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라고 생각하고 응모했고, 혹시라도 당첨되면 나중에 웃돈을 얹어서 팔 계획이다.”

며칠 전 직장인 이다빈(28)씨는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 상징이 된 초록색 체육복 추첨 이벤트에 응모했다. 처음부터 주인공이 입은 체육복을 소장하고 싶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원작 속 게임 참가자 수에 맞춰 456세트만 제작된다는 소식에 곧바로 응모 버튼을 눌렀다. 한정판에 차익을 붙여 되파는 이른바 ‘리셀테크’ 기회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씨는 “이왕이면 성기훈이 입었던 456번이 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최근 이씨를 비롯한 2030세대를 중심으로 한 리셀테크 시장은 계속 커지는 추세다. 지난해 주식시장 열풍을 계기로 재테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이들은 해외주식, 가상자산, 파생상품에 이어 각종 희소성이 있는 상품에도 주목하고 있다. 명품가방이나 시계 위주였던 리셀테크 대상은 소장 가치가 있는 한정품으로 다양해지고, 심지어는 그런 한정품을 전문으로 거래하는 플랫폼도 늘고 있다.

온라인 패션 플랫폼 무신사와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은 18일부터 5일간 오징어게임 속 초록색 체육복 456세트 래플(추첨 판매) 이벤트를 실시하고 있다. /무신사 홈페이지

앞서 온라인 패션 플랫폼 무신사와 넷플릭스는 이달 말 할로윈데이를 기념해 오징어 게임 상징이 된 초록색 체육복 456세트를 추첨을 통해 판매하는 래플(Raffle) 이벤트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래플은 이런 한정품을 구매하고자 하는 소비자가 많을 때 응모를 통해 당첨자에게만 상품을 판매하는 방식이다. 한정품을 래플을 통해 판매하면 그 가치가 더 높아지기도 한다. 체육복은 주요 캐릭터 번호인 456번, 218번, 001번, 067번 4가지 버전으로 제작되고, 판매가는 4만5600원이다.

이번 체육복 래플 경쟁률은 이미 대어급 공모주 청약 경쟁률을 뛰어넘었다. 20일 오후 6시 30분 기준 래플에 참여한 인원은 14만2066명으로, 경쟁률로 환산하면 311.5대 1 수준이다. 올해 증시에 입성한 SK아이이테크놀로지(361610)(SKIET), 카카오뱅크(323410)의 일반 공모 청약 경쟁률은 각각 288.2대 1, 182.7대 1이었다. 래플 응모가 오는 22일 11시에 마감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경쟁률은 더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직장인 조재경(29)씨는 “둘째 날 응모 넣을 때만 해도 8만 명 정도여서 승산이 아예 없진 않겠다 싶었는데 희망이 사라졌다”며 “주변에 동료나 친구 중 본인이 진짜 입고 싶어서 응모하는 경우는 없었고 대부분은 패키지째로 소장하다가 되판다는 목적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달 말에 상장하는 공모주도 하나 청약하려고 보고 있는데 괜히 그 경쟁률이 초라하게 느껴진다”고 덧붙였다.

그동안 리셀테크 대부분은 명품가방과 시계가 그 대상이었다. 브랜드 정체성이나 철학을 담고 있는 명품은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오른다는 인식에서 비롯됐다. 샤넬백과 롤렉스 시계가 대표적이다. 최근 들어서는 2030세대를 주축으로 한정판 운동화, 점퍼, 브랜드 굿즈, LP 등 리셀테크가 활성화됐다. 주로 나이키 등 스포츠 브랜드가 패션 디자이너, 연예인 등 유명인과 협업해 한정품을 제작하고 있다.

21일 기준 '나이키 에어 조던 1 트래비스 스캇 프라그먼트' 가격이 200만원 안팎으로 제시돼 있다. 이 운동화는 올해 8월 18만원대에 발매된 상품이다. /네이버 캡처

이 중에서도 슈테크(슈즈+재테크), 스니커테크(스니커즈+재테크)라고 불리는 한정판 운동화 리셀테크는 수익이 10배 가까이 날 때도 있다. 올해 8월 출시된 ‘나이키 에어 조던 1 트래비스 스캇 프라그먼트’ 스니커즈는 18만원대에 발매됐지만, 한 달 뒤에는 160~180만원대 전후에서 판매됐다. 이 운동화는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올리면서 주목 받기도 했다.

한정품을 전문으로 거래하는 플랫폼도 늘고 있다. 20일 신세계인터내셔널은 한정품 전문 판매 플랫폼을 출시했다. 매주 한정품 래플 이벤트도 실시할 예정이다. 네이버의 자회사 ‘스노우’로부터 분사해 나온 한정품 리셀 플랫폼 크림은 1000억원 규모 시리즈B 투자를 유치했다. 이 밖에도 무신사, KT 등이 관련 플랫폼을 운영 중이고, 롯데백화점은 한정판 운동화 리셀 플랫폼과 업무 제휴 협약을 맺었다.

한편, 리스 헤이스팅스 넷플릭스 최고경영자(CEO)는 19일(현지 시각) 오징어게임 속 초록색 체육복을 입고 실적 발표에 나섰다. 무신사와 넷플릭스 측은 이번 체육복 최초 당첨자가 구매하지 않을 경우, 미구매 수령만큼 추가 당첨자를 선정한다는 계획이다. 이후 추첨 판매가 끝나면 11월 중 일반용을 제작해 판매도 할 예정이다. 다만, 일반 제작 판매의 구체적인 수량, 가격, 제품 구성 등은 정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