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6년 6월 11일 17시 19분 조선비즈 머니무브(MM) 사이트에 표출됐습니다.
메리츠금융그룹이 홈플러스의 담보 부동산 가치를 1조5000억원 안팎으로 평가한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이 금액이 메리츠가 회수해야 할 선순위 원리금 규모와 거의 비슷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메리츠의 판단대로 담보 가치가 1조원대 중반에 그친다면, 담보를 처분하더라도 처분 대금 대부분이 기존 원리금 회수에 쓰이게 된다. 이 경우, 메리츠가 홈플러스에 추가 회생자금을 지원하려면 기존 담보 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대주주 보증 등 별도의 신용보강이 필요하다는 논리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MBK파트너스 측 신용보강을 요구해온 메리츠의 기존 입장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된다.
◇ 담보가치 1.5조라면 원리금 회수도 빠듯…DIP 지원 명분 약화
11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메리츠는 홈플러스 점포 담보 부동산의 현재 가치가 최소 1조5000억원으로 하향 조정됐다고 주장한다. 홈플러스가 2024년 메리츠로부터 1조3000억원을 빌렸던 당시 부동산 감정가가 4조원대 후반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1년여만에 담보가치를 3분의1 수준으로 낮춘 셈이다.
이번에 메리츠가 평가한 가격은 정상 영업 중인 점포의 감정가라기보다는 담보권 실행을 전제로 한 처분가에 가깝다. 회생 절차에 들어간 유통사의 대형 점포를 일시에 매각할 경우 인수 후보가 제한적이고, 용도 변경 가능성이나 영업 지속 여부에 따라 실제 회수액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논리가 깔려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반면 홈플러스 측은 전체 부동산 가치를 2조원대 후반으로 보고 있다. 올해 초 회생절차 조사위원이 산정한 청산가치와 법원 감정평가 결과 등을 근거로 한 가격이다.
업계에서 주목하는 부분은 메리츠가 제시한 '최소 1조5000억원'이라는 숫자 자체다. 앞서 메리츠가 지난해 서울회생법원에 신고했던 홈플러스 회생채권은 총 1조3028억원이다. 미상환 대출금 1조2166억원과 미지급 이자 861억원이 포함된 금액이다. 이후 신내점 매각대금 515억원이 조기 상환되면서, 대출 잔액은 1조1000억원대로 낮아진 상황이다.
다만 계약상 지연이자 20%까지 최대치로 반영하면, 메리츠의 원리금 규모는 1조5000억원 안팎까지 늘어날 것으로 추산된다. 업계 관계자는 "메리츠가 주장하는 홈플러스 담보가치가 계약상 원리금 최대 회수액과 맞닿아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며 "담보를 처분하더라도 기존 선순위 원리금을 회수하고 나면 남는 여력이 거의 없다는 논리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즉, 메리츠가 홈플러스에 추가 운영자금을 지원하더라도 기존 담보만으로는 회수 안정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주장이 가능해지는 셈이다. 반대로 담보 가치가 2조원대 후반일 경우, 기존 채권의 회수 안정성이 높아지고 메리츠가 추가 자금 지원을 거절할 명분은 상대적으로 약해진다.
◇ 역삼동·가산 W몰 사례 다시 거론…홈플러스 청산 땐 후순위·협력사 피해
이런 맥락에서 과거 메리츠가 참여했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장 처분 사례도 다시 거론되고 있다. 부실 PF 사업장에서는 정상 감정가보다 낮은 가격에 담보가 처분되는 경우가 많고, 최종 처분가가 선순위 대출금 회수액에 근접한 수준에서 형성되는 일이 잦다. 이 경우 선순위 대주는 원금을 회수하지만, 중·후순위 대주나 기존 이해관계자는 손실을 떠안는 구조가 된다.
이날 MBK홈플러스TF위원장을 맡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유동수 의원은 서울 여의도 메리츠증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메리츠가 부동산 경기 침체 속에서 역삼동 복합개발 사업 부실 피해를 모기업과 후순위 채권자에게 모두 전가하고 막대한 수익을 거둔 적이 있다"고 지적했다.
유 의원이 언급한 '역삼동 복합개발'은 서울 역삼동 832-21 지역의 개발 사업을 의미한다. 메리츠는 2024년 해당 사업장에서 선순위 대주 자격으로 EOD를 선언하고 공매에 나선 바 있다. 당시 KT에스테이트·라살자산운용 컨소시엄이 감정가 2308억원의 67% 수준인 1550억원에 낙찰받았는데, 이 과정에서 선순위 1300억원과 브릿지론 연장수수료 72억원은 회수된 반면 중·후순위 대주단은 상당한 손실을 본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 메리츠는 새 매수자 측 PF 4190억원 조달에도 금융 주관사로 참여했다.
서울 구로구 가산동 W몰은 처분가가 선순위 회수액에 더 근접했던 사례다. 2023년 EOD 이후 공매가 진행됐으며, 최종 매각가는 880억원으로 낮아졌다. 기존 대출금 1630억원 중 선순위는 850억원이었는데 선순위 대주인 메리츠는 매각을 통해 대출금을 회수했지만 중·후순위 대주단은 손실을 피하기 어려웠다.
마찬가지로 메리츠가 1순위 수익권자였던 경기 이천 물류센터 개발 사업장도 2024년 감정가 872억원으로 공매를 시작했으며, 8회나 유찰된 끝에 2024년 2월 태명실업에 600억원에 매각됐다. 업계에 따르면 메리츠는 전액 회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사례는 메리츠의 PF 운용 방식이 선순위 담보권을 바탕으로 한 회수 안정성을 추구해왔다는 점을 시사한다. 사업성이 악화되면 EOD와 공매 절차를 통해 기존 익스포저를 정리하고, 이후 새 매수자나 새로운 자금조달 구조가 마련되면 신규 금융 참여 여부를 다시 검토하는 방식이다.
이 같은 방식이 홈플러스에도 적용될 것이라고 단정하긴 어렵다. 홈플러스는 단일 개발 사업장이 아니라 영업 중인 유통 회사로, 점포 부동산 외에도 납품망과 고용, 영업권이 함께 얽혀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일각에서는 홈플러스가 청산 또는 담보권 실행 단계로 넘어갈 경우 일부 PF 사업장과 유사한 회수 구조가 작동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만일 메리츠가 담보권을 실행하면, 홈플러스 점포 부동산은 공매 절차를 통해 처분될 수 있다. 이 경우 메리츠는 선순위 담보권자로서 처분대금에서 우선적으로 채권을 회수할 자격이 있다. 이후 새 매수자가 해당 자산을 인수하거나 리파이낸싱을 추진할 경우, 메리츠가 다시 금융주관사로 참여할 여지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담보 부동산이 낮은 가격에 처분되면, 후순위 채권자와 일반 회생 채권자의 손실 부담이 더 커질 수 있다"며 "홈플러스의 경우 납품 업체와 임직원, 점포 운영망까지 얽혀 있어 청산이나 급격한 자산 처분의 파장이 일반 PF 사업장보다 클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MBK파트너스는 전날 DIP 1000억원에 대한 추가 보증 계획을 밝혔지만, 메리츠와의 이견은 여전히 좁히지 못하고 있다. 메리츠는 이날 DIP 1000억원 제공을 검토 중이라고 밝히며 "다만 MBK파트너스 본사와 대주주 김병주 회장의 보증이 반드시 전제돼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