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명동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모습. / 연합뉴스

국내 증시가 지난 11일부터 3거래일 연속 하락하고 있다. 증권 전문가들은 미국 물가상승 압력과 인도 등 신흥국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 19) 재확산 우려가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고 봤다. 삼성전자 등 주요 반도체 기업에 대한 과도한 기대감 붕괴 등도 투자심리에 찬물을 끼얹었다.

최근 분위기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미국의 물가상승 압력이다. 지난 12일(현지 시각) 발표된 4월 미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 동월보다 4.2% 급등했는데, 당초 시장 예상치 3.6%를 크게 뛰어넘었다. 이렇게 물가상승 압력이 커지면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금리 인상 등 유동성 회수에 나설 가능성이 커진다.

이와 함께 코로나 확진자가 인도 등을 중심으로 늘면서 글로벌 공급망이 차질을 빚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올해 슈퍼사이클(대호황)을 기대했던 반도체 산업 전망이 내년에는 그렇게 밝지 않을 것이라는 의구심까지 겹치면서 국내 증시는 파랗게 질린 상태로 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요인들 탓에 당분간 외국인 자금 등을 중심으로 국내 증시가 상승하기에는 쉽지 않은 상황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내놓는다. 공격적인 투자를 하기보다는 리스크 관리에 중점을 둬야 할 상황이 펼쳐질 수 있다는 얘기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3일간 국내 증시가 조정을 받고 있는데 미국의 물가 상승에 대한 우려가 선반영된 것”이라며 “이런 흐름은 다음 달까지도 이어질 것 같다”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박 연구원은 “연준도 (유동성을 공급하는) 통화정책 기조를 변화시키지 않겠다고 밝혔기 때문에 이런 물가상승 압력은 일시적일 것이고 3분기부터 미국 물가상승률도 2%대로 하락할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미국 물가상승 압력이 국내 시장에 영향을 주는 시점에 대해선 전문가들 사이에서 다소 차이가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달 말 전후로 예측한다. 6월부터는 이런 압력이 다소 진정될 것이라는 것이다. 지난해 코로나 팬데믹이 확산하면서 경기가 급속히 냉각됐고 미국의 4~5월 주요 물가지표가 크게 하락했는데, 1년 전과 비교해 물가지표를 발표하는 특성이 시장에 이미 반영되고 있다는 얘기다. 다만 8월 연준의 연례행사인 잭슨홀 미팅까지 이런 우려가 계속 될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미국은 이번에 발표된 CPI 이외에도 이달 말 개인소비지출물가지수(PCE) 발표를 앞두고 있다. PCE는 가계와 민간 비영리기관이 물건을 사거나 서비스를 이용하는데 지불한 모든 비용이다.

박석현 KTB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이번에 발표된 CPI, 이달 말 발표되는 PCE는 4월 지표이고 다음달 발표되는 지표들은 5월 지표인데 모두 1년 전 지표와 비교해서 기저효과 때문에 급등한 측면이 있다”며 “이런 기저효과가 정점을 이루는 것은 4,5월 지표가 될 것이고 6월 이후부터는 기저효과 감소로 인해 인플레이션 압력이 진정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윤석모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인플레이션이 국내 증시에 미치는 영향과 관련 “8월 연준의 연례행사인 잭슨홀 미팅에서 테이퍼링(양적 완화 축소)에 대한 연준의 입장이 언급되는지를 봐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만 타이베이에 있는 대만증권거래소 외곽에서 한 행인이 증시 시황판 앞을 지나고 있다. / 연합뉴스

미국발 인플레이션 압력 이외에도 국내 증시 추가 상승을 제한하는 요인은 있다. 삼성전자(005930)SK하이닉스(000660) 등을 비롯한 반도체 기업들의 주가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삼성전자와 삼성전자 우선주는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의 25.39%를 차지한다. 삼성전자 등 반도체 기업들의 슈퍼사이클을 기대하며 주가가 최근 급등했지만 향후 주가 상승 폭은 제한적일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세계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분야 1위 기업인 TSMC는 지난 10일 지난달 매출액이 전월보다 13.8% 감소했다고 밝혔고, 이 영향으로 12일 대만 증시는 4.11% 폭락했다. TSMC가 대만 지수의 30%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에 큰 영향을 받은 것이다. 한국 코스피지수도 삼성전자에 의존하는 비슷한 구조로 돼 있다.

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TSMC의 매출 감소는 기업들의 반도체 재고가 쌓여가는 수준을 반영한 것”이라며 “아무도 의심하지 않고 반도체 슈퍼사이클을 이야기하며 기업가치를 미리 올려서 주가에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내년까지 호황이 이어질 것으로 보며 반도체 기업들의 주가가 계속 올랐지만, 재고 수준이나 향후 반도체 수요가 그렇게까지 좋을 것 같지는 않기에 외국인 등이 삼성전자 등을 매도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윤석모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반도체 분야의 주요 기업들이 이익의 상당 부분을 미래 사업에 투자하기로 했고, 반면 재고는 이미 많이 쌓인 상태”라며 “이렇게 공격적으로 투자하면서 경쟁이 치열해지면 칩(반도체) 가격이 하락할 가능성이 있고 수요도 그만큼 늘어나지 못할 수 있어 지금보다 더 베팅(투자)하지 않으려는 것이 외국인들의 투자 전략 같다”고 설명했다.

박석현 팀장도 “반도체 기업들의 주가는 하반기로 넘어가면 내년 실적을 반영하기 시작하는데 내년에 IT 수요가 지금처럼 좋을지 모르기 때문에 반도체 산업을 낙관하기에는 불확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윤지호 센터장은 “굳이 나누자면 지금은 리스크 온(risk on) 구간이 아니라 리스크 오프(risk off)구간”이라며 “잘 모르겠을 때는 실수를 줄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리스크 오프란 시장의 리스크가 커지면서 안전자산으로 자금이 이동하는 현상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