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증권·유통 업계 최고의 화두는 이베이코리아 인수 건이었다. 최근 이베이를 품은 신세계를 비롯해 MBK파트너스와 롯데그룹, 그리고 카카오(035720)까지 이베이 인수전에 뛰어들며 각축을 예고했다.

그러나 한 달 뒤, 카카오가 돌연 인수전에서 발을 뺐다. 카카오가 이베이 대신 택한 카드는 여성복 쇼핑몰 ‘지그재그’였다. 지그재그를 운영하는 크로키닷컴의 경영권을 인수해 모바일 커머스(전자 상거래) 사업을 강화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당시 크로키닷컴은 약 1조원의 기업 가치를 인정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그재그가 몸값 1조원의 ‘유니콘’으로 등극하며 대박에 가까운 성공을 거두자, IB 관계자들의 이목은 1984년생 벤처캐피털(VC) 임원에게 집중됐다. 손호준 스톤브릿지벤처스 이사(37)는 2017년 크로키닷컴의 기업 가치가 300억원일 때 50억원을 투자한 심사역이다. 이번 매각으로 4년도 안 돼 30배가 넘는 투자 수익을 올리게 됐다.

앞서 그는 부동산 거래 플랫폼 ‘직방’, 무신사에 인수될 여성복 쇼핑몰 ‘스타일쉐어' 등에 초기 투자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스타 심사역으로 꼽힌다.

손호준 스톤브릿지벤처스 이사. /스톤브릿지벤처스 제공

지난달 중순, 역삼동 스톤브릿지벤처스 사무실에서 손 이사를 만나 젊은 나이에 화려한 트랙레코드(실적)를 쌓은 비결과 투자 가치관 등을 물었다. 이른바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 투자 심사역인 손 이사의 화법은 직설적이었다. 어떤 질문을 받아도 망설임 없이 생각한 그대로를 솔직하고 가감 없이 풀어냈다.

지난해부터 이른바 ‘제2의 벤처 붐’이 계속되며, 벤처캐피털리스트라는 직업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 매우 커졌다. VC에는 어떻게 입사하게 됐는지.

“대학교 재학 중이던 2009년(서울대 농경제 사회학부를 졸업했다), 창업을 해서 프린터를 이용하기 위해 오랜 시간 대기하지 않아도 되는 서비스를 운영했다. 그 덕에 배인탁 교수님이 만든 서울대 V포럼(벤처 창업가 모임)에 들어갈 수 있었다. 배 교수님이 미 스탠퍼드대학교 대학을 졸업해 VC에서 근무하신 경험이 있었기에 그 분을 통해서 VC의 존재를 알게 됐다.

당시 해외에는 이미 유명한 VC들이 많았는데, 그런 회사들을 보면서 나도 VC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VC에 들어가기 위해 투자은행(IB) 근무 경력이 필요하다고 느꼈고, 씨티은행에 공채로 입사해 1년간 근무하다 스톤브릿지벤처스 인턴 사원 모집에 지원하게 됐다.”

씨티은행 정규직을 포기하고 인턴으로 입사한 건가.

“맞다. 연봉도 많이 깎였고, 가족들과 친구들도 전부 다 반대했다. 당시 나를 면접 보고 뽑아준 분이 지금의 박지웅 패스트트랙아시아 대표인데, 박 대표님 조차도 ‘정규직을 인턴으로 뽑기 부담스러우니 씨티은행에 계속 잘 다니는 건 어떻겠나’고 권유할 정도였다. 그래도 내 결심은 확고했다.”

스톤브릿지벤처스에서의 인턴 활동은 어땠는지.

“2012년 7월부터 두 달간 인턴십을 했고, 이후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당시 인턴 사원들의 과제는 매주 투자하고 싶은 스타트업 한 곳을 발굴해 왜 투자하고 싶은지 브리핑하는 것이었다. 그때 가장 먼저 브리핑했던 회사가 지금 ‘토스’를 운영하는 비바리퍼블리카였다.”

2012년이면 비바리퍼블리카가 토스를 출시하기 3년 전인데, 성장성을 어떻게 알 수 있었는지.

“그때 이승건 대표는 토스가 아닌 ‘울라불라’라는 모바일 SNS를 운영하고 있었다. 초음파 통신으로 SNS 대화방이 자동 생성되는 서비스였다. 이 대표와는 V포럼에서 만나 알고 지내던 학교 선후배 사이였는데(당시 V포럼은 이 대표를 포함해 안성우 채널브리즈(직방) 대표, 박재욱 VCNC(쏘카) 대표 등 10여 명의 멤버로 구성됐다) 그분의 역량을 믿고 회사를 추천해 브리핑한 것이다.”

토스에 정식 투자도 했나.

