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 식품 배송 서비스 ‘마켓컬리’를 운영하는 컬리가 국내 증시에 상장하는 방향으로 잠정 선회한 것을 두고 그 배경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12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컬리가 국내 상장으로 방향을 잡으면서 상장 주관 계약을 따내기 위한 증권사들의 물밑 경쟁이 치열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투자 업계에서 바라보는 컬리의 상장 후 시가총액은 5조 원에 달한다.

한 사람(김슬아 컬리 대표) 빼고 다 좋아할 만큼 많은 혜택을 준다는 메시지를 담은 마켓컬리 신규 광고. 김슬아 대표가 직접 출연했다. /컬리

컬리는 재무 실적만 놓고 볼 때 미국에 상장할 여건을 갖추고 있다.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하는 외국 기업은 7억5000만달러(8600억원)의 시가총액과 7500만달러(861억원)의 매출액을 충족해야 한다. 나스닥 우량 기업을 위한 나스닥글로벌셀렉트마켓은 시가총액 8억5000만달러(9800억원), 매출액 9000만달러(1033억원)의 조건을 내걸고 있다. 컬리의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액은 9530억원으로, 뉴욕증권거래소와 나스닥의 재무적 상장 요건을 모두 충족한다.

업계 관계자들은 컬리의 국내 상장 선회 배경을 놓고 다양한 추측을 내놓고 있다. 미국에 상장할 때는 국내 상장과 비교해 높은 수수료가 발생하는데, 컬리는 공모금액이 쿠팡과 달리 매우 작기 때문에 높은 수수료율을 그대로 적용 받을 수밖에 없다.

또한 컬리는 국내 법인이기 때문에 미국에 상장하기 위해서는 미국 법인을 세워 주식을 스왑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양도세가 발생한다. 반면, 태생이 미국 회사인 쿠팡은 그런 부담이 없었다.

① 높은 상장 비용

세무 회계 업계에서는 컬리가 국내 상장으로 방향을 선회한 이유 중 하나로 상장 비용의 차이를 꼽는다.

국내 한 대형 회계법인 관계자에 따르면, 미국에 상장할 경우 금융 회사에 지불해야 하는 수수료는 국내 상장 시 필요한 수수료의 두세 배 수준이다. 미국의 상장 수수료는 공모자금의 3~7% 정도지만, 국내 상장 주관사에 지불하는 수수료는 공모자금의 2~3% 수준이다.

공모자금 규모가 크면 상장 수수료는 낮아지기도 하나, 컬리의 경우에는 공모 금액에 한계가 있어 그러한 이점을 누리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쿠팡이 상장할 당시 금융사에 지불했던 수수료는 공모자금의 2%에 그쳤는데, 이는 공모자금이 총 42억달러(당시 환율로 4조8000억원)에 달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컬리의 경우 현재 금융 투자 업계에서 바라보는 기업가치가 2조6500억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체 시가총액의 20%를 공모한다고 가정하면 공모자금은 5300억원이다. 쿠팡과 비교가 무색할 정도로 작은 규모다.

/일러스트=박상훈

IB 업계에서 추측하는 대로 컬리의 상장 후 시가총액이 5조~7조원이라면, 전체의 20%를 공모주로 내놓는다는 가정 하에 공모자금이 최대 1조4000억원으로 늘어나게 된다. 이 경우, 미국에 상장한다면 금융 회사에 지불해야 하는 수수료는 420억~980억원이다. 미국 대신 국내 증시에 상장한다면 수수료는 280억~420억원 수준이 된다.

금융 회사에 지불해야 하는 수수료 뿐 아니라 법무 자문 비용에도 차이가 있다. 미국 법무법인의 자문 비용이 우리나라 법무법인에 비해 최소 2배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회계법인 관계자는 “쿠팡 상장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 미국에 상장할 때는 필요 서류가 매우 많고 문서 자체가 매우 두꺼워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고 말했다.

국내 한 증권사 IB 담당자는 “언어가 다른 나라에 상장하려면 법적 문제의 소지를 최소화하기 위해 서류 내용을 꼼꼼하고 정확하게 오랫동안 검토해야 한다”며 “서류를 모두 영어로 작성해야 하니 법무 조언을 더 많이 받아야 해, 비용에 큰 차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미국 회계감사기준과 증권거래위원회(SEC)의 기준이 우리나라보다 엄격하고 까다로운 만큼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② 막대한 세금 문제와 FI ‘드래그얼롱’ 조항

일부 전문가들은 상장 비용보다 더 중요한 것이 세금 문제라고 지적한다.

국내 법인이 미국에 상장할 경우, 일반적으로 현지에 법인을 설립한 후 기존 국내 법인을 미국 법인의 100% 자회사로 만드는 방법이 쓰인다. 기존 국내 법인의 주주는 주식 스왑을 통해 미국 법인의 주주가 된다.

