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000660)가 미국 주식예탁증서(ADR·American Depositary Receipt) 발행으로 조달한 265억달러(약 40조원)가 14일부터 국내로 유입될 예정인 가운데, 은행권이 자금 운용 방안을 놓고 고심하고 있다. 대규모 달러가 한꺼번에 들어오는 만큼 외환시장뿐 아니라 은행권도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SK하이닉스는 ADR 발행으로 조달한 달러를 국내 은행 계좌로 순차적으로 들여올 예정이다. SK하이닉스는 외국환 거래은행 여러 곳에 계좌를 분산 개설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특정 은행에 자금이 집중되는 것을 막고 향후 환전과 자금 집행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9일(현지 시각) 뉴욕 맨해튼의 '270 파크 애비뉴' 건물 꼭대기에 SK하이닉스의 나스닥 시장 입성을 축하하는 태극기 조명이 켜져 있다. /뉴스1

이번 자금 유입 규모는 코로나19 당시 한·미 통화 스와프를 통해 국내에 공급된 달러 규모(약 199억달러)를 웃도는 수준이다. 당시에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와 통화스와프를 통해 국내 시장에 달러 유동성이 공급됐지만, 이번처럼 민간 기업의 자금 조달만으로 265억달러가 유입되는 사례는 매우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대규모 외화예금 유입은 은행에 외환거래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운용 부담도 안긴다. 은행은 고객으로부터 조달한 달러 예금을 기업에 대출하거나 채권 등에 투자해 수익을 낸다. 그러나 단기간에 수십억 달러 규모의 외화가 한꺼번에 들어오면 이를 모두 소화하기 쉽지 않다. 운용처를 확보하지 못한 자금에도 예금 이자를 지급해야 하는 만큼 수익성이 떨어질 수 있다.

은행권 관계자는 "은행은 기본적으로 자금을 조달해 이를 운용하면서 수익을 내는 구조"라며 "너무 큰 규모의 자금이 한 번에 유입되면 이를 모두 소화하지 못해 이자 비용이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가 있다"고 말했다.

자산과 부채의 만기를 맞추는 자산·부채관리(ALM) 부담도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자금은 장기간 은행에 머무는 성격이 아니다. SK하이닉스는 ADR 발행으로 조달한 약 40조원을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와 청주 어드밴스드 패키징 공장 건설, EUV(극자외선) 노광 장비 등 첨단 설비 투자에 순차적으로 투입할 계획이다. 은행 입장에서는 언제 인출될지 모르는 거액의 외화 예금을 장기로 운용하기 어려운 문제가 생긴다.

달러 예금이 향후 원화로 환전되는 과정도 은행권에는 또 다른 부담이다. 외환시장에서는 ADR 자금을 하루 약 10억달러씩 나눠 환전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시장에서는 현재도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005930)가 하루 약 8억달러 규모의 네고 물량(달러로 받은 수출 대금을 시장에 파는 것)을 내놓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여기에 ADR 자금까지 순차적으로 환전되면 이를 받아주는 은행의 외화 자금 운용 부담이 한층 커질 수 있다.

또 다른 은행권 관계자는 "265억달러를 한꺼번에 환전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만큼 여러 거래 은행을 통해 나눠 환전하는 방식이 유력하다"며 "자금 유입과 집행이 순차적으로 이뤄지는 만큼 은행들도 외화 운용 계획을 이에 맞춰 조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