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범(凡)야권의 압승으로 끝난 가운데 자본시장의 불안감이 커지는 분위기다. ‘여소야대’ 구조를 유지하게 된 거대 야당이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시행을 밀어붙일 것으로 보여서다. 윤석열 정부가 추진 중인 밸류업 프로그램도 동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금리 인하 기대감에 찬물을 뿌리는 고(高)물가 지표마저 발표되면서 한국 증시의 위기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4월 11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관련 입장을 발표하며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 연말에 금투세 회피 매물 쏟아질 듯

1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오후 12시 현재 코스피 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0.37%(10.11포인트) 하락한 2695.05를 기록하고 있다. 같은 시각 코스닥 지수는 0.38%(3.25포인트) 내린 856.08을 나타내고 있다. 두 지수 모두 장 초반에는 1%대 약세를 보이다가 낙폭을 줄이고 있다. 코스피는 2거래일째, 코스닥은 4거래일째 하락세다.

전날 실시된 4·10 총선에서 야권의 압도적인 승리가 금투세 폐지 기대감을 무너뜨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금투세는 주식·채권·펀드·파생상품 등 금융 상품의 수익 합계가 5000만원 이상이면 20%, 3억원을 초과하면 25%의 세율을 적용하는 것이다. 제도 시행은 올해까지 유예다. 여당은 금투세를 아예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이고, 야당은 예정대로 2025년부터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전문가들은 연말에 세금 납부를 피하려는 개인 투자자의 매물 출회가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이웅찬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야당이 선거에서 크게 승리했고, 이미 제정된 법안을 고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으며, 금투세 폐지는 부자 감세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며 “금투세 유예가 연장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했다.

다만 개인 수급이 지속해서 이탈하진 않을 것이란 의견이 나온다. 박소연 신영증권 연구원은 “민주당이 (금투세를 예정대로 시행하는 대신에)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납입 한도를 현재보다 상향하고, 납입 금액을 전액 비과세해 세제 혜택을 주자는 입장이기 때문에 자산별·상품별 득실이 엇갈릴 것”이라고 했다.

일러스트=손민균

◇ 밸류업 동력 약화 불가피… “중장기 방향성은 유효”

1분기 투자 심리 회복의 땔감으로 쓰인 밸류업 추진 동력도 약화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밸류업 효과와 관련해 시장 참여자들이 주목해온 배당소득 분리과세나 자사주 소각 시 법인세 감면 모두 국회 합의가 필요한 사안이어서다. 박소연 연구원은 “총선 패배로 인적 쇄신 필요성이 제기된다면 그간 밸류업 정책을 이끌었던 금융당국에도 변화가 있을 수 있다”고 했다.

물론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해소라는 대의에는 여야 모두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만큼 밸류업 정책의 중장기 방향성은 유효하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동학개미운동을 기점으로 유권자 내 주식 투자자 비중이 늘어난 만큼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도 초당파적으로 진행될 것”이라며 “20대 이상 국내 유권자 중 개인 투자자 비중은 2019년 말 14%에서 작년 말 30%로 늘었다”고 했다.

김영환 NH투자증권 연구원도 “정부 정책 지속성에 대한 단기 불확실성은 커졌지만, 주식시장 제도 개선과 관련해서는 양당 간 합의가 이뤄질 수 있는 부분이 꽤 존재한다”며 “민주당은 총선 공약으로 이사의 충실의무 조항 내 ‘주주의 비례적 이익’ 추가를 포함하는 상법 개정안을 제시했고, 인수합병(M&A)·물적분할 시 소액주주 차별 시정과 공적기금 운용 시 주주환원 정책에 대한 높은 가중치 부여 등도 공약했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주유소에 유가 정보가 표시돼 있다. / 연합뉴스

◇ 하루 만에 56.1→15.7% 뚝 떨어진 6월 금리 인하 기대감

이런 시점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금리 인하 기대감마저 후퇴하고 있다. 미국에서 연일 고물가 기조를 보여주는 경제 지표가 전해지고 있어서다. 외풍에 취약한 한국 증시로서는 반갑지 않은 소식이다. 10일(현지시각) 미 노동부는 3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 동월 대비 3.5% 상승했다고 발표했다. 시장 예상치(3.4%)보다 0.1%포인트(p) 높은 기록이자 작년 9월(3.7%) 이후 6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국제유가 오름세에 에너지 기여도가 -0.13%p에서 0.15%p로 13개월 만에 플러스(+) 전환한 점이 눈에 띈다. 미 시카고상품거래소 페드워치(CME Fedwatch)의 6월 금리 인하 확률은 4월 9일 56.1%에서 10일 15.7%까지 후퇴했다. 반면 9월 금리 인하 확률은 같은 기간 33.7%에서 45.2%로 올라갔다. 김현성 상상인증권 연구원은 “공급 측 인플레이션이 거세지고 있다는 점이 금리 인하 불확실성을 높일 전망”이라고 했다.

여소야대 총선 결과에 끈적한 물가 흐름까지 겹치자 증권가에서는 당분간 증시가 높은 변동성을 보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송주연 다올투자증권 연구원은 “주거비가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가운데 주거비를 제외한 서비스 물가도 가파르게 상승 중”이라며 “증시 이익 개선이 추가로 확인되지 않을 경우 현재 지수 레벨이 상당히 부담스러워질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