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너구리’ 덕에 즐겁습니다. 최근에 비트코인이 올랐다고 주변 지인들이 자랑했는데, 정유주가 오르면서 요즘은 아무도 부럽지 않아요.”(개인 투자자 A씨)

일명 ‘너구리’에 투자한 눈치 빠른 서학 개미(미국 주식에 투자하는 국내 개인 투자자)들이 웃음 짓고 있다. 이들은 한 달 새 70% 가까이 되는 상승률을 맛보는 중이다.

너구리란 캐나다 몬트리올 투자은행이 운용하는 ‘마이크로섹터 US 빅오일 3X레버리지’ 상장지수증권(ETN)의 별칭이다. 티커는 ‘NRGU’다. 티커 발음이 너구리를 떠올리게 한다는 이유에서 서학 개미들은 이 ETN을 너구리라고 부르고 있다.

일러스트=정다운

이 ETN은 뉴욕증시에 상장된 정유주 3배 레버리지 상품으로, 엑손모빌·쉐브론·마라톤, 옥시덴털페트롤리움, 천연가스 업체 피오니어 등 미국 대형 에너지 기업 시세를 3배로 추종하고 있다. 국내에는 없는 ‘삼곱(3X)’ 상품이라 정유주에 투자하는 서학 개미들은 높은 수익률을 기대하며 이 상품을 찾았다. 지난해 10월 12일 부로 20대 1로 병합 거래되고 있다.

서학 개미의 바람대로 너구리는 최근 높은 상승률을 가져다줬다. 13일 미 뉴욕 증시에 따르면 지난 12일(현지 시각) 기준으로 NRGU는 약 한달간 67.83% 급등했다. 지난 9월 13일 114.85달러(약 13만7100원)였던 이 ETN은 지난 12일 192.75달러(약 23만100원)까지 치솟았다. 지난 11일 장 중 207.31달러(약 24만7400원)를 넘기도 했지만, 지난 12일 차익실현 매물 출회 등으로 소폭 하락했다.

너구리의 폭발적인 상승 배경에는 유가 급등이 자리하고 있다. 국제유가와 천연가스 가격 상승세가 이어지면서 정유주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정유주를 편입한 3배 레버리지 상품인 너구리가 다른 상장지수펀드(ETF)와 ETN 상품보다 최근 두각을 나타냈다.

앞서 지난 11일 미국 뉴욕상업거래소에서 11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전 거래일보다 1.5% 상승한 배럴당 80.52달러에 장을 마감했다. WTI 가격이 종가 기준 배럴당 80달러를 넘어선 건 2014년 10월 31일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당분간 유가 랠리는 이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국제유가는 오펙플러스(OPEC+)가 추가 증산을 제한한 가운데 수요 증가 전망에 강세를 지속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올겨울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길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아울러 미국은 에너지 가격 급등을 막기 위해 전략적 비축유를 방출하고 원유 수출을 금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김대준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 12일 미국서 정유주가 소폭 하락하면서 NRGU가 조금 내렸지만 이전 상승 폭이 커 차익실현 매물 등이 나오면서 숨 고르기 한 국면”이라며 “유가는 상방 압력에 노출돼 있어서 일정 기간 정유주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증권가에서 NRGU에 무작정 투자하는 건 위험하다고 조언한다. 3배 레버리지 상품인만큼 정유주 랠리가 가라앉으면 상승률이 타 상품보다 빠르게 가라앉을 수 있는 탓이다. NRGU는 지난해 3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30달러 선까지 떨어지기도 한 이력이 있다. 엑손모빌은 오는 29일 개장 전 실적을 발표하는데, 미 정유주 실적 발표도 고려해 투자해야 한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NRGU로 큰 수익을 얻을 수 있지만 그만큼 손실 위험도 있어 신중한 투자를 해야 한다”며 “추세를 추종해 NRGU에 투자한 투자자들은 20일 평균 변동성 등을 따지면서 차익실현 시기 등에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연구원은 “정유주 랠리가 주춤해질 수 있는 세가지 요인에 주의해서 투자해야 한다”라며 “일단 원유 가격을 정하는 카르텔 생산자들이 원유 공급을 늘리게 되면 유가가 떨어지게 되므로 이를 잘 지켜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 연구원은 미국 셰일오일 생산량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현재 미국에서 생산하는 셰일오일이 인력부족 탓에 공급망에 병목현상이 생겼는데, 위드 코로나로 인해 미 고용지표가 개선되고 셰일오일 관련 인력이 늘게 되면 원유 공급이 늘 수 있다”고 말했다.

달러 강세도 변수다. 유가와 달러는 반대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김 연구원은 “어떤 불확실한 리스크(위험) 요인이 발생해 달러 강세가 큰 폭으로 이뤄진다면 유가는 하락하게 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