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들어 5대 은행의 달러 예금 잔액이 23억7000만달러(3조4937억원)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개인 달러 예금 증가세가 주춤한 사이 기업들의 달러 보유가 급증했다. 기업의 대기성 달러 예금 증가는 원화 가치 하락을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은행은 외환 당국의 경고에도 밀려오는 달러 예금에 난감한 모습이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의 달러 예금 잔액은 지난 9일 기준 661억1000만달러(약 100조9433억원)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달 말(637억4000만달러) 대비 23억7000만달러 증가한 수치다. 6영업일 만에 3조5000억원가량 늘어난 것이다.

그래픽=구글 제미나이

달러 예금은 원화를 달러로 환전해 적립해 뒀다가 출금하거나 만기가 됐을 때 원화로 돌려받는 상품이다. 은행권 달러 예금 증가는 기업들이 견인했다. 최근 삼성전자(005930)SK하이닉스(000660) 반도체 기업을 중심으로 수출이 증가하면서 벌어들이는 달러가 늘었다. 반도체 기업은 해외 수출이 많아 매출의 대부분이 달러로 발생한다. SK하이닉스는 전체 매출의 90% 이상이 달러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기업들이 달러 대비 원화 환율 상승을 예상하고 보유 달러를 원화로 바꾸지 않고 예금으로 보유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달러 예금 금리는 연 3.15~3.45% 수준이다. 달러 예금은 수시 입출금식부터 만기 1년 등 가입 기간이 다양한데, 최근 시장 금리가 오르면서 단기 상품 금리까지 뛰고 있다. 신한은행의 1개월 미만 달러 예금 금리는 전월 동기 대비 0.58%포인트(P) 오르기도 했다.

불어나는 달러 예금에 은행도 난감한 상황이다. 달러 예금은 상대적으로 금리가 낮은 단기 상품이 많아 은행 입장에선 저렴하게 외화를 조달하는 수단이 된다. 은행은 외화 유동성 위기 상황을 대비해 자산의 일정 부분을 외화로 보유해야 한다.

다만 정부가 은행권 달러 예금 증가에 경고 메시지를 계속 보내고 있다는 점이 부담이다. 외환 당국은 각 은행권 담당 임원을 여러 차례 불러 환율에 대한 강력한 의견을 전달했다고 한다. 은행들은 당분간 시장 금리가 오르더라도 이를 달러 예금 금리에 반영하지 않을 계획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고객이 달러를 맡기겠다는데 은행이 막을 수는 없다. 다만 달러 예금 금리 인상이나 유치 이벤트 등 환율을 자극할 수 있는 모든 이벤트는 자제한다는 방침"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