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이 과징금의 위험가중자산(RWA·Risk-Weighted Assets) 반영 시점 및 기간을 일부 완화해 줄 것을 금융 당국에 건의하기로 했다. 현재는 규제 당국이 과징금을 부과하면 해당 금액에 600%를 더한 자본금을 10년간 RWA에 반영해야 하는데, 과도한 규제라는 것이 은행권의 주장이다. 예를 들어 과징금 1조원을 받으면 7조원을 RWA에 반영해야 한다. RWA가 많으면 은행의 대출 한도가 줄어들 수 있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은행권은 금융 당국이 신설할 '금융업권 규제 합리화 태스크포스(TF)'에 RWA 규제 완화를 요청할 계획이다. 규제 합리화 TF는 정부가 운영 중인 '생산적 금융 대전환 회의'의 하위 TF로 구성될 전망이다. 정부는 TF를 통해 생산적 금융 대전환을 위한 제도 개선 과제를 발굴한다.
은행권은 확정되지 않은 과징금을 곧바로 RWA에 반영하도록 하는 현행 규제는 문제라고 주장한다. 과징금은 민사·행정 소송으로 경감되거나 취소되는 경우도 있는데, RWA에 장기간 반영하면 생산적 금융 여력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RWA는 금융의 대출, 주식, 채권 등 보유 자산의 위험도를 반영해 계산한 지표다. RWA 부담이 커지면 은행의 건전성 비율이 낮아지기 때문에 대출 여력이 줄어든다. 글로벌 금융 규제 체계인 '바젤 규제'는 은행에 부과된 과징금을 신용·운영 리스크로 분류한다.
은행권은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불완전 판매, 공정거래위원회의 주택 담보인정비율(LTV) 담합 관련 등으로 내년에 과징금 부담이 큰 상황이다.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말 국민·신한·하나·농협·제일은행 등 5개 은행에 총 2조원 규모의 과징금·과태료 제재안을 사전 통보했다. 이를 기준으로 하면 5개 은행은 10년간 RWA에 14조원을 반영해야 한다. 은행권은 공정위의 LTV 담합 의혹 과징금도 최소 수천억 원대에 이를 것으로 예상한다.
은행권은 과징금 RWA 반영 시점을 규제 당국의 부과 시점이 아닌 법원 1심 확정 등으로 늦추거나 소송 전엔 일부만 반영하기를 원하고 있다. 과징금의 RWA 반영 기간을 현행 10년에서 5년으로 줄이는 안도 건의할 예정이다.
금융 당국은 RWA 규제가 국제 기준에 따라 마련된 것이라 신중한 입장이다. 국제 기준을 느슨하게 반영하면 향후 바젤 기준 이행 평가와 대외 신인도에 악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과징금 확정 위험 시점을 언제로 볼지는 논의할 여지가 있다"며 "과징금 확정 전까지 RWA에 반영하지 않는 방안 등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