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불법 사금융·불법 추심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채무자 대리인' 제도 사업의 내년도 예산을 증액했다. 연 수천% 수준의 이자를 요구하는 반사회적 계약과 협박·성 착취 등 불법 추심이 늘어남에 따라 채무자 대리인에 대한 수요는 늘고 있으나, 예산·인력 등은 부족한 상태다.
2020년 도입된 채무자 대리인 제도는 불법 추심 피해자에게 제공하는 무료 법률 서비스다. 채무자 대리인을 지정하면 추심업자는 대리인을 통해서만 추심과 연락을 할 수 있다. 채무자는 밤낮 없이 연락해 모욕과 협박을 일삼는 불법 추심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고, 반사회적 불법 계약 무효 소송 등을 무료로 지원받을 수 있다.
5일 국회 예산정책처가 발간한 '2026년도 예산안 분석'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채무자 대리인 지원 사업 예산으로 19억600만원을 편성했다. 올해(15억5900만원)보다 22.3% 늘었다.
채무자 대리인 제도 신청은 지난 4월 이후 빠르게 늘고 있다. 신청 건수는 지난 1~3월 총 1343건으로 월평균 450건 정도를 유지하다, 4월 들어 755건으로 크게 늘기 시작했다. 지난 6월까지 누적 신청 건수는 3897건으로, 이는 지난해 연간 신청 건수(3096건)와 맞먹는 수준이다.
금융위원회는 4월부터 금융감독원 접수 후 법률구조공단으로 이관하는 시간을 단축하고, 신청 절차 및 요건 등을 간소화했다. 기존엔 불법 사금융 업자의 전화번호를 알아야 신청할 수 있었지만, 이젠 카카오톡 아이디만 알면 된다. 신청 창구도 서민금융진흥원 내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 등으로 확대했다.
금융위는 올해 채무자 대리인 지원 건수가 지난해의 2배 수준인 7200건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7월 개정 대부업법 시행 이후 불법 사금융 피해 신고·상담 건수가 약 33% 증가했다"며 "채무자 대리인 제도 신청은 점점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고 했다.
다만 늘어나는 신청에 비해 채무자들이 지원받는 혜택은 미미한 수준이란 지적이 제기된다. 인력이 부족한 탓에 대리인이 불법 추심 전화를 대신 받아주는 데 그치는 경우가 많아, 적극적인 법적 구제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금감원이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기준 채무자 대리인 신청 후 소송으로 이어진 사례는 43건으로 전체의 1.1%에 그쳤다.
금융권에선 채무자 대리인 자격을 변호사에서 시민단체 등 제3자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이는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공약이기도 하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위 예산이 법무부 소속 법률구조공단 변호사 인력 확충 재원으로 쓰이기 어렵고, 예산엔 제약이 있기 때문에 대리인 자격을 확대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