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당국이 금융지주사 회장의 '셀프 연임'을 견제하기 위해 이사회의 독립성을 강화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지만, 금융권에선 이사회의 독립성 강화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과거 KB금융(105560)지주 사례처럼 회장과 사외이사진이 갈등을 빚으면 인수합병(M&A)과 같은 굵직한 경영 현안이 좌초되기도 한다.

23일 금융 당국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조만간 금융사 지배구조 개선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하고 이사회 독립성 제고 방안 등을 마련하기로 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9일 금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금융지주사 지배구조와 관련해 "가만 놔두니 부패한 이너서클이 생겨 자기 멋대로 소수가 돌아가면서 계속 지배권을 행사한다"고 비판한 바 있다. 금감원은 금융지주 회장의 셀프 연임 문제의 해결책으로 이사회의 경영진 견제 기능 강화를 꼽고 있다.

어윤대(왼쪽) 전 KB금융지주 회장과 이경재 전 KB금융 이사회 의장./조선DB

금융권에선 이사회의 독립성을 강화하면 이사회 자체가 '옥상옥(屋上屋·지붕 위의 지붕)'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ING생명(현 신한라이프) 인수를 놓고 어윤대 전 KB금융 회장과 이사진이 갈등을 벌였던 사례가 대표적이다.

어 전 회장은 2010년 취임해 2011년 1월부터 ING생명 한국 법인 인수를 추진했다. KB금융은 2012년 9월 ING생명 인수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됐으나, 사외이사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그해 12월 18일 KB금융 이사회는 ING 인수 건을 표결에 부쳐 부결했다.

사외이사 9명 중 5명은 '반대' 의견을, 2명은 사실상 반대인 '보류' 의견을 냈다. 사외이사진은 ING생명의 높은 인수가격과 포화 상태인 생명보험 시장 등을 문제 삼았다. ING생명 반대는 이경재 당시 이사회 의장이 주도했다.

사외이사들은 이사회 한 달 전쯤 중국 베이징에서 어 전 회장이 일부 사외이사와 가진 술자리에서 소동을 벌인 것을 불쾌하게 생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어 전 회장은 ING생명 인수에 반대하던 사외이사들에 대한 감정이 폭발해 고성을 지르고 술잔을 던지기도 했다. 이 술자리 파문이 외부에 알려지면서 당사자들은 금융 당국의 조사를 받기도 했다.

이듬해 3월엔 어 전 회장의 최측근이었던 박동창 당시 부사장을 보직 해임하는 일도 있었다. 당시 KB금융 주주총회를 앞두고 미국의 주총 안건 분석 전문 회사인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s)는 "ING생명 한국법인 인수를 무산시킨 이경재 사외이사 등의 선임을 반대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작성했는데, 보고서가 작성되기 전 박 전 부사장이 싱가포르에서 ISS 관계자들과 접촉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박 부사장은 어 전 회장의 측근으로 알려졌는데, 사외이사들의 사퇴 압박이 이어지자 어 전 회장은 박 전 부사장의 보직 해임을 결정했다. 어 전 회장은 박 전 부사장의 보직 해임을 결정하는 긴급 이사회 내내 침묵을 지킨 것으로 전해진다.

KB금융의 ING생명 인수는 무산됐고 신한지주(055550)는 2018년에 KB금융이 제시한 가격보다 비싼 2조3000억원에 ING생명을 인수했다. ING생명은 신한생명과 합병해 현재 신한라이프가 됐다. 신한라이프는 현재 연간 5000억~6000억원의 순이익을 기록 중이다.

이경재 당시 의장은 어 전 회장 퇴임 후 차기 임영록 전 회장 선임에도 관여했다. 당시 KB금융 사장이었던 임 전 회장은 재정경제부 차관 출신으로 이 의장이 행정고시 후배였다. 이 전 의장을 비롯한 사외이사는 임 전 회장을 만장일치로 추대해 회장이 됐으나 2014년 국민은행 주전산기 교체 문제를 놓고 이건호 당시 국민은행장과 갈등을 빚고 1년여 만에 물러났다.

이 전 의장은 임 전 회장과 이 전 행장이 사퇴하고 2014년 말 윤종규 신임 회장이 취임할 때까지 의장 자리를 지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