“비바리퍼블리카를 회사에 추천했던 것이 인연이 돼, 나중에 내가 정규직이 되고 토스가 출시된 후 기업 가치 25억원에 5억원을 투자할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회사에서는 규제 산업에 투자하는 건 어렵다는 입장이었고, 결국 그때 투자를 하지 못했다.

비바리퍼블리카가 최근 8조2000억원의 밸류에이션을 인정받았다고 하지 않나. 25억원이면···(손 이사는 말을 쉽게 잇지 못했다). 당시 비바리퍼블리카에 투자하지 못했던 게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실패 아니었을까 싶다.”

손호준 스톤브릿지벤처스 이사, 안성우 채널브리즈(직방) 대표(왼쪽부터). 2015년 촬영한 사진이다. /노자운 기자

그래도 좋은 투자 포트폴리오가 많지 않은가. 직방 같은 서비스에도 초기 투자했고.

“직방은 2014년에 투자하기 시작해 지금까지 누적 투자금이 300억원이 넘는다. 지분은 거의 다 보유하고 있다. 회사가 최근 1조1000억원의 밸류에이션을 인정받았다는데, 그걸 감안하면 지분 희석을 배제하고 산술적으로 약 100배의 수익이 난 셈이다.”

벤처 기업에 투자하면서 배운 것이 있다면.

“벤처 투자업에서는 2대8의 법칙이 매우 중요하더라. 상위 20%의 포트폴리오가 전체 수익의 80%를 담당한다. 상위 20% 안에서도 또다시 2대8의 법칙이 작용한다. 결국 한두 개 투자 회사가 벤처 펀드 전체의 수익을 좌우하고, 커리어를 통틀어서도 가장 중요한 한두 개 포트폴리오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지난 4월 카카오에 인수된 지그재그에도 초기 투자를 했다. 어떻게 투자하게 됐던 건지.

“크로키닷컴의 서정훈 대표와는 2012년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다. 당시 크로키닷컴은 에버노트에 영단어장을 넣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기사에도 나고 조금씩 알려지던 단계였는데, 서비스를 써보니 참 좋기에 무작정 전화를 걸어 찾아갔다. 그때부터 주기적으로 만나며 친하게 지냈다.

그러다 서 대표가 2015년 지그재그를 출시했는데, 사용자 증가 속도는 굉장히 빨랐지만 2년 후인 2017년까지도 매출이 거의 없었다. 월 거래액이 300억원에 달했는데도 말이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거래액의 5~20% 매출액은 충분히 낼 수 있을 것 같았고, 400억 밸류에이션에 50억원을 투자했다.”

지그재그가 매출을 낼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어떻게 했는지.

“나는 앞서 직방과 배달의민족에 투자 심사를 한 경험이 있었다. 지그재그도 직방, 배민과 마찬가지로 의·식·주의 영역에 있었고, 소상공인들이 들어와 고객을 유치하는 플랫폼이라는 점이 유사했다. 당시 배민과 직방은 이미 전체 거래액의 5%에 해당하는 매출을 내고 있었다.”

지그재그 투자는 순조롭게 이뤄졌나.

“나는 무조건 투자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는데, 서 대표가 이미 해외 기관들의 투자 유치를 논의 중이라고 하더라. 그래서 ‘부담 갖지 말고 우리 회사에 한 번 찾아와 가볍게 사업 설명 한 번만 해 달라’고 부탁했다. 사실 서 대표에게는 미리 말하지 않았지만, 다른 투자 심사역들을 전부 모아 놓고 공식 기업 설명회(IR)를 연 것이다.

서 대표가 와보고는 왜 이렇게 사람이 많나 의아해하더라. 결국 서 대표의 브리핑이 끝나자마자 바로 투자 심사를 준비해 바로 내부 승인을 받았고, 해외 VC보다 더 빨리 50억원을 입금하겠다고 설득해 지분 투자를 했다. 우리 회사에서 투자했던 때가 2017년 여름이었는데, 그 해 12월 정말로 전체 거래액의 5%에 해당하는 월 매출을 내고 승승장구했다.”

카카오가 인수를 추진 중인 온라인 패션 쇼핑몰 지그재그.

보통 투자 결정을 빨리하는 편인가.

“한 번 투자해야겠다고 마음먹으면 그때부터는 속전속결로 추진한다. 투자받는 창업가들도 놀랄 때가 많다. 그러나 내 입장에서는 상당히 오랜 기간 옆에서 지켜보며 투자 검토를 한 것이다. 지그재그도 서 대표와 5년 간 알고 지내다 투자하지 않았나.

창업가를 처음 만난 후 투자하기까지 평균 2년이 걸리는 것 같다. 처음부터 투자할 목적을 갖고 만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우연히 알게 된 사이인데 나와 생각이 비슷하고 매번 만날 때마다 사업 구상에 업데이트가 많이 돼있고, 시장에 대해 공감하는 부분이 많을 경우에 투자를 결정한다.”

