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보이스피싱 피해액 일부 또는 전부를 금융사가 배상하도록 하는 '무과실 배상 책임제' 법제화를 놓고 업계와 막판 의견을 조율하고 있다. 정부는 보이스피싱 방지 의무를 다한 금융사의 배상 면책 조항을 폭넓게 인정하고 허위 배상 신청 시 형사처벌하는 내용 등을 검토하고 있다. 다만 정치권 일각에서 무과실 배상 책임제에 이견이 있어 법 통과까지는 난항이 예상된다.
1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 당국과 금융사들은 태스크포스(TF)를 통해 보이스피싱 발생 후 금융사의 보상 범위와 면책 조항 등을 논의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조율된 내용을 토대로 관련 법 개정안을 연내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면책 범위는 금융사가 보이스피싱 방지 의무를 다했을 때 배상 책임을 지지 않거나 일부만 지는 내용이다. 예를 들어 금융사가 보이스피싱 가능성을 발견하고 송금하지 말 것을 권고했는데, 고객이 이를 무시하고 송금한 경우 배상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있다. 배상 책임 사실 관계 확인을 위해 금융사가 경찰의 수사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는 방안도 논의 중이다.
금융 당국은 보이스피싱 피해액의 최대 100%까지 배상하는 방안을 추진하려고 했으나, 은행권이 반발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은행들은 법률 검토를 통해 100% 배상은 민사법상 '과실책임주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입장이다. 과실책임주의는 고의 또는 과실에 따른 가해 행위에 대해서만 손해배상 책임을 지게 하는 원칙이다.
금융사만 보이스피싱 범죄 배상 책임을 지는 것이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보이스피싱 범죄 책임이 통신사와 수사기관 등 다른 곳에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금융사에 과도한 배상 책임을 물면 오히려 안심하고 범죄 집단에 돈을 송금해 관련 범죄가 늘어나는 역효과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TF는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지 않는 범위에서 배상이 이뤄질 수 있는 방안을 고심 중이다. 허위 배상을 신청하는 경우 형사처벌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무과실 배상 책임제를 담은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을지는 미지수다. 국민의힘에선 "고의나 과실이 없는 금융사에 배상 책임을 지우는 것은 과실책임주의 원칙과 충돌할 소지가 있다"며 위법성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민의힘은 금융위가 개정안을 발의하면 관련 내용을 면밀히 살펴볼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