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당국이 과잉 진료를 억제하고 보험금 누수를 막기 위해 '5세대 실손보험'을 도입했지만, 정작 보험업계는 판매에 소극적인 분위기다. 일부 보험사는 출시를 하지 않았고, 상품을 출시한 보험사도 판매 채널을 제한하는 등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10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현재 5세대 실손보험을 출시한 곳은 생명보험사 7곳과 손해보험사 9곳 등 총 16개사다. 다음 달 출시 예정인 신한EZ손보를 포함하면 총 17개사다. 전체 보험사 52곳(생보사 22곳, 손보사 30곳)의 40%도 채 되지 않는다.
상품을 내놓은 보험사들도 적극적인 영업에 나서지 않고 있다. 삼성생명(032830) 등 일부 보험사는 인가 이후에도 전속 설계사를 중심으로만 판매하고, 법인보험대리점(GA·General Agency)을 통한 영업은 제한하고 있다. 온라인 판매 채널도 부족하다. 금융 당국이 안내한 온라인 플랫폼 '보험다모아'에서도 실제 가입이 가능한 보험사는 8곳(한화·동양·농협손보·DB생명·KB손보·삼성화재(000810)·메리츠화재·롯데손해보험(000400))에 불과하다.
5세대 실손보험은 비급여 보장을 축소하고 필수·중증 치료를 중심으로 재편한 상품이다. 보험료는 1~4세대보다 40~50% 저렴한 반면, 보험사 손해율 악화의 주범으로 꼽히는 도수 치료나 체외 충격파 치료는 보장 항목에서 제외된다.
금융 당국은 5세대 실손보험이 도입되면 보험사의 손해율이 개선될 것으로 보고 있으나 보험사는 5세대 실손보험을 판매하면 계약서비스마진(CSM·Contractual Service Margin)이 악화할 것을 우려한다. CSM은 보험사가 계약을 통해 미래에 벌어들일 것으로 예상되는 이익을 현재 가치로 환산한 지표다. 보험료 수입이 늘고 보험금 지급이 줄어들수록 개선된다.
보험사는 4세대 가입자가 5세대로 갈아타면 CSM이 악화될 것으로 본다. 보험료를 꾸준히 납부하면서 병원을 잘 방문하지 않는 가입자들이 5세대로 이동할 가능성이 큰데, 이 경우 보험료 수입은 감소하는 반면 보험금 지급은 큰 변동이 없어 수익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1~2세대 가입자들의 전환 역시 부담 요인이다. 금융 당국은 이들이 별도 심사 없이 동일 보험사 내에서 5세대 상품으로 갈아탈 수 있도록 허용할 방침이다. 하지만 이 조치로 보험료가 기존 대비 크게 낮아지면 보험사의 수입 감소는 불가피하다. 업계에서는 보험료가 50% 깎일 경우 연간 순익이 최소 10% 이상 감소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상품 구조를 개선하더라도 손해율 악화 가능성은 남아 있다. 시간이 지나면 가입자들이 실손 보험의 허점을 찾아 이용 패턴을 바꿔 과잉 진료가 다시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세대별 손해율을 보면 1세대 113.2%, 2세대 112.6%, 3세대 138.8%, 4세대 147.9% 등으로 최근에 출시된 상품일수록 상황이 악화됐다.
이 때문에 많은 보험사가 시장 선점보다 손익 추이를 지켜보는 관망 전략을 택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5세대 실손보험에는 손해율 악화의 주범이었던 도수 치료나 체외 충격파 보장이 제외돼 보험사 수익 측면이 개선될 여지가 있지만, 당장 보험료 수입 악화 등 부작용이 있을 수 있어 아직은 지켜보는 분위기"라면서 "향후 몇 년간 이런 흐름이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