스타일쉐어에도 그렇게 투자한 건가.

“맞다. 윤자영 대표와 2014년부터 알고 지냈는데, 주기적으로 만나며 알고 지내다 이커머스를 시작할 때 300억원 밸류에이션에 투자했다. SNS를 이커머스로 발전시키면 좋겠다는 공감대가 있었고, 시장에 대한 생각이 서로 비슷하다는 것을 차차 알아가며 투자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던 것이다.”

예외도 있었는지.

“한 건 있다. 신선식품 거래 스타트업 ‘정육각’은 김재연 대표를 처음 만나 사업에 대해 듣자마자 바로 투자 검토를 시작했다. 다만, 이 경우에는 내가 1년 반 전부터 정육각을 사용하며 서비스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투자를 결정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는 무엇인가.

“대주주가 어떤 사람인지가 중요하다. 유니콘 기업의 창업가들은 대체로 작은 정보를 갖고 큰 인사이트를 얻어서 과감하게 결정하고 효율적으로 이행한다. 창업가는 중요한 의사 결정을 적절한 시기에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창업 초기 단계에 지분이 여러 명에게 분산된 회사는 선호하지 않는 편이다. 창업가가 직관을 갖고 뭔가 결정해 추진해야 하는데 지분을 많이 보유한 여러 사람을 모두 설득해야 한다면,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다.”

어떤 산업이 유망하다고 보는지.

“과거 스마트폰 보급이 급속도로 진행됐을 때는 의식주 관련 산업이 가장 유망할 것으로 내다봤다. 지금은 국내에서 시작해도 해외에서 성공하면 유니콘이 될 수 있는 산업을 눈여겨보고 있다.

나는 그걸 브랜드·아이피(지식재산권)·테크놀로지의 앞글자를 따서 ‘BIT’로 부른다. 특히 아이피의 경우 음악과 드라마, 게임, 웹툰 등 엔터테인먼트와 콘텐츠를 포함하는데, 글로벌 시장에서 한 번 ‘터지면’ 유니콘 이상의 기업이 될 수 있다.”

손 이사가 투자를 심사한 스타일쉐어. 사용자들이 입은 옷을 구경하며 태그가 된 옷을 바로 구매할 수 있는 이커머스 플랫폼이다. /스타일쉐어 홈페이지

성공적인 투자 심사역이 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아직 성공을 했다고 보긴 어렵지만, 두 가지가 중요한 것 같다. 먼저 경험과 네트워크, 인사이트를 갖고 특정 시장에서 상위 20%가 될 수 있는 기업을 알아봐야 한다. 인공지능(AI)이 빅데이터를 학습하듯 투자 심사역도 경험이 충분히 쌓여야만 회사를 보는 눈이 생긴다.

스타트업의 직원이 50명일 때, 100명일 때 각각 어떻게 다른지도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좋은 회사를 알아봤을 때 과감하게 많은 돈을 투자할 수 있어야 한다. 선구안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큰 펀드의 운용 능력이다.”

‘큰 펀드’를 운용하고 있는지.

“지금까지 직접 모금해 결성한 펀드가 3개 있다. 170억원 규모의 ‘오퍼튜니티투자조합’, 1050억원짜리 ‘한국형유니콘투자조합’, 400억원짜리 ‘성장디딤돌투자조합’을 만들어 운용했다. 이 중 성장디딤돌투자조합은 오지성 현 뮤렉스파트너스 부사장과 이승현 상무와 공동으로 만든 펀드였는데(당시 세 명 모두 30대 심사역이었다), 세 사람 모두 그 펀드에서 투자한 회사로 대박을 냈다. 오 전 부사장은 두나무에, 이 상무는 바이오 기업 ICM에, 나는 지그재그에 투자했다. 펀드가 올해 청산을 앞두고 있는데 수익률이 상당할 것으로 기대한다.”

요즘도 많은 회사에 대한 투자를 검토하고 있는지.

“보통 하루에 한 건은 검토하고 있는 것 같다. 현재 진지하게 투자를 검토 중인 회사는 3개 정도.”

단기적인 목표와 장기적인 최종 목표는.

“단기적인 목표는 현재 결성 중인 벤처 펀드를 잘 만드는 것이다. 500억원이 넘는 펀드를 신한캐피탈과 같이 만들고 있다. 이 펀드를 통해 유니콘 기업들이 더 많이 나올 수 있도록 돕고 싶다.

장기적 목표는 훌륭한 창업자들이 돈 걱정 없이 일할 수 있도록 든든한 파트너가 돼주는 것이다. 창업자들이 필요로 하면 인수 금융을 알선해주는 등 ‘원스톱’ 서비스를 할 수 있는 벤처캐피털리스트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