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금융감독원 조직 분리와 공공기관 지정 위기를 넘긴 이후 조직 쇄신보단 권한 강화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우려가 금융권에서 나온다. 이 원장의 구상대로라면 금감원은 경찰과 검찰, 재판부 역할까지 할 수 있게 된다. 금융 업계에선 민간기구인 금감원에 과도한 행정권을 부여하는 것이 현행법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 원장은 최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편면적 구속력과 인지수사권, 강제조사권 도입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원장이 제도 도입 필요성을 언급한 만큼 논의가 본격화할 조짐이다. 일부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제도 도입을 지원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문제는 이 제도를 모두 도입할 경우 금감원은 과도한 행정권을 쥐게 된다는 점이다.
편면적 구속력은 금융 당국의 분쟁 조정 결과를 금융사들이 무조건 수용하는 제도다. 현재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가 결정한 분쟁조정안은 금융사와 소비자 양측이 동의해야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 '권고 사안'이다. 어느 한쪽이 거부할 경우 권고는 효력을 잃는다.
금감원은 분쟁조정안 실효성을 제고하고 금융 소비자 보호를 강화하기 위해 편면적 구속력을 도입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편면적 구속력이 도입되면 민관기구인 금감원이 검사와 판사 등 사법부 역할을 모두 맡게 된다. 이를 거부할 수 없는 금융사는 재판받을 권리를 빼앗기는 문제도 있다. 이에 제도 도입을 우려하는 금융권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금감원 자본시장특별사법경찰(특사경)의 인지수사권과 강제수사권도 과도한 권한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감원 특사경은 주가조작 등 불공정거래 조사 업무를 하고 있지만, 검찰 지휘를 받는 조직이다. 범죄 혐의나 단서를 자체적으로 포착해 수사에 착수할 수 있는 인지수사권한은 없다.
강제조사권 역시 금감원의 오랜 요구 사항 중 하나다. 금감원은 금융위원회, 검찰과 달리 현장조사나 압수수색 등 강제조사 권한이 없다. 자금 추척·자료 분석·문답 등 임의조사만 가능하다.
이 원장은 불공정거래 사건이 갈수록 치밀해지는 만큼 신속한 조사를 위해선 특사경 권한 강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 원장은 최근 간부회의에서도 인지수사권 도입 의지를 드러내고 후속 작업 준비를 주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위는 그동안 민간인 신분인 금감원에 인지수사권과 강제조사권을 부여하기 어렵다며 반대했다. 금융위는 금감원에 인지수사권을 부여하는 것은 제도 설계 취지와 맞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금감원의 수사 권한이 비대해지면 전방위적인 수사로 자본시장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강제조사권의 경우 민간인이 국민의 신체를 구속할 권한을 주는 것이 행정법적으로 맞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다. 금융위는 강제조사권이 있는 금융위 자본시장조사단과 공동 조사를 하면 된다는 입장이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금융위와 금감원이 공동조사를 통해 강제조사권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 이미 여러 사례가 있다"고 했다.
이재명 정부는 민간기구의 권한이 과도하다는 이유로 금감원을 공공기관으로 지정하고 소비자보호 조직을 분리하는 금융감독 체계 개편을 추진했었다. 개편안은 무산됐지만, 이 원장은 이를 계기로 금융소비자 보호 강화를 위한 조직 쇄신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여러 차례 밝혔다. 금융권에선 '쇄신을 통해 권한을 덜어내야 할 금감원이 권한 강화에 집중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