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전이 필요 없는 트래블카드는 이제 해외여행 필수품이다. 트래블카드를 제공하는 금융사만 해도 시중은행부터 카드사까지 다양하다. 하지만 이런 외화선불식 충전카드 개념을 국내에 최초로 도입한 기업은 핀테크 기업 '트래블월렛'이다.
수많은 후발 주자에도 트래블월렛의 점유율은 줄지 않았다. 올해 상반기까지 카드 발급 수는 800만장을 넘어섰고 누적 거래 금액은 6조원에 달하며 지난달에는 예비 유니콘 기업으로 선정됐다. 하지만 김형우 트래블월렛 대표는 "외화 결제는 지금의 트래블월렛을 있게 한 1등 공신이지만, 3년 전부터 회사는 새로운 먹거리를 찾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지금의 트래블월렛이 집중하고 있는 세 가지 핵심 사업은 B2B(기업 간 거래)와 해외 진출, 스테이블코인이다. 지금까지 트래블월렛이 결제 기업으로서 쌓아온 결제 데이터를 다른 결제 기업에 판매하고, 트래블월렛 사업을 해외로 키워가는 것, 그리고 스테이블코인 결제 시장을 개척한다는 것이다.
특히 김 대표는 전 세계에서 스테이블코인으로 결제하는 시대가 머지않았으며 한국이 조금 더 빠르게 규제와 인프라를 갖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은 특히 새로운 기술에 대해 규제가 심하고 문제가 생겼을 경우를 우려하는데, 시행착오를 겪어야 기술적인 진보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했다. 다음은 지난달 28일 서울 강남구 트래블월렛 본사에서 만난 김 대표와 일문일답.
―트래블카드 시장이 레드오션이 됐는데도 여전히 탄탄한 지지층을 갖고 있다. 트래블월렛 만의 강점은.
"네트워킹 효과를 많이 노리고 있다. 환전 결제 외에 거래가 많이 나오는 기능이 친구 간 외화 송금 기능이다. 같이 여행 간 사람끼리 남은 공금을 현지 통화로 그 자리에서 정산하는 기능이라서 가입하지 않은 사람의 가입을 유도할 수 있다.
또 'N빵 결제'라는 서비스도 신규 유입을 늘리고 있는데, 흔히 쓰는 더치페이(각자 내기) 기능처럼 결제 후 정산 요청하는 방식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즉시 각자의 카드로 실시간 결제가 되는 방식이다. 그 외에도 애플리케이션(앱) 내 여행 커뮤니티 서비스 등이 일반적인 트래블카드 제공사와 다른 것 같다."
―최근 트래블카드 사업보다 디지털월렛으로서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던데.
"디지털월렛은 우리가 평소 쓰는 은행 계좌에 기반하지 않으면서 각종 통화, 가상자산까지 담은 다양한 방식의 결제가 가능한 디지털 지갑이다. 신규 계좌 개설에 비해 디지털월렛은 가입 절차도 쉽고 간단하며 사용자의 심리적 장벽도 낮다.
디지털월렛에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이 쓰이지만 사용자는 몰라도 상관없다. 편리하고 저렴하다는 장점만 알면 된다. 이를 통해 모두가 은행 계좌 대신 디지털월렛을 사용하고 송금과 결제를 월렛을 통해 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디지털월렛이라는 개념이 낯설 수 있는데, 그냥 중국의 알리페이를 생각하면 된다."
―디지털월렛이나 스테이블코인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많은데 이렇게 확신하는 이유는.
"비용이다. 한 은행 내부에서야 송금이 자유롭고 무료인데 타행으로 나가는 순간 금융결제원을 지나가고 해외로 보내면 비용이 발생한다. 하지만 스테이블코인이 활성화되면 실시간으로 비용 없이, 혹은 저렴한 비용으로 송금이 가능해진다.
중국에서 10억명이 넘는 인구가 알리페이를 쓰고 있다. 상거래 플랫폼이었던 알리바바가 그렇게 빠른 시간 내에 순식간에 알리페이를 확장시킬 수 있었던 건 실시간으로 비용 없이 빠른 결제가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소매점에서도 디지털월렛 결제를 받을 이유가 있을까.
"오히려 더 크다. 일단 해외 시장에서는 더욱 디지털월렛 결제가 확산될 것이라고 본다. 예를 들어 일본 사람이 한국에 와서 카드 결제를 하면 결제자와 가맹점 양쪽에 약 3.5%의 수수료를 뗀다. 한국의 카드 수수료가 싸서 잘 모르는데, 외국은 국제 결제 수수료가 굉장히 비싸다. 하지만 스테이블코인으로 결제를 하면 양쪽에서 3.5%씩을 아낄 수 있다. 결제 시장에서는 이익률이 3% 이상이면 사람이 움직이는 기준이 된다.
국내 결제에서도 가맹점에 유인이 있다. 대형 가맹점의 카드 수수료는 약 2%대, 소형 상점은 0.8~1% 정도다. 1%가 뭐 별거냐라고 볼 수 있으나 그런 소형 상점의 영업이익률이 10% 미만이다. 7~8% 남기는 소매상에 카드 수수료 1~2%를 가져간다고 하면 영업이익의 20~30%를 떼어가는 구조다. 그런데 이게 무료가 된다는 건 소매점의 영업이익이 크게 오른다는 것이다. 디지털월렛을 안 쓸 이유가 없다."
―보안 문제는 없을까.
"카카오페이, 네이버페이에서 해킹 사고가 발생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나. 은행은 매년 사고가 난다. 은행이 전통금융기관인 만큼 구조적으로 오래된 시스템을 채택해 왔기 때문이다. 온 프레미스(On-premise·기업이 자체적으로 서버, 소프트웨어 등 IT 인프라를 직접 구축하고 운영하는 방식)라는 방식인데, 한마디로 옛날 방식으로 돌리다 보니까 오히려 허점이 있고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하려면 시간과 비용이 더 든다.
하지만 최근 페이 시스템은 대부분 클라우드 방식이다. 지금 개발자들도 계속해서 클라우드 방식을 진화시키고 클라우드의 단점을 보완하는 설루션을 찾고 있다. 그러니 오히려 더 안전하다고 할 수 있다."
―금융 당국이나 한국은행은 디지털 자산과 결제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새로운 기술에 거부 반응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시행착오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술을 거부하거나 받아들이는 데 주저하면 또 주권을 뺏기고 다른 나라에 종속되게 될 것이다. 당국에서 우려하는 부분은 분명히 이해하지만 현업의 목소리를 배제한 채 당국의 목소리만 듣게 된다면 종속의 역사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이미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전 세계에서 쓰이고 있고, 각 나라가 자기 화폐 기반의 스테이블코인을 준비하고 있다. 우리보다 보수적이라는 일본도 자국 화폐를 연동한 스테이블코인을 내놨다. 지금 한국은 세계 금융 산업에서 어떤 위치에 서게 될 것인지 기로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