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정책적 결단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글로벌 흐름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빠른 정책 마련이 중요합니다. 이 타이밍을 놓치면 한국 금융기관이 글로벌 경쟁에서 불리해질 수 있습니다."
김규진 타이거리서치 대표는 한국의 가상자산 산업 현주소를 이같이 진단했다. 김 대표는 "스테이블코인이 금융 인프라의 중심축이 될 것"이라며 "한국의 기회는 활발한 가상자산 시장, 준비된 기관, 진화하는 규제의 삼박자에 있다"고 했다.
2022년에 설립된 타이거리서치는 아시아 시장을 대표하는 글로벌 블록체인 리서치 및 자문회사다. 한국, 일본,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6개국의 언어로 보고서를 발행하고, 전 세계 150개국 10만명 이상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다.
삼성, 소니, 맥킨지, JP모건 등 2만개 이상의 기관에게 구독형 리서치와 자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김 대표는 다른 리서치 회사와의 차별점으로 규제를 준수하고, 벤처캐피털(Venture Capital)과 이해관계가 없는 독립 리서치라는 점을 강조했다.
김 대표는 아주대 경영학부를 졸업한 후 야후코리아, 마이크로소프트코리아를 거쳐 아마존웹서비스코리아 이사, 아마존웹서비스재팬 상무, 허브인베스트먼트매니지먼트 이사 등을 역임했다. 한양대 소프트웨어대학 산학협력교수도 겸직 중이다. 다음은 김 대표와의 일문일답.
─블록체인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인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인 이유는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하는 주체가 개인 투자자가 아니라 국가와 글로벌 금융기관이기 때문이다. 블록체인은 금융 인프라의 혁신으로 방향을 잡았다. 테더(Tether)와 서클(Circle) 같은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를 중심으로 24시간 운영, 국경 없는 결제, 투명한 거래 기록을 살린 금융 시스템이 만들어지고 있다. 투자 자산으로서도 일부 자산가의 포트폴리오에서 가상 자산이 3~5%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가상자산은 더 이상 투자를 고민하는 자산이 아니다. '어떻게 운용할까'를 고민하는 자산으로 성격이 바뀌고 있다."
─금융기관이 블록체인을 택한 이유는.
"비용 절감이란 이점이 있다. 현재 국제 송금은 여러 중개 은행을 거치며 비싼 수수료와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블록체인 기반 결제는 이 과정을 획기적으로 줄여준다. 두 번째로는 새로운 수익원이다. 금융기관 입장에서 블록체인은 기존에 접근 불가능했던 부동산, 채권, 사모펀드 등 실물 자산(RWA·Real World Asset) 토큰화를 가능하게 한다. 더 넓은 투자자층에게 판매할 수 있다는 것은 곧 새로운 매출이 생기는 것이다.
규제 환경도 바뀌었다. 미국에서 스테이블코인 법안이 통과되고 증권거래위원회(SEC·Securities and Exchange Commission)가 가상자산에 친화적인 기조로 전환하면서, 기관들이 합법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블록체인의 인프라 개발과 투자 자산으로서 양면에 대한 의미는 무엇인가.
"블록체인에는 두 가지 기능이 있다. 하나는 비트코인·이더리움 같은 투자 자산으로서의 가치, 다른 하나는 스테이블코인·토큰화 같은 금융 인프라로서의 가치다. 투자 자산 측면에서는 비트코인 상장지수펀드(ETF·Exchange Traded Fund)를 통해 기관 자금이 본격 유입되면서 디지털 금으로서의 지위가 공고해지고 있다.
인프라 측면에서는 스테이블코인이 핵심이다. 테더와 서클의 스테이블코인은 이미 연간 수조 달러의 거래를 처리하고 있고, 기존 금융의 결제·송금·무역 금융 인프라를 대체하기 시작했다. 중요한 것은 이 두 가지가 서로를 강화한다는 점이다. 투자 자산으로서의 관심이 인프라 발전에 자금을 공급하고, 인프라가 발전하면 더 많은 기관 자금이 투자 자산으로 유입된다."
─가까운 미래에 이 산업의 변화를 전망한다면.
"실제 가치를 증명하는 프로젝트는 더욱 공고해지고, 실체 없는 프로젝트는 도태될 것이다. 스테이블코인이 금융 인프라의 중심축이 될 것이다. 미국의 스테이블코인 법안 통과를 시작으로, 각국이 자국 통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규제를 만들 것이고, 이것이 기존 결제·송금 산업의 구조적 변화를 이끌 것이다. 이제는 기관들이 들어오면서 산업이 성숙해지는 과정으로 바뀌고 있다."
─한국은 이러한 변화 속에서 어떤 기회가 있나.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활발한 가상자산 시장을 보유하고 있다. 국민의 32%가 가상자산 계좌를 보유하고 있고, 하루 거래량이 최대 약 14조원에 달한다. 이 기반 위에 기관이 얹어지면 세계적으로 유례 없는 시장이 될 수 있다.
다만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정책적 결단이 필요하다. 글로벌 흐름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빠른 정책 마련이 급선무다. 이 타이밍을 놓치면 한국 금융기관이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 결국 한국의 기회는 활발한 가상자산 시장, 준비된 기관, 진화하는 규제의 삼박자에 있다. 이 조합은 아시아에서도 글로벌에서도 찾기 어려운 사례로, 한국이 보유한 강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