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나항공의 화물사업부 인수 우선협상대상자(우협) 선정이 예상보다 늦어질 것이란 전망이 투자은행(IB) 업계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일정상 다음 달 말 정해질 예정이지만, 기업 실사에 필요한 데이터가 이제 막 제공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딜이 제대로 성사될지 장담할 수 없다는 반응도 나온다. VIG파트너스가 대주주인 이스타항공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후보는 자금 조달 계획을 제대로 세우지도 못한 상태다. 정부 주도로 진행되다 보니 재무적 투자자(FI)가 이익을 내기 쉽지 않은 구조로 딜이 짜였고, 이로 인해 사모펀드(PEF) 운용사들이 섣불리 뛰어들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표적으로 항공사와 FI의 공동 투자가 불허됐다. FI가 아시아나 화물을 인수하려면 저비용항공사(LCC)에 먼저 투자해, 표면상으로는 LCC 홀로 인수에 나서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지난달 결국 무산된 HMM 매각 딜의 재판이 되는 것 아니냐는 회의론이 제기된다.
◇ “구색맞추기식 예비입찰, 일단 참여는 했지만...”
22일 IB업계에 따르면,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부의 매각 주관사인 UBS는 4월 말까지 우협을 선정하기로 했다. 앞서 지난달 28일 진행된 예비입찰에는 제주항공, 이스타항공, 에어프레미아, 에어인천 등 4개 LCC가 인수의향서(LOI)를 제출했다. 또 다른 후보로 거론됐던 티웨이항공은 참여하지 않았다.
IB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제 막 실사를 위한 데이터가 열리고 있어, 이런 속도라면 4월 안에 우협이 정해지긴 어려울 것”이라며 “요즘 M&A 절차가 대체로 늘어지는 추세여서 특별히 이상한 일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앞서 대한항공은 작년 11월 아시아나 화물사업부 매각 등의 내용을 담은 시정조치안을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에 제출했다. EU는 시정조치 실행을 조건으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 결합을 승인한 바 있다. 매물로 나온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부의 몸값은 약 5000억~7000억원으로 알려졌다. 작년 1~3분기 누적 매출액은 1조1354억원이었다. 회사 전체 매출액(4조7500억원)의 24% 수준이다.
화물사업부 인수전에 뛰어든 네 후보 중 이스타항공의 경우 사모펀드(PEF) 운용사 VIG파트너스가 대주주이며, 해외 자본 한 곳과 손잡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JC파트너스(지분율 35.3%)와 AP홀딩스(30.4%)가 주요 주주로 있는 에어프레미아는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 등을 우군으로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는 사실무근이라는 게 회사의 설명이다. 소시어스가 보유한 에어인천은 자본금이 72억원(2022년) 수준으로 작아 유력 후보로는 인식되지 않는 상황이다.
네 후보 중 몸집이 가장 큰 제주항공 역시 어느 FI의 손을 잡을지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제주항공 자체가 진정성이 별로 없다는 얘기가 나오는 만큼 레이스를 완주할 지조차도 오리무중이다.
IB 업계의 한 관계자는 “아시아나와 대한항공의 기업 결합을 위해 화물사업부를 파는 것이어서 딜을 빠르게 진행해야 하다 보니 매각 측에서 이곳저곳(LCC)에 일단 예비입찰 참여를 설득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제주항공이 ‘구색 맞추기’ 식으로 예비입찰에 참여는 했지만, 적극적으로 경쟁할 의사는 별로 안 보인다는 것이다.
◇ 항공사·FI 공동 투자 불허... 밸류에이션 두 번 계산해야 하는 사모펀드들
업계에서는 이번 매각 딜이 제대로 끝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항공사 면허를 갖고 있는 회사만 입찰할 수 있도록 제한해 FI가 뛰어들기 어려운 구조라는 것이다.
IB 업계 관계자는 “국토교통부가 항공사 면허를 가진 회사만 응찰하도록 자격을 제한했는데, 이 때문에 FI는 LCC와 코인베(co-invest·공동투자)를 하지 못한다”며 “무조건 LCC에 돈을 넣고 항공사를 통해 아시아나 화물사업부를 인수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구조는 두 번의 밸류에이션(기업 가치 대비 주가 수준) 산정을 필요로 한다. FI는 LCC의 밸류에이션을 정해 출자하고, LCC는 아시아나 화물사업부의 밸류를 계산해 출자해야 한다. 문제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여행 수요가 늘며 LCC의 실적이 개선되고 있다는 것이다. LCC 입장에서는 작년 4분기와 올해 1분기의 호실적을 토대로 밸류를 정해 출자받고, 반대로 아시아나 화물사업부의 밸류는 가급적 낮춰서 투자하도록 유도할 수밖에 없다.
업계 관계자는 “만약 FI가 LCC와 코인베를 하는 구조라면 아시아나 화물사업부의 업사이드(상승 여력)만 보고 투자할 수 있겠지만, 지금과 같은 구조라면 누가 섣불리 들어갈 수 있겠느냐”며 “VIG파트너스가 소유한 이스타항공이라면 몰라도 다른 LCC들은 제3자를 FI로 끌어와야 하니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아시아나 화물사업부 매각은 정부의 입김이 작용할 수밖에 없는 딜이다. 채권단인 산업은행이 대한항공과 함께 진행 중이며 국토부가 항공사의 인수 등 전반을 관할한다. 지난달 산업은행·해양수산부와의 불협화음 끝에 매각이 결렬된 HMM의 사례를 생각하면, FI들 입장에선 참전을 망설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