문제는 국내 법인을 미국 법인으로 전환할 때 ‘양도세’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지분의 취득 금액과 현 시점 순자산 가치의 차액을 양도차익으로 인식해, 10~30%의 양도세를 부과한다. 이 양도세는 특히 창업주에게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이처럼 복잡한 과정을 거치며 큰 비용을 부담해 미국 회사로 전환해야 하는 컬리와 달리, 쿠팡은 애초에 미국 법인이 국내 법인의 지분을 100% 보유한 구조다. 김범석 의장이 2010년 미국에 포워드벤처스를 설립한 후 2013년 2월 쿠팡 유한회사(Coupang LLC)로 법인 전환했으며, 같은 해 10월 국내 자회사인 쿠팡 주식회사를 설립했다.

한 벤처캐피털(VC) 임원은 “쿠팡은 애초에 미국 상장에 최적화된 시스템으로 만들어진 미국 회사지만, 컬리는 국내 법인”이라며 “현지 법인을 설립해 지분을 옮겨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막대한 세금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컬리 제공

마켓컬리가 미국계 벤처캐피탈 세콰이어 등 재무적투자자(FI)로부터 투자계약을 체결하면서 넣은 드래그얼롱(동반매도청구권) 조항 탓에 그나마 현실성 있는 국내 상장으로 유턴한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이 조항은 3년내 상장하지 않으면 FI가 김슬아 대표(6.67%)의 지분까지 3자에 매각할 수 있다는 의미다. 작년말 기준 주요 주주인 DST글로벌과 세콰이어캐피탈, 힐하우스캐피탈 등 외국계 벤처캐피털(VC)의 지분이 50%가 넘는다.

드래그얼롱이란 소수 주주가 지배주주 지분까지 끌고와 제3자에게 매각할 수 있는 조항을 말한다. 통상 FI들은 투자 기업의 가격 하락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투자 지분을 자유롭게 매각해 회수를 극대화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한다. 가장 일반적으로 활용되는 FI 투자회수 방안이 드래그얼롱이다. IPO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를 대비한 최소한의 프로텍션 조항인 셈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김 대표가 보유한 컬리의 지분율은 6.67%이다. 이번에 다수의 기관 투자자들로부터 2254억 원 규모의 시리즈 F 투자를 받으면서 김 대표의 지분율은 더 떨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③ 국내 IPO 시장의 상대적 호황

국내 기업공개(IPO) 시장이 미국과 달리 여전한 호황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 역시 컬리의 한국거래소행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풀이된다.

올해 국내 IPO 시장에서는 유례없는 투자 활황이 지속되고 있다. 시가총액이 수십 조원에 달하는 기업들이 ‘고평가’ 우려 속에 잇달아 상장에 나서고 있음에도, 넘치는 유동성 덕에 공모주 물량을 모두 소화할 가능성이 크다.

이달 말부터 다음달 초까지는 특히 크래프톤과 카카오뱅크·카카오페이 등 이른바 ‘데카콘(시가총액이 100억달러 이상인 기업)’이 줄줄이 공모 청약을 앞두고 있는데, 증시 대기 자금이 폭증하며 흥행 성공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7일 국내 증권사의 종합자산관리계좌(CMA) 잔고는 71조원을 넘었다. 지난 4월 말 사상 최초로 70조원을 돌파한 지 약 2달 반 만에 또다시 기록을 세운 것이다.

반면 미국 IPO 시장은 1분기 이후 다소 냉각됐다. 파이낸셜타임즈(FT)에 따르면, 1~2월 뉴욕증권거래소와 나스닥시장에 새로 상장한 기업들의 공모가 대비 평균 주가 상승률은 40%였다. 이 상승률은 3~4월 20%로, 5월에는 18%로 하락했다.

한 VC 임원은 “국내 증시가 ‘빅딜’을 전부 소화할 수 있을 정도로 유동성이 넘치며 기업의 밸류에이션(기업 가치 대비 주가 수준)에 대한 인식도 많이 개선되고 있는데, 굳이 미국 시장에 나갈 이유가 없다”며 “어쩌면 국내 상장이 상식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④ ‘신선식품 새벽배송’의 성장성 한계

신선식품에 치우쳐 있는 포트폴리오도 미국 자본시장의 관심을 끌기엔 역부족이었을 것이란 지적이다.

미국 증시 상장을 앞둔 기업에게 중요한 것은 혁신성과 글로벌 영향력이다. 쿠팡의 경우 누적 적자액이 4조5000억원에 달했지만, 글로벌 3위 규모인 한국 이커머스 시장 내 지배력과 로켓배송의 혁신성을 적극적으로 피력한 것으로 알려진다.

반면, 신선식품 새벽배송을 앞세운 컬리는 성장성에 한계가 있다는 평이 꾸준히 나왔다. 최근 배송 영역을 충청 지역으로 넓히고 취급 상품을 가전제품, 레저 등으로 확대했지만, SSG닷컴, 롯데온, 현대백화점 등 대기업들이 유사한 서비스를 내놓고 추격하면서 컬리의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지난 3월 초기 투자자인 한국투자파트너스가 보유하고 있던 컬리 지분 전량(매각가 약 138억원)을 매각하고 오아시스마켓에 투자한 것도 경쟁력이 약화됐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