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7년 8월 어느 날, 30대 직장인 A씨는 출근길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의 증권 앱을 열었다. 주당 수십만원을 호가하는 '황제주' 사이로 눈에 들어온 것은 동네 인근에 있는 '서울 남산 N서울타워'. 남산타워 자산을 기반으로 발행된 토큰증권(STO)이다. 최소 투자금은 3만원. 다섯 주를 샀다. 잠들기 직전엔 국내 바이오 기업이 보유한 신약 특허와 유명 작가 C씨의 유화 작품을 기반으로 발행된 토큰증권에도 소액 투자했다. 2027년 이후 대한민국 자본시장에서 일상이 될 모습이다. 지난 1월 주식·사채 등의 전자등록에 관한 법률(전자증권법)과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3년여 동안 미뤄 온 토큰증권 제도가 공식화했다.

'샌드박스'라는 한시적 규제 유예 틀에서 금융위원회가 지정한 몇몇 스타트업만 발행했던 토큰증권이 요건을 갖춘 기업이나 증권사가 발행하고 주식처럼 거래소를 통해 사고파는 정식 금융 투자 상품이 되는 것이다.

토큰증권은 부동산·미술품 등 실물 자산이나, 주식·채권 같은 금융자산을 지분으로 쪼개 분산 원장(블록체인)으로 관리하는 증권이다. 1956년부터 사용하던 종이 증권을 2019년 전자 증권으로 바꾸었듯, 이번에는 증권 정보를 기재·관리하는 장부를 중앙 서버에서 블록체인으로 옮겨간 개념이다. 2023년 '토큰증권'을 저술한 이건호 전 KB국민은행장은 "우리 자본시장은 수백 년간 주식과 채권이라는 정형화된 틀에 갇혀 있었다"며 "토큰증권의 진정한 가치는 부동산·미술품· 저작권 등 그간 소외됐던 비정형 자산을 제도권으로 끌어들였다는 데 있다"고 말했다.

토큰증권 시장이 빅뱅할 것이라는 전망도 이 같은 기대에 근거한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국내 토큰증권 시장이 2024년 34조원에서 2030년 369조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전 세계 토큰증권 시장은 2033년 18조9000억달러(약 2경7422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다. 국회 문턱을 넘은 관련 법 개정안은 분산 원장 기반 증권 계좌 관리 인프라를 새로 도입하고, 투자자 보호 제도를 정비한 뒤 2027년 1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모든 자산 365일 24시간 실시간 거래

이번 법제화는 토큰증권에 기존 전자 증권과 동등한 권리를 부여한 것이다. 토큰증권은 전통적인 증권 거래보다 효율성이 높다. 증권거래소는 영업시간 내 거래만 가능하다. 보통 계약 체결 후 결제까지 이틀이 걸린다. 하지만 토큰증권은 365일 24시간 거래, 즉시 결제가 가능하다. 억 단위의 고액 자산도 토큰(권리)으로 쉽게 나눌 수 있어 1만원 단위, 그 이하 단위 거래도 가능하다. 수익 창출이 가능한 모든 자산을 유동화하는 데 유용하다. 토큰증권 법제화는 이런 '자산 민주화'와 '발행 시장 다양화'를 가져왔다는 데 의미가 있다.

토큰증권은 블록체인에 기반을 두기 때문에 위·변조가 어렵다. 또 국내 투자자가 미국의 부동산 토큰증권을 직접 사는 것이 국내 주식 사는 것만큼 쉬워진다.

2027년 주식 앱 투자 대상 확 늘어난다

토큰증권 법제화 전에도 부동산과 예술품·저작권 지분을 나눠 갖는 조각 투자를 할 수 있었다. 샌드박스를 통해 한국거래소는 2년간 장내 거래소에서 토큰증권을 거래할 수 있었지만, 실제 유통은 전무했다. 이번 법제화를 통해 장외거래중개업 인가를 받은 중개업자가 토큰증권 장외거래소를 운영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예비 인가 과정에서 장외거래소를 운영하던 루센트블록이 탈락했고, 이에 반발하면서 본인가 심의가 미뤄지고 있다. 한국핀테크산업협회는 "유통 플랫폼 인가는 토큰증권 생태계의 출발점인데, 인가결정이 장기화하면 업계 전반이 위축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만약 내년 토큰증권 발행과 거래가 시작된다면, 주식·상장지수펀드(ETF)·채권 상품 중심이던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에 부동산, 저작권, 비상장 기업 지분, 인프라 프로젝트(태양광발전 등) 수익권이 함께 등장할 수 있게 된다. 많은 전문가는 부동산을 유망 투자 자산으로 꼽는다. 서울 도심 오피스 빌딩, 물류센터, 호텔이 토큰증권으로 발행돼 수만 명이 지분을 나눠 갖고, 매각 차익이나 임대료 수익을 배당받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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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산 원장 : 하나의 중앙 장부가 아니라, 여러 참여자가 동일한 거래 장부를 나눠 갖고 동시에 검증·기록하는 기술. 토큰증권은 블록체인을 활용해 이를 구현했다.

