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대출 늘리기에만 열중했던 은행들이 정부의 '생산적 금융' 확대 기조에 발맞춰 중소기업 대출을 늘리고 있다. 그러나 대출 증가율이 3~4%대에 불과해 '생색내기' 수준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경쟁에 주주환원 지표인 자본비율 관리에만 목을 매다 보니 기업 대출 자체를 늘리는데 소극적이란 비판도 제기된다.
30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해 9월 말 기준 신한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잔액은 143조9215억원으로 전년 동기(138조1197억원) 대비 3.5% 늘었다. 반면 대기업 대출 잔액은 39조 9919억원에서 40조9844억원으로 같은 기간 2.5% 증가하는 데 그쳤다. 지난 2년간 대기업 대출을 각각 25.8%, 30.6% 늘렸던 것과 대조적이다.
다른 은행도 상황은 비슷하다. 하나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잔액은 9월 말 142조6219억원으로, 이는 전년 동기(138조660억원) 대비 3.3% 증가한 수치다. 대기업 대출 증가율은 2.6%로 중소기업 대출 증가율을 밑돌았다. 2023년 대기업 대출 증가율이 32%, 중소기업 대출 증가율이 10%였던 것과 비교해 상황이 역전됐다. KB국민은행도 9월 말 기준 전년 동기 대비 중소기업 대출 증가율이 4.3%로 대기업 대출 증가율(3.8%)을 웃돌았다. 보험사 인수로 자본비율을 높이는 것이 시급한 우리은행은 기업대출을 아예 줄였다.
은행들은 보통 대기업 대출을 선호한다. 중소기업 대출에 비해 상대적으로 연체율이 낮아 건전성 관리가 수월하기 때문이다. 또 임직원 급여 계좌 등 부수 거래에 따른 수수료 확보도 가능하다. 그러나 새 정부 출범 후 생산적 금융, 밸류업 등에 방점이 맞춰지며 상황이 바뀌었다.
정부는 은행 자본 규제까지 고치며 중소기업 대출 확대를 압박하고 있다. 부동산 대출에 쏠린 금융권 자금을 첨단·벤처기업 투자 및 대출로 전환하려는 목적이다.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은행 보유 기업 주식의 위험가중치를 기존 400%에서 250%로 낮추는 내용의 '은행권 자본 규제 개선 방향'을 발표했다.
위험가중치가 낮아지면 은행 건전성을 나타내는 보통주자본비율(CET1) 관리가 용이해진다. 반대로 위험가중치가 높아져 CET1이 떨어지면, 주주 환원 여력이 줄어든다. 이에 CET1을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 기업대출 취급 자체를 줄인 것이란 분석도 금융권에서 나온다.
한 은행 관계자는 "중소기업 대출은 정부의 압박에 못 이겨 늘리곤 있으나, CET1 관리를 위해 대기업을 포함해 기업대출 자체를 크게 늘리지 않는 분위기"라며 "지난 4~5년간은 대기업 모시기에 열중이었으나 올해는 밸류업, 주주 환원에 집중하고 있다"고 했다. 다른 은행 관계자는 "CET1 관리를 위해 신용등급이 높은 우량 대기업을 중심으로 대출을 늘리고 있다"고 했다.