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손민균

롯데건설이 모회사 롯데케미칼의 도움 없이 회사채 시장 문을 두드리고 있다. 신용도가 더 나은 모회사가 보증을 서주면 더 낮은 금리로 돈을 빌릴 수 있다. 그동안 롯데건설은 필요할 때마다 롯데케미칼의 지원을 끌어왔다. 그러나 롯데케미칼 사정이 점점 더 안좋아지면서 더 이상은 도움을 요청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롯데그룹의 든든한 캐시카우였던 롯데케미칼이 휘청이면서 롯데건설뿐 아니라 다른 계열사들도 자금 조달에 차질이 생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 A+급 롯데건설, 롯데케미칼(AA) 지원 없이 회사채 발행... 조달 금리 연 5%대

16일 투자은행 업계에 따르면 롯데건설은 이달 최대 2000억원 규모의 공모 회사채를 발행하기로 했다. 1년 6개월물(1200억원), 2년물(300억원) 등으로 나눠 총 1500억원 발행을 목표로 기관투자자 대상 수요예측을 진행할 예정이다.

그간 롯데건설은 자체 신용등급인 A+보다 더 나은 조건에서 채권을 찍었다. 모회사인 롯데케미칼이 원리금 지급 보증을 서 AA급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지난 2월 2000억원의 공모 회사채를 발행할 당시에도 롯데케미칼의 신용 보강 덕에 AA급인 연 4%대 금리에서 회사채를 발행했다.

이번엔 모회사 찬스를 받지 않기로 했다. 롯데케미칼 사정이 좋지 않아 보증을 서기 어려운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최근 신용평가 3사는 롯데케미칼(AA)의 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바꿔 달았다. 지난 2022년부터 올해 1분기까지 영업 적자가 이어진 데다 중국 업체들의 누적된 증설로 수급 여건이 나빠진 점이 영향을 미쳤다.

롯데케미칼 도움 없이 롯데건설이 자체 신용등급으로 회사채를 발행할 경우, 조달 금리는 연 5%대로 오를 예정이다. 직전 발행과 비교하면 약 1%포인트 높다. 실제 기관투자자들에게 1년 6개월물, 2년물의 희망 금리밴드를 각각 5.0~5.6%, 5.1~5.8%로 제시했다. 매달 이자를 받을 수 있는 월 이표채로 구성했는데, 기관 반응이 좋지 않아 리테일 수요를 노리려는 것으로 보인다. 개인투자자 입장에서는 롯데그룹 계열사가 연 5%대 후반의 금리를 지급한다면 충분히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롯데케미칼이 롯데건설 회사채에 신용보증을 선 건 지난 2022년 10월부터다. 당시 부동산PF발 유동성 위기 이후 건설사에 대한 투자심리가 얼어붙으면서 롯데건설은 시중에서 자금을 구하는 게 어려웠다. 이때 롯데케미칼이 롯데건설에 5000억원을 빌려줬고, 유상증자를 통해 876억원을 출자하며 총 6000억원을 지원했다. 이후 2023년 1월 롯데건설은 특수목적법인(SPC) 샤를로트제1·2차를 통해 메리츠금융그룹, 롯데그룹으로부터 1조5000억원을 수혈받았다. 이후 숨통이 트인 롯데건설은 신용보증기금의 P-CBO나 사모채, 모회사 롯데케미칼이 보증하는 공모채를 발행해 유동성을 확보했다.

이훈기 롯데케미칼 대표가 4일 오후 진행된 ‘CEO INVESTOR DAY’에서 회사의 전략을 발표하고 있다(롯데케미칼 제공)

◇ 지주사 흔드는 롯데케미칼, 자본 확충·적자 탈출은 언제?

롯데케미칼의 ‘부진’은 자회사들은 물론, 지주사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달 신용평가 3사는 롯데케미칼(AA)의 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바꾼 후 롯데지주(AA-)의 등급 전망도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했다. 만약 롯데케미칼 신용등급이 떨어지게 되면, 지주사는 AA급 방어도 어려워진다.

한국신용평가는 롯데케미칼 신용도 변화 여부가 롯데지주의 신용도를 좌우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지주사 등급 전망이 바뀌면서 롯데건설 외에 롯데캐피탈, 롯데렌탈 등의 등급 전망도 ‘부정적’으로 바뀌었다. 대기업 계열사의 경우 유사시 다른 계열사로부터 지원받을 가능성을 고려해 한 노치(notch) 높은 신용등급을 인정받는데, 롯데케미칼이라는 토대가 흔들리면서 같이 하향 조정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눈에 띄는 실적 개선 요인은 보이지 않는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고유가 기조, 중국발 증설 부담 심화, 전방 수요 침체 등에서 나아질 요소를 찾기 어렵다. 롯데케미칼은 지난 2022년 영업손실 7626억원, 2023년 3477억원, 올해 1분기 1353억원을 기록하며 적자를 지속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증권사 연구원들은 올해 2분기에도 영업손실 481억원을 추정하고 있다. 다만 3분기부터는 흑자 전환을 예상하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사업구조 재편 효과에 기대를 걸고 있다. 범용 석유화학 비중을 줄이고, 정밀화학·동박·수소 등 신규 사업을 육성하는 포트폴리오 전환 전략을 발표한 바 있다.

이달 4일 이훈기 롯데케미칼 대표는 취임 후 처음으로 회사 전략을 발표하며 “석유화학업계 불황 속에서도 성공적인 포트폴리오 변화로 도약하겠다”며 “비효율 자산의 매각, 사업 리스크 관리를 위한 투자유치, 전략적 관점의 사업 철수 계획을 통한 사업구조 개편을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