실물 자산 넘어 기존 금융 인프라 혁신

토큰증권 시장은 해외에서도 기존 금융 인프라를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뉴욕증권거래소(NYSE)는 1월 19일(현지시각) 24시간 토큰증권 거래와 즉시 결제를 지원하는 인프라를 구축하겠다고 선언했다. 금융 업계는 "전통적인 대기업 중심의 뉴욕증권거래소가 200년간의 관행을 깨고 이런 결정을 한 것은 토큰화가 더 이상 대안 금융이 아닌 차세대 자본시장의 표준으로 격상했음을 상징한다" 고 평가한다. 미국 나스닥, 런던증권거래소 등 거래소는 이미 블록체인 기반 시스템 구축에 나서며 기술 표준 선점 경쟁을 시작했다. 과거에는 부동산 등 대체 자산에 국한했지만, 이제는 상장 주식, ETF·머니마켓펀드(MMF) 등 주류 금융 상품 토큰화로 시장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증권사의 수익 구조도 대변혁에 직면했다. 토큰증권은 특정 거래소에 독점적으로 유통되는 경우가 많아, 매력적인 투자 상품을 발굴하는 '소싱 능력'이 증권사의 핵심 경쟁력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신범준 바이셀스탠다드 대표는 "앞으로 진정한 승부처는 IP·기업금융·콘텐츠처럼 유동화가 어려웠던 비정형 자산을 얼마나 빨리 증권화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베른하르트 크롬펠르너 BCG 파트너는 "계약 구조가 디지털 발행에 적합하고 한국 대형 은행과 증권사가 빠르게 토큰화를 추진할 수 있는 채권이 먼저 활성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다.

코스닥 부양책으로도 부상

조각 투자하기 위한 수단에서 금융 혁신과 기업 자금 조달 수단으로 시야를 넓히고 있다. 당장 계좌 관리 기관 요건을 갖추면 내년부터 기초 자산 소유자가 주식 발행과는 달리 증권사를 통하지 않고도 직접 토큰증권을 발행하고 관리할 수 있다. 또 전통 벤처투자조합보다 더 넓은 투자자층에 접근할 수 있어 초기 스타트업의 자금줄이 될 수도 있다. 스타트업이 토큰증권으로 초기 자금을 확보한 뒤 코스닥 상장에 나서거나 기존 코스닥 상장사가 보유 부동산이나 특허 등 자산을 토큰증권으로 발행해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코스피5000특별위원회는 1월 23일 이재명 대통령과 오찬에서 토큰증권 등 디지털 자산을 활용한 코스닥 시장 활성화 전략을 공식 제안했다. 토큰증권 법제화와 함께 원화 스테이블코인(stablecoins·법화나 자산과 교환 비율을 고정한 암호화폐)을 제도권으로 편입하는 디지털자산기본법 입법이 추진되고 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토큰증권의 결제 수단이 되는 것이다.

토큰증권이 안착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부동산·미술품 같은 비정형 자산의 발행인과 투자자 사이에 정보 불균형이 발생해 중고차 시장 같은 레몬마켓(정보비대칭 시장)이 될 리스크가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025년 10월 보고서에서 "실물 자산의 본질 가치와 증권의 시장가치가 괴리되면 투자자 피해가 발생해 토큰증권 시장 신뢰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국내 토큰증권이 허가된 기관만 거래 장부를 볼 수 있는 프라이빗 블록체인 기반인 점도 한계로 꼽힌다. 미국의 실물자산기반 토큰(RWA)처럼 이더리움 등 퍼블릭 블록체인에서 운영해야 글로벌 투자자의 접근성을 높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