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코스피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234.64포인트(8.77%) 내린 2441.55로, 코스닥지수는 88.05포인트(11.30%) 하락한 691.28로 마감했다. /뉴스1

5일 한국 증시가 최악의 하루를 보냈다. 코스피지수는 8.77%(234.64포인트) 하락한 2441.55로 마감했다. 코스피지수가 하루 200포인트 넘게 떨어진 것은 1988년 유가증권시장 개설 이후 역대 처음이다. 종가 기준 하락률은 전 세계 금융 위기가 발생했을 때인 2008년 10월 24일(-10.57%) 이후 가장 높았다. 장 중 한때 10% 넘게 떨어져 2300대까지 내려가기도 했다.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1998조 원)은 192조 원가량 줄며 2000조 원이 깨졌다. 코스닥지수도 88.05포인트(11.30%) 내린 691.28로 마감하며 700 아래로 무너졌다.

코스피지수와 코스닥지수는 프로그램 매매 매도 호가의 효력을 5분간 정지하는 사이드카가 차례로 발동된 데 이어, 지수가 8% 이상 떨어져 거래를 20분간 일시 중단시키는 서킷브레이커(매매 일시 중단) 1단계도 발동됐다. 두 지수가 같은 날 매도 사이드카가 걸린 것은 코로나 사태 초반인 2020년 3월 23일 이후 4년 5개월 만이다. 동시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된 것 역시 2020년 3월 19일 이후 처음이다. 거래가 멈춘 동안에도 매도세가 진정되지 않으며 거래 재개 직후 하락폭이 더 커지기도 했다.

미국 경기 침체 우려 부각, 중동 전쟁 확산 불안, 인공지능(AI) 거품론, 엔화 가치 상승에 따른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 가능성 등 악재가 겹치며 증시가 폭락했다. 과한 공포심에 패닉셀(공포로 인한 투매)이 일어났다는 분석도 나왔다.

코스피 시장에선 외국인이 매물 폭탄을 쏟아내며 폭락장을 주도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외국인은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 주식 현물을 1조5238억 원어치 순매도했다. 코스피지수가 3.65% 하락했던 2일 순매도액(8478억 원)의 거의 두 배다. 2022년 1월 27일(1조7141억 원 순매도) 이후 최대 순매도액이기도 하다. 외국인은 시총 1위인 삼성전자(005930)를 1조2291억 원어치 순매도하며 가장 많이 던졌다. 이 때문에 삼성전자는 10% 넘게 폭락했다. 외국인이 그다음으로 많이 내던진 종목은 시총 2위 SK하이닉스(000660)(2294억 원 순매도)였다.

그런데 외국인은 코스닥시장에선 5482억 원 규모로 순매수했고, 유가증권시장에서 주식 선물도 1322억 원어치 순매수했다. 외국인은 오전에 코스피 200 선물을 순매도했으나, 서킷브레이커 등 시장조치 이후 매수 우위로 전환해 9441억 원 순매수로 마감했다.

외국인 투자자의 한국 증시 엑소더스(대탈출) 여부와 증시에 미칠 영향을 놓고 증권가의 분석과 전망은 엇갈린다. 올해 상반기 외국인의 한국 증시 순매수는 역대 최대 규모였다. 월별로 보면 외국인은 5월 한 달만 순매도를 기록했다. 그러나 코스피지수가 연중 최고점인 2891까지 오른 7월 중순부터 외국인 매도세가 거세졌다. 일각에선 한국 증시 고유의 취약성 때문에 글로벌 금융 혼란이 커지면 외국인 자금 이탈이 더 강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오지만, 다른 한편에선 외국인이 완전히 뒤돌아선 건 아니라는 관측도 나온다.

박희찬 미래에셋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외국인 투자자 매도 규모는 과도한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근본적으로 미국발 경기 침체 우려 때문에 증시가 내려앉았는데 실제 경제지표를 보면 우려할 만큼의 리세션(경기 침체)은 아니란 것이다. 미국 경제 침체 신호의 근거로 꼽힌 것은 고용 시장 악화였다. 2일 발표된 7월 미국의 신규 일자리는 11만4000건 증가해 직전 12개월 평균(21만5000건)의 절반 수준으로 하락했다. 7월 실업률은 4.3%로 오르며 2021년 10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5일 발표된 미국의 7월 서비스업 경기는 개선 흐름을 보였다. 미국 7월 서비스(비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51.4로, 4년여 만의 최저치였던 6월(48.8) 대비 상승했다. PMI가 50 이상이면 경기 확장을 의미한다. 서비스 부문은 미국 경제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한다.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이 대규모 매도 물량과 글로벌 자금 이탈의 한 원인이란 분석도 나왔다. 캐리 트레이드는 저금리 국가에서 자금을 빌려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곳의 자산에 투자해 차익을 내는 투자 방법이다. 일본 초저금리와 엔화 약세로 엔-캐리 트레이드 자금이 크게 늘어났었다. 한데 미국 경기 침체 우려가 깊어지며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9월에 기준금리를 0.50%포인트 이상 인하할 가능성이 대두되며 달러 지수가 하락세를 보였다. 7월 말 일본 기준금리 인상 이후 엔화는 달러화 대비 강세로 돌아섰다. 6월 중 달러당 160엔을 넘어섰던 엔화 가치는 최근 142엔까지 높아졌다(달러화 대비 엔화 환율은 하락).

나정환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미국과 일본의 금리 차이가 축소될 가능성에 엔화 환율이 142엔까지 하락(엔화 가치는 상승)하면서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 심리를 가속화시킨 점이 수급 이탈을 일으켰다고 분석했다. 블룸버그의 달러-엔 캐리 수익 지수는 연초 수준까지 하락했다.

나 애널리스트는 엔화 환율이130엔대에 진입할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연초 이후의 엔화 약세 흐름을 거의 되돌린 상황에서 엔화 추가 강세나 엔-캐리 트레이드 되돌림에 따른 대규모 주식 매도 물량이 나올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했다. 또 미국 경제 침체가 임박한 게 아니라는 경제 지표가 확인되면 미국의 급격한 금리 인하 가능성이 작아지고 달러 지수 하락세가 진정되면서 엔-캐리 트레이드 추가 청산 가능성도 작아질 것으로 봤다. 박소영 신영증권 애널리스트도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에 따른 기계적 매도가 코스피 시장 급락을 부른 원인이었을 수도 있다고 언급했다.

중동 지역 지정학적 불안으로 인한 위험 자산 회피 심리가 금방 가라앉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있다. 이스라엘이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가자지구 이슬람 무장단체 하마스 최고 정치 지도자(이스마일 하니예)를 암살한 후 이란의 이스라엘 보복 공격이 임박했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중동 전쟁이 확전할 경우 한국 증시에서 외국인 자금 이탈이 지속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뉴욕 증시 하락이 아시아 증시 폭락으로 이어진 상황에서 간밤(5일) 뉴욕 증시 3대 지수는 또 2~3%대 급락했다. 자금 이동을 예단할 수 없기 때문에 6일 장이 열리면 조급하게 매수나 매도에 나서지 말고 상황을 차분히 파악하며 지켜볼 필요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