공모 사기 수준’ 등 반응이 쏟아졌다.

이들 중 상당수는 리파인의 실적 추이 등을 토대로 상장 후 주가 흐름에 대해 기대한 것으로 풀이된다. 리파인은 부동산 권리조사 시장을 사실상 선점하고 있다. 전월세 시장과 권리보험 시장이 확대되면서 2018~2020년에는 연평균 33.4% 매출 성장을 기록했다. 지난해 당기순이익은 161억원으로 1년 전보다 289.4% 성장했고, 올해 반기 순이익은 101억원으로 지난해 동기 순이익(84억원) 대비 19.8% 성장했다.

일부 투자자들 불만은 주관사인 KB증권, 금감원으로까지 번졌다. 주관사가 공모가를 의도적으로 부풀린 게 아니면, 지금 같은 주가 흐름이 나타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미 금융당국에 리파인 공모가가 제대로 산정되지 않았다고 민원을 제기한 투자자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리파인처럼 상장 후 공모가 아래로 추락을 거듭한 롯데렌탈(089860)(2021년 8월 19일 상장)의 경우에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비슷한 취지로 청원 글이 게재되기도 했다. 공모가 산정 과정에 불법이 없었는지 조사해달라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이런 불만 제기에도 불구하고 금융투자업계에서는 KB증권이 의도적으로 공모가를 높인 것은 아니라는 게 중론이다. 리파인 공모 희망가(2만1000~2만4000원)를 기준으로 올해 예상 주당순이익(EPS) 1162원을 적용하면, 주당순이익비율(PER)은 18.1~20.6배 수준이다. 국내외 유사업체(NICE신용평가, SCI평가정보, 라이트무브, 퍼플브릭스)의 최근 4분기 실적을 적용한 평균 PER이 28.7배라는 점을 고려하면 28.1~37.1% 할인됐다는 것이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공모가가 조금 더 낮았으면 공모가 대비 주가가 지금처럼 많이 빠지진 않았을 순 있지만, 다른 공모주와 비교할 때 밸류에이션이 고평가된 건 아니다”라며 “최근에 상장한 기업들의 밸류에이션과 비교하면 오히려 싼 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상장 후 주가 흐름에는 단순히 공모가가 적정한 지 여부를 떠나 섹터나 비즈니스에 대한 인기, 상장 전 수요예측과 청약 흥행 여부 등이 종합적으로 영향을 미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상장 전 리파인은 다른 공모주에 비해 수요예측이나 청약 흥행에 실패했다는 평가를 이미 받은 상태였다. 지난달 리파인은 14~15일 기관투자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수요예측에서 64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하며 공모가를 희망밴드 최하단으로 결정했다. 수요예측에 참여한 293개 기관 중 대부분이 희망가보다 낮은 가격을 써냈다. 이후 20~21일 진행한 일반 청약 경쟁률은 5.96대 1에 그쳤다.

처음부터 리파인 상장에 대한 반응이 나빴던 건 아니지만, 정부의 부동산 대출 규제 리스크 등이 불거지면서 투자 열기가 한풀 꺾인 것으로 풀이됐다. 리파인은 9월 상장을 한 달 앞두고 금융당국 전세대출 규제 예고에 공모 일정을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리파인의 매출에서 규제 영향을 받는 전세대출 서비스 비중은 90%에 달한다. 리파인은 투자자 보호 차원에서 증권신고서를 자진 정정한다고 밝혔지만, 향후 실적에 대한 우려가 불거지는 계기가 됐다.

더욱이 리파인의 상장 후 유통 가능 물량은 전체 발행 주식 수의 46.4% 수준인 약 806만주였다. 일반적으로 전체 주식 수 대비 유통 가능 물량이 30%를 넘어가면 많다고 보는데, 이를 16%포인트(P)이상 넘어서는 물량이다.

증권시장에서는 상장 당일 유통 가능 물량이 많을수록 당일 매도 물량이 쏟아져 주가 변동성을 키울 수 있다는 인식이 있다. 리파인 주식 배정 비율은 기관투자자(69.93%), 일반투자자(25.39%), KB증권(2.38%), 우리사주조합(2.30%) 순이었는데, 기관투자자 물량의 96%는 의무보유 확약(보호예수 기간)이 없는 물량이었다는 점이 유통 가능 물량 증가로 이어졌다.

기업이 상장할 때 최대주주나 우리사주조합 지분은 보호예수 기간을 설정해야 하지만, 기관이나 일반투자자 지분은 확약 여부를 선택할 수 있다. 통상 주관사는 보호예수 기간을 길게 제시한 기관에 많은 주식을 배정하려고 하기 때문에 공모주를 많이 배정받기 위해서는 보호예수 기간을 길게 적어내는 경향이 있다. 기관투자자 미확약 물량이 많다는 건 투자에 대한 확신이 그만큼 없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 설명이다.

박종선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기본적으로 정부의 정책이 회사 매출에 큰 리스크가 될 수 있다는 게 주가 변동성을 키웠다”며 “이후 전세대출 규제가 조금 완화되긴 했지만, 앞으로 규제 상황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지, 새로운 규제가 생겨나진 않을지 등에 대한 의구심이 투자자들 불안 심리를 키웠다”고 설명했다. 이어 “기관의 미확약 물량으로 인해 상장 후 유통 가능 물량 비중이 적지 않았다는 점도 투자 부담을 가중시킨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