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델타 변이와 그에 따른 경기 침체 공포로 인해 지난 19일(현지 시각) 뉴욕증시는 물론 유럽증시도 일제히 폭락했다. 다우지수 하락 폭은 지난해 10월 이후 가장 큰 수준을 기록했다. 코스피지수도 영향을 받아 20일 장 중 3210선까지 내려가면서 국내 증시도 긴 조정장이 펼쳐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에 증시 전문가들은 “국내 증시가 당분간 횡보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델타 변이로 경기 회복 속도 자체는 둔화한 건 맞지만, 지난해처럼 급격한 경기 침체로 폭락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앞서 미국과 유럽 등에서 백신 접종 확대로 세계 경제가 완전한 회복기에 접어들었다는 기대는 최근 델타 변이 확산 탓에 사그라졌다. 미국은 백신 접종률이 정체된 상황에서 델타 변이로 인해 50개주와 워싱턴 DC 등 전 지역에서 신규 확진자가 증가하고 있다. 미국의 지난주 일일 확진자 수는 한 달 전보다 3배 증가한 3만명을 기록했다.

일러스트=정다운

◇ 델타 변이 공포에 미국·유럽·한국 증시 일제히 폭락

20일 코스피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11.34포인트(0.35%) 내린 3232.70으로 마감했다. 지수가 장중 3214.42까지 하락하자 시장 투자자를 중심으로 3200이 붕괴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나왔지만 결국 3230선까지 반등했다.

간밤 뉴욕증시 폭락으로 국내증시도 하락장이 예상됐던 상황이었다. 뉴욕증시에서 다우지수는 전장보다 725.81포인트(2.09%) 떨어졌다. 다우지수는 장중 낙폭이 900포인트를 웃돌기도 했다. S&P500 지수도 장 중 낙폭이 2% 이상이었지만 이후 낙폭을 다소 만회해 1.59% 하락 마감했다.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지수가 1.06% 하락했다. 이날 마감한 유럽 증시도 2%대 하락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증시의 닥스30 지수는 2.6%, 영국 런던증시의 FTSE100지수는 2.34%, 프랑스 파리증시의 CAC40지수는 2.54% 급락했다.

이밖에 다른 지표들도 시장 투자자를 떨게 했다. 월가 공포지수인 시카고옵션거래소 변동성지수(VIX)는 6포인트 급등해 24.8까지 올라 두 달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CNN에서 제공하는 공포와 탐욕지수(Fear & Greed Index)는 미국 시각인 지난 19일 오후 기준으로 ‘극심한 공포(Extreme Index)’ 수준인 23으로 하락했다. 현재는 17로 더 떨어져서 지난해 3월 코로나19 발발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지난해와 비교해 그리 큰 폭의 조정이 있던 것도 아닌데 투자심리가 꽁꽁 얼어붙은 셈이다.

증시가 침체하자 안전 자산인 국채에 돈이 몰렸다. 이로 인해 가격과 반대로 움직이는 국채 수익률은 급락했다. 10년만기 미 국채 수익률은 이날 1.177% 하락해 5개월 만에 최저치를 경신했다. 국제유가도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포함한 주요 산유국 협의체인 OPEC플러스(+) 감산 폐지 결정 악재를 만나 서부텍사스중질유 8월 인도분 선물은 7% 넘게 폭락했다.

조선DB

◇ 전문가 “폭락 공포감 과도, 종목별 투자전략 가져야”

전문가들은 증시 폭락에 대한 지나친 공포감은 과도하다고 지적한다. 기업 실적 호조로 인한 펀더멘털(기초체력)과 더불어 경기 회복 기대감이 코스피지수 하단 지지선이 돼줄 것이라는 분석이다. 경기 회복 자체가 무산된 것이 아니라 지연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경수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오는 3분기 글로벌과 국내 기업 최대 실적이 예상되고 금리가 하락하면서 테이퍼링(자산 매입 축소) 우려도 함께 줄어들어 컨택트 관련주가 증시 하락을 방어해줄 가능성이 크다”라며 “2900이하로 코스피지수가 떨어지기는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델타 변이가 확산하고 있지만 세계적으로 새로운 락다운(봉쇄조치) 조치를 이끌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이라며 “글로벌 이동성 지수는 여전히 보합권이며 글로벌 국내총생산(GDP) 성장률과 이익전망도 상향 조정되고 있어 이번 폭락은 심리적 불안에 그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말 세계 최초로 백신 접종에 나선 영국은 19일 봉쇄조치를 해제했다.

다만 상승 모멘텀(동력)도 크지 않아 당분간 코스피지수가 3000에서 3300 사이를 횡보하는 국면이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서상영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경기 회복 속도 자체의 둔화일 뿐 조정이 지속할 가능성은 작지만, 상승 동력이 많이 사라진 상태”라며 “기업 실적은 계속 좋지만 실적 증가율은 높지 않아 기업 실적이 증시에서 상승 동력이 되기는 어렵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7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나 8월 잭슨홀 미팅 이후 조정장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지, 어느 정도 반등이 이뤄질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현석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델타 변이 확산세가 진정되고 내년도 기업 실적 증가율이 크다는 것이 확실해진 이후에나 상승 동력이 생길 것”이라고 예상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증시 상황에서는 종목별 투자전략을 가져가라고 조언했다. 이경수 연구원은 “종목 위주로 선별해 포트폴리오에 담아야 한다”며 “금리가 내려가고 테이퍼링 우려가 잦아들면서 시장에서는 경기민감주(가치주)보다 성장주의 시간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코스피보다는 코스닥, 대형주보다는 중소형주가 강세를 보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오 센터장은”성장주와 가치주 모두에서 종목 선별이 필요하다”며 “들고 있는 주식이 많다면 솎아내기가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서 연구원은 “적극적인 시장 대응을 하기보다는 시장에서 한발 물러나 관망세를 유지하는 게